23.06.22 19:36최종 업데이트 23.06.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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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 고정미


기범이는 짝꿍이었다. 속눈썹과 머리숱이 풍성했다. 초록색과 파란색, 노란색으로 이뤄진 점퍼를 자주 입고 다녔고 노래를 즐겨 불렀다. 초등 중학년(3~4학년) 학기 초, 기범이와 나란히 앉은 걸 보고 친구들이 놀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된장 푸러 나가세~" 하루에도 몇 번씩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래의 후렴구를 부르며 손뼉을 쳐댔다.

어느 날은 내 등을 짝짝 치더니 가사를 흥얼거렸다. 호응하길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기범이를 째려봤다. 그리고 학기 말, 어느새 나는 기범이의 등을 짝짝 치며 같이 된장 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맨 앞자리 책걸상에서 둘이서 즐거웠다.


발달장애를 가진 기범이의 어머니는 미용실을 하셨다. 그곳을 놀러 가면 꼬순내 나는 맛난 떡볶이와 파마 약품 냄새가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기범이와 어머니 덕분에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고 간식으로 배가 자주 따뜻해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져 기범이를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 교실에서 내가 경험한 것을 통합교육이라고 지칭한다는 걸 훗날 <어른이 되면>(장혜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유언이 없는 세계>(정창조 외), <장애학의 도전>(김도현) 등을 읽으며 차츰 알아갔다.

분리주의자가 판치는 수상한 교육현실

이후 뒤늦게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의 폭력성을 실감했지만, 여전히 몇몇 상황에서 목울대를 식히곤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가 일어난 아침마다 남의 출근길을 막는 건 이기적이지 않냐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폭언에 서늘해졌다. 그때마다 노래를 부르자며 등을 납작 내밀며 나를 환대해줬던 기범이를 떠올렸다.

서점에 근무하던 사회초년생 시절, 시집 <앉은뱅이꽃>(이흥렬)에 사인을 해달라는 팬의 요청에 휠체어를 탄 채 발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이름을 쓰셨던 한 시인의 땀방울을 떠올렸다.

그러고 생각했다. 자녀의 생존권을 걸고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어느 새벽 걸음을 떼는 사람을. 출근을 위해 두 발로 성큼 걸음을 떼는 사람을. 이중 이기적인 사람이란 없다. 단지 이기적이라고 명명하면 생겨나는 이기적인 편리함이 있다.

나는 한쪽 청력이 살짝 좋지 않고, 눈 아래 점이 있고, 노란색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묵자 대신 점자로 된 책을 읽으며 SF소설 마니아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주변의 혼란으로부터 안심하기 위해 때때로 머리를 치며 소리를 지르고 노래방에선 발라드를 꽤 부른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우리는 다만 무수한 신체‧정신적 특성으로 이뤄진 존재들이지 않을까.
 

책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 교육공동체벗


장애란 사회가 호명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모호한 나의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반경을 넓혀 준 길잡이를 만났다.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를 쓴 윤상원은 "대한민국의, 시각장애라 명명된 '특수' 교사"라고 자신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분리교육을 강요하는 교육 현실을 그는 전투적이고도 우아하게 돌파해왔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약점으로서 손상을 갖고 있으며, 인류는 이 손상에 대한 부단한 사회적 보완의 결과다. 그는 손상을 발달의 계기가 아닌 장애로 만드는 현실에 맞서 저항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장애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대학에서 장애 학생 교육권 쟁취를 위한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장애해방운동가 노금호, 박경석 등은 그가 청년 시절 만나거나 함께한 인물들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결성된 2003년, 그로부터 2년 뒤인 2005년에 그는 임용고시에 합격해 제주도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한다.

차별 없는 교육을 하고자 특수 교사가 되었지만 그는 차별이 만연한 교육현장을 만난다. 이름 대신 "특수반 걔"라고 거리낌 없이 부르는 동료 교사, 수학여행 등 교내 연례행사가 열릴 때마다 '특수는 특수끼리' 모아 놓길 권유하는 관리자를 마주한다.

그들은 특수교사에게 '분리하겠느냐 통합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매 순간 다른 질문으로 포장하며 책임을 전가한다. 그는 교육현장 속 모순과 부대낀 끝에 이를 타개하고자 통합교육과 보편적 복지 정책 선진국인 노르웨이로 유학길을 오른다.

현장 교사가 파헤친 국내 특수교육법의 문제

높은 경쟁률 탓에 특수학교 입학조차 일 년 이상 미뤄지는 국내 현실과 달리, 노르웨이는 1991년을 기점으로 국가 내 모든 특수학교를 폐지한다.

