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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에 속고, 공인중개사에 속고... 인생 망했죠"

[개미지옥, 전세사기 ②] 보증금 1억 원 날릴 판... 공인중개사에 손배청구·형사고소

등록 2023.01.27 13:17수정 2023.01.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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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왕 1139 채, 빌라의 신 3493 채, 빌라 왕자 413 채. 거대 전세사기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깨끗한 등기부, 공인중개사의 추천을 믿고 전세를 계약한 보통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보증금을 날리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대출금 변제를 위해 몸부림처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치밀한 수법의 전세사기 개미지옥은 왜 생겼는지,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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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전세보증금이 묶여 있는 서울 봉천동 관악구에 있는 빌라. 공인중개사 쪽이 사무실 용도의 근린생활시설을 주거 용도의 다세대주택이라고 속였다. ⓒ 선대식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 하느라 그 중간에는 시간을 뺄 수가 없네요."

'빌라왕' 김대성씨의 전세사기 피해자인 김민지(가명·30)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돌아온 말이다.

학원 강사인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전셋집에서 나왔다. 경기도에서 새로운 월셋집을 구한 뒤, 주말을 포함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기존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갚고, 월세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하는 탓이다.

18일 오전 8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학원 인근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고 "(인생) 망한 거죠"라고 말했다.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은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재밌게 지내는데, 저는 어디 투자하다 망한 것도 아니고 집 하나 구했을 뿐인데…."

김씨는 '빌라왕' 김대성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이면서도, 사무실 용도의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을 일반 다세대주택으로 속인 공인중개사 고아무개씨 일당의 중개사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김씨는 관악구청에 공인중개사 일당의 허위 설명에 대한 민원을 넣었고, 구청에서는 공인중개사 고씨가 성실·정확한 설명 의무 등을 위반했다면서 과태료부과 사전통지를 한 상태다. 김씨는 공인중개사·중개보조인·대출상담사·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공인중개사 일당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도 했다. 그는 "김대성은 죽고 없으니, 중개사고를 낸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죠"라고 강조했다.


전세사기 드러나자, 믿었던 공인중개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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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메○공인중개사무소를 통해 집을 구했다.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한 뒤, 이곳 사무실은 사라졌다. 이곳을 운영했던 공인중개사 고아무개씨는 서울 강남구에 공인중개사무소를 새로 차렸다. ⓒ 선대식


김씨는 외국 생활을 하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 탓에 2020년 4월 귀국했다. 인천과 수원에 있는 학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두 학원을 왔다갔다하기 위해 차를 샀고, 주차가 가능한 1억 원짜리 전셋집을 구할 계획을 세웠다. 수중에 2000만 원이 있었고, 나머지는 대출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수많은 공인중개사무소에 연락했지만, 마땅한 곳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8월의 어느 날 연락이 닿은 공인중개사무소 쪽은 집을 구해주겠다고 했다. 김씨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으로 향했다.

김씨는 마주 앉은 중개보조인 변아무개씨에게 서울 강서구 화곡동 쪽 집을 구한다고 했더니, "화곡동은 깡통전세 때문에 위험한 거 모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전용면적 22㎡(6.6평), 전세보증금 1억 원짜리 매물을 보여줬다. 다세대주택으로 전용 주차구역이 있는 다세대주택이라는 내용이 기재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김씨는 공인중개사무소 쪽에서 관련 내용을 허위로 기재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씨는 우연히 중개보조인 변씨가 잠시 밖에 나가 누군가에게 전화로 "왜 대출이 나오지?"라고 말하는 내용을 들었다. 김씨가 이를 의심하자, 그는 "연 이자 2%대의 대출이 안 나오면 계약을 파기한다는 특약을 계약서에 넣겠다"라고 달랬다.

일반적으로 '근생'을 전셋집으로 삼는 경우 제1금융권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전셋값이 싸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씨는 대출이 안 나오면 계약을 파기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연 2.3% 이자의 하나은행 전세자금대출이 나왔다. 대출상담사 이아무개씨가 은행에 근생이 아닌 다세대주택으로 대출을 받아낸 사실을 당시 김씨는 알 수 없었다. 이어 전입신고 후 확정일자를 받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사한 직후 터졌다. 주차 문제 때문에 빌라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였는데, 자신의 집이 다세대주택이 아니라 사무실 용도의 '근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인중개사무소에 연락했더니 "관리인과 통화 한 번 해보세요"라는 답변을 받았고, 그 뒤로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공인중개사무소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빌라왕'의 답장 "신용불량자입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날 집주인이 바뀌었다. 새로운 집주인은 '빌라왕' 김대성씨가 운영하는 '대성하우징'이었다.

김씨는 계약 파기를 요구하려 했지만, 중개사무소 쪽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몇 달 뒤 새로운 집주인 김대성씨의 대리인이라는 관리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나가 달라는 거였다. 김씨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기다렸지만,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었다. 김씨가 관리업체에 연락했더니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김씨 : "아무도 집 보러 안 오던데요."
관리업체 : "근생이라, 집에 들어갈 사람 찾기 힘들 거예요."
김씨 :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갈 수 있죠?"
관리업체 : "그때 가봐야죠. 상황이 안 좋으면…"
김씨 : "무슨 문제가 있는데요?"
관리업체 : "집주인이 임대사업자인데 보증금을 반환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안돼서…. 계약 종료 후에 전세보증금을 달라고 해도, 집주인한테 돈이 없을 거예요."


전세 기간 내내 집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고, 그동안 집주인도, 관리업체도, 공인중개사무소도 쉬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세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올 무렵, 김씨는 김대성씨에게 '전세계약 만기일에 맞춰 보증금 반환요청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은 신용불량자이고 집이 팔리지 않으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다는 답장이 왔다.

김씨는 변호사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방안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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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건물에는 '전세사기 예방' 등이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 선대식

 
"중개사고를 낸 공인중개사가 책임을 져야죠"

김씨는 이후 김대성씨를 상대로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이후 강제 경매를 신청했지만 김대성씨가 숨지는 바람에 그 절차가 중단됐다. 사실 강제 경매 신청은 다른 피해자와는 달리 김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집이 사무실 용도의 '근생'이라 경매에서 아무도 안 산대요. 제가 낙찰받는다고 하더라도 저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은행에 가서 알아봤더니, 일반 집이 아니라서 대출도 잘 안 나오고, 나중에 팔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는 중개사고를 낸 공인중개사 고씨 일당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김씨는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인, 대출상담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이들과 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중개의뢰인에게 중개대상물의 상태·입지·권리관계 등을 성실·정확하게 설명하고 토지대장 등의 각종 근거자료를 제시해야한다. 고의·과실로 거래당사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

"많은 변호사들이 공인중개사나 협회 쪽에 소송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중개사고와 손해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필요하고, 그 쪽에서 어떻게든 돈을 안 주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경우 '근생'을 다세대주택으로 속여 계약 자체가 잘못된 거라, (변호사 쪽에서 제가)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구청에서도 공인중개사 고○○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어요."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이 훌쩍 지나자, 김씨는 서둘러 일어섰다. 그는 이날도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김씨는 "제 돈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해요. 빨리 그 절차가 끝나갈 바라고 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카페 문을 나섰다.

김씨와 헤어진 후, 김씨의 전세보증금이 묶여있는 집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 봉천동으로 향했다. 지하철 2호선 봉천역 출구로 나오자, 마침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건물이 보였다. '전세사기 예방! 국민재산 보호! 우리가 앞장서서 실천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빌라왕 전세사기 #전세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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