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집주인은 빌라왕 '김대성', 지난해 10월 사망... 순식간에 1억 빚쟁이 됐다

[개미지옥, 전세사기 ①] HUG·은행의 부실 관리...낙찰받아도 건질 돈은 0원

등록 2023.01.26 11:50수정 2023.01.26 12:18
18
원고료로 응원
빌라 왕 1139 채, 빌라의 신 3493 채, 빌라 왕자 413 채. 거대 전세사기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깨끗한 등기부, 공인중개사의 추천을 믿고 전세를 계약한 보통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보증금을 날리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대출금 변제를 위해 몸부림처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치밀한 수법의 전세사기 개미지옥은 왜 생겼는지,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말]
 
a

고아무개(24)씨는 2020년 6월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41㎡ 규모 전셋집을 발견했고, 당시 1%대 금리의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1억 원을 대출받아 보증금 1억14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 고아무개씨 제공

 
"아버지께 부동산 등기부등본이랑 전세계약서를 카톡으로 보내드렸어요. '괜찮네, 계약해도 되겠다'고 하셔서 도장을 찍었죠."

지난 2020년 6월, 당시 21세였던 고아무개(24)씨는 5달째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취업한 딸의 독립이 못내 아쉬운 아버지를 설득해 수십 개의 매물을 보러 다니던 중이었다. 

<오마이뉴스>와 지난 15일 인천 미추홀구 인근에서 만난 고씨는 "집을 보러 다닐 때 공인중개사 보조인과 함께 다녔는데, 아버지는 직접 전화통화까지 하면서 '저는 바빠서 가질 못하니,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하는 아버지께 보조인은 '빚 없이 깨끗한 집'이라 강조하며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전세계약서 등을 실시간 전송했고, 서류를 확인한 아버지도 마침내 계약을 허락했다. 보조인의 말처럼, 등기상으론 임대인이었던 김아무개(가명)씨가 과거 이 집을 사들인 시점인 2011년 이미 근저당 설정이 말소돼 있었다. 해당 주택과 관련한 빚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고씨는 "집에서 회사까지 꽤 멀어 출퇴근하기 힘들었는데, 2년 반 동안 틈틈이 저축해 1400만 원을 모아둔 상태였다"며 "처음에는 월세를 생각했는데, 아버지께서 전세를 구해보라 하셔서 전세 매물만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41㎡ 규모 전셋집을 발견했고, 당시 1%대 금리의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1억 원을 대출받아 보증금 1억 14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임대인 바뀌었지만, "문제 없다" 은행 말에 안심한 세입자


고씨는 "그때는 전세 매물이 귀한 때였다"며 "만나는 중개사마다 '전세 매물은 나오자마자 바로 나간다' '집도 안 보고 계약하는 분들도 있다, 빨리 계약해야 한다'고 말해서 마음도 조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철역과 가깝고, 공동 현관도 있어 혼자 살기 안전해보였다"며 "둘러본 집 중 가장 괜찮아보여 계약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만난 집주인도 평범해보였다. 고씨는 "신혼집으로 살다 애들이 커서 본인들은 이사를 가고, 전세를 내놨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2020년 7월 1일 고씨는 잔금을 치른 뒤 입주했고, 3일 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리파인'이라는 부동산권리조사 업체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는데, 임대인이 '대성하우징'이라는 법인으로 변경됐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걱정이 됐던 고씨는 곧바로 전세대출을 진행한 은행에 전화를 걸어 "임대인이 바꿨는데 혹시 뭔가 추가로 해야할 일이 없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였다. 임대인이 바뀌어도 전세계약은 그대로 승계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을 들은 고씨는 안심하고 새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생활을 이어나갔다. 

새 임대인은 전셋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기도 했다. 고씨는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변기가 고장나 임대인에게 이를 알렸고, 곧바로 수리비를 받았다"며 "6개월쯤 살다 보일러도 고장났는데, 수리비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느 임대인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고씨가 1억1400만 원의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계약한지 2년이 지나 계약 갱신을 요청한 때였다. 그의 말이다. 

"만기 3달 전에 제가 '혹시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임대인이 '보증금 5% 증액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집 근처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만나자고 해서, 제가 부동산을 정해 전화로 먼저 물어봤어요. 그런데 (2022년) 7월 4일 계약 당일 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 집에 압류가 걸려있어 5%를 증액하면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는 계약서를 써줄 수 없다'고 하면서 집주인이랑 다시 얘기해보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임대인이 전화도 안 받고, 문자메시지에 답변도 없었습니다."

변기·보일러 수리도 해줬는데...2년 뒤 돌변한 김대성
  
a

고아무개(24)씨가 1억1400만 원의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계약한지 2년이 지나 계약 갱신한 요청한 때였다. ⓒ 고아무개씨 제공

 
연락이 두절된 임대인은 서류상으론 '대성하우징' 법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회사의 대표 '김대성'이었다. 수도권 일대에 있는 1139채의 빌라를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등 형태로 사들인 뒤 임대사업에 이용하다 2022년 10월 사망한 이른바 '빌라왕' 고 김대성씨다. 