정부는 '모두를 위한 학교'라는 교육 대원칙을 수립하는데, 이는 성별‧지역‧언어‧인종‧장애‧사회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한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뜻한다. 일반학교, 특수학교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이 꿈같은 일이 노르웨이에선 1970년대부터 계획되고 실행돼왔다. 그래서 노르웨이에는 교과서가 없다. 이 나라 학생들은 묵자로 인쇄된 획일화된 교과서의 단원을 똑같이 학습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별 학생의 특성에 맞춰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재구성하여 고르게 학습을 지원받는다.

북유럽이 1975년 특수교육법을 폐기한 시점으로부터 훨씬 지난 2007년, 국내는 장애인 부모 단체가 직접 내용을 만들고 투쟁한 끝에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제정한다. 저자는 교육적 평등의 수준이 한참이나 다른 북유럽에서 6년간 특별요구교육 전공으로 공부한 끝에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다.

통합교육의 선구적 모델을 공부한 기쁨도 찰나, 진보적이라 일컬어졌던 교사들마저 특수학교를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분위기에 그는 좌절한다. 저자는 '평등한 분리교육이란 없다'고 주창하며 분리교육을 조장하는 특수교육법의 문제와 대안을 심층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 대안과 철학의 돋보기다.
 
"글을 쓰는 행위도 실제 보이지는 않지만 종이와 연필이라는 도구와 문제 체계를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세상에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협업적인 활동의 단위를 개별에 가두고 분절시키며 바라보는 이들이 특정 누군가를 '할 수 없는 사람' 혹은 '장애인이라고 명명하고 분류했을 뿐이다."

'선량한 분리주의자'로 넘쳐나는 국내 교육 현실에서 그는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못박는 장애 학생에 대한 편견 짚기를 시작한다. 승강기가 있으면 투표가 가능하고, 점자가 있으면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친구들이 생존수영을 배울 때 함께 배우게 하면 바다 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숱한 배제와 분리에도 불구하고 뜻깊은 결과를 이끌어낸다.

특수교육법 조항마저 지키지 않는, '없어도 너무 없는' 학교 내 장애 학생을 위한 진로 시설을 마련하고자 기금을 마련하고 제과제빵 자격증을 이수할 수 있는 설비를 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가 설치한 자격증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 중 50%가량이 바리스타, 제과제빵,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고 '이력서 쓰기' 수업에서 한 줄 적어낼 게 없었던 허울뿐인 직업체험교육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5년 뒤 이동해야 할 다른 고등학교에서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교육을 실천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든다"고 토로한다. 특성화고 혹은 인문계고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신청해 자격증 이수교육을 받듯 장애 학생들에게도 자립을 위해 교육 받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연민을 학습하는 장애이해교육은 실효성이 없다

직업교육을 위한 전문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현실도 시급한 숙제지만, 오늘도 어느 교실에서 이뤄질 '장애이해교육'에 관한 그의 생각은 학생을 가르치거나 어린이‧청소년을 가까이 둔 사람이라면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장애 체험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나의 선한 마음을 확인하고 나누는 감상회 수준에 머무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기존 장애 체험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경험을 감상하며 도덕적 만족감을 얻는 집단적 관음증을 부추길 우려가 높다."

그는 일관되게 장애 학생 대신 '장애로 명명된'이라는 수식어를 쓺으로써 '할 수 없음'이라는 폭력이 깃든 장애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가 한 사람에게 강제로 덧씌운 이미지임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게 장애이해교육일 수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음을 단순히 체험하게 하고 '많이 힘들었겠다. 앞으로 잘해줘야겠다' 식으로 감상문을 쓰게 하는 교육이 과연 연민을 학습하는 것 이상의 효력을 지닐 수 있을까.

저자는 장애이해교육 자료들이 장애 학생을 향한 차별을 예방하기보다 확대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대신 누구에게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삶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지하는 장애'인권'교육으로 학습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장애체험 교육 시 학생들이 자신을 둘러싼 교실에서 모든 사람의 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찾아내고,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식 수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누누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감금하고 배제하고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데 어울림으로써 오히려 위험을 습득하고 돌파하는 힘을 기르게 하자는 것이다.

그가 부르짖는 통합교육은 장애 학생을 비장애 학생 교실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특징을 각기 다르게 갖춘 개인들이 서로 무시하지 않고, 조율하고, 삶의 지혜를 나누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나가는 공부일 것이다.

다섯 명 장애해방운동가들의 삶을 담은 <전사들의 노래>(홍은전)에는 시설에서 살다 나온 사람들이 처음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점차 자신의 고유한 표정을 회복하고 웃고 떠들며 인간임을 긍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긍정의 반대편을 아프게 앓은 교사의 다음 문장이 선량한 분리주의자들에게 송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기범이가 불러줬던 노래가 부드럽게 가슴을 할퀴어 이따금 나를 살아내게 했듯이.
 
"'특수는 특수하게'라는 상식에 동의하는 순간, 아이들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최전선에 동맹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 평등한 분리 교육은 없다

윤상원 (지은이), 교육공동체벗(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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