고씨는 "아무런 답이 없어 이틀 뒤 제가 '집 빼겠다, 보증금 돌려달라'고 했더니, 김씨가 '(본인은) 종합부동산세가 많이 미납돼 곧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문자메시지 답변을 보냈다"며 "다른 피해자들도 똑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당황한 고씨는 2년 전 계약 당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HUG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안내받은대로 전세 계약 해지 관련 내용증명서를 보내고, 임차권 등기 명령 설정까지 마친 고씨는 이후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은행에도 물어봤더니, HUG 보증보험 이행 청구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류를 다 찾아 지난해 8월 중순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있는 HUG 센터를 찾아갔습니다. HUG에서 서류를 딱 보더니, '만기 1개월 전에 전세 계약을 해지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야 보증보험 이행 청구가 가능하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원래 계약을 연장하려고 했던 거여서 그런 문자메시지는 아예 보내지 않았거든요." 

뒤늦게라도 시도해보라는 말에 고씨는 HUG가 알려준 양식에 맞춰 김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HUG는 김씨의 주민등록등본까지 확인한 뒤 이행 청구 절차를 밟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시일이 지나 이행 청구 자체가 불가능했고, 고씨는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HUG를 통해서도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은행 측 안내에 따라 전세대출을 2개월이라도 연장해보려 HUG 보증보험 갱신을 알아보던 중 고씨는 더욱 어이없는 사실을 접했다. 

그는 "HUG 인천지사에 찾아가 보증보험 갱신은 어떻게 하느냐 물었더니, 법인의 경우에는 갱신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원래는 임대인이 법인일 경우 보증보험 가입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보증보험 불가능했는데...은행도, HUG도 알려주지 않았다
 
a

전세대출 외에는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던 고아무개씨. 그의 신용점수는 844점에서 200점까지 떨어졌고, 신용카드도 모두 정지됐다. 온전히 전세대출 연체 탓이다. ⓒ 고아무개씨 제공

 
첫 계약 당시에는 임대인이 개인이었기 때문에 HUG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했지만, 3일 뒤에는 임대인이 법인으로 바뀌어 보증보험도 해지돼야 했다. 하지만 이런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전세 계약 당사자인 고씨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임대인 김대성씨가 사망하면서 고씨가 전세금을 돌려받을 길은 안갯속에 갇혀버렸다. 

고씨는 "임대인이 김대성씨의 법인으로 변경됐을 때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전세 계약 해지를 통보했을 것"이라며 "대출금이 1억 원인데, 당장 상환할 여건이 되지 않아 지금도 대출이 연체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전세대출 외에는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던 고씨. 그의 신용점수는 844점에서 200점까지 떨어졌고, 신용카드도 모두 정지됐다. 온전히 전세대출 연체 탓이다. 고정금리였던 대출이자는 연체로 인해 변동금리로 바뀌었고, 매월 내고 있는 이자액은 10만 원에서 45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원금에 대한 상환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경매에 뛰어들어 낙찰받는다 해도 고씨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0원에 가깝다. 사망한 김대성씨의 종부세와 양도세 등 체납액이 무려 63억 원에 이르는데, 경매 시 종부세 등 당해세(부동산 자체에 부과된 세금과 가산금)가 무조건 주택임차보증금보다 선순위라서다. 향후 다른 사람이 거주하고 소유하게 될 집에 대한 1억 원을 고씨가 온전히 갚아야만 하는 구조다. 

2023년 1월, 고씨는 HUG가 법인 임대인 관련 임차인에 대해서도 보증보험을 연장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법인도 대출을 연장해주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라도 해결되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한다"며 "조금이라도 대출이 연장된다면 그 기간 동안 이자 부담이라도 줄일 수 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동안 마음 편하게 기다릴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개인 파산·회생도 알아봤지만 모두 불가능했다. 고씨는 "5군데에 전화를 돌려봤는데, 파산은 나이가 어려서 안 된다고 했다. 경제활동이 아예 불가능해야 파산 신청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서다"라며 "또한 개인 회생도 저와 HUG가 채권 양수도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전세금 1억 원을 완전히 제가 갚아야 가능한 상황이 됐다"라고 했다. 그가 20살 때부터 착실히 모아온 종잣돈 1400만 원도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됐다. 고씨의 말이다. 

"세금을 계속 미납하는 사람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증보험도 (계약 형태의) 경우의 수가 많은데, (이행 청구를) 이렇게까지 한정적으로 해놓으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공인중개사들도 이렇게 허술하게 일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통속인 건지 지금으로선 알 수도 없고요. 솔직히 이제 진짜 다 못 믿겠습니다."
 
a

고아무개(24)씨는 지난 2020년 6월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41㎡ 규모 전셋집을 발견했고, 당시 1%대 금리의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1억 원을 대출받아 보증금 1억14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주택의 모습. ⓒ 조선혜

 
#전세사기 #허그 #HUG #보증보험 #전세
댓글1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