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5 07:08최종 업데이트 22.12.0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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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코로나가 극성이던 작년 10월의 어느 날, 난 조금은 긴장한 채 그러면서도 기대에 찬 마음으로 집 근처 기타 학원에 들어섰다.

시력을 잃고 만난 세상에서는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나 도구들도 배우고 익혀야 했지만, 그동안 보이기에 너무도 당연했던 것들도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했다. 그래야만 눈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가상의 눈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그래야 했고, 비장애인들과 같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도 그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인으로서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놀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보람을 찾을 수 있기 위해서도 그래야 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도 즐겨 부른다. 그건 시력을 잃은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기회만 되면 음악회를 찾았고 노래방도 즐겼다. 그런데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었다. 기타든, 피아노든, 트럼펫이든 어느 악기라도 언제나 배우고 싶었고, 기회도 있었지만 바보같이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자꾸만 배우기를 미루기만 했다.

'다음에'라는 말은 때론 '안 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일 때가 있다. 난 시력을 잃고서 그걸 절실히 깨달았다.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게 아니었고, 시간도 넘치도록 남아도는 게 아니었다.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기회가 있을 때, 아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지금 해야 한다. 어슐러 르 귄이 <어스시의 이야기들> 서문에서 말했듯이 '지금'은 움직인다. 그리고 그때가 돼 버린다. 소중한 시간이 흘러서 지금이 그때가 돼 버리면 이미 늦은 것이리라.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그만큼 내 삶이 여유롭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 김승재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배우고 익히고 사귀고

몇 년 전, 옛 직장 변리사님께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선물 받은 기타를 들고 야심 차게 기타 배우기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누구나 겪는 손가락 끝 고통과 F코드로 시작되는 눌러도 눌러도 제대로 나지 않는 기타 소리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쉬운 노래 악보 하나를 볼 때조차 남의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게 나를 무너뜨렸다.

그런데 솔직히 그건 핑계였다. 진짜 이유는 아마도 내가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한 것이리라. 그때 이미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점자 악보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또다시 몇 년이라는 소중한 '지금'을 '그때'로 낭비해 버리던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뜻 나 같은 시각 장애인을 가르쳐 주겠다는 기타 선생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한 통, 두 통 전화할 때마다 비록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전화기 속 목소리의 속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내가 건네준 집 근처 실용음악 입시학원 전화번호, 기대하지도 않고 그냥 등 떠밀려 집어 든 전화기 저편에서 뜻밖의 답이 흘러나왔다.

"저도 사실 어떻게 가르쳐 드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 번 와 보세요. 선생님이 오케이하지 않으면 돈은 받지 않을 테니까 와서 배울 수 있는지 같이 해 보죠. 아마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제가 대학에서 기타를 전공할 때 시각 장애인이 두 명 있었는데, 저보다 더 잘 쳤거든요."

지금도 나와 그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웃고 노래하며 기타를 함께 치고 있다. 계속해서 코드나 연주법을 까먹고 다시 외우고 익히기를 반복하지만, '문 리버'(Moon River)나 '로망스'(Romance)를 연주할 수 있고, 아내나 친구들 앞에서 어설픈 반주로 가요나 팝송을 부르고 웃고 떠들 수도 있다.
  

이왕이면 함께, 이왕이면 즐겁게 ⓒ 김승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모두는 필요한 것이요, 그 자체로도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하찮은 돌멩이 하나, 작고 작은 벌레 한 마리라도 말이다. 그런데 지난날 내 삶과 밀접한 것들을 감히 하잘것없이 사소하다느니, 하찮고 미미한 것이라느니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떠들었다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린 배우고 익히고 사귀고 따라야 한다. 그게 삶이기에 거기에는 중요한 것도 하찮은 것도 없고, 모두가 소중하고 필요한 것뿐이다. 우리는 숨을 쉬고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사귀었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그리고 학교에서도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새로운 규칙을 따르고 사람과 사귀고 역할을 배우고 익혔다.

스스로 책임질 성인이 되어 사회로 들어서게 되면 우리 모두는 보다 절실하고 간절하게 같은 걸 경험한다. 그리고 보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갈 땐 로마에 가면 왜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이것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해당하는 일이다. 그리고 하잘것없이 사소하거나, 하찮게 작은 것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신세타령도, 나이 탓도 예외를 주지 못한다. 울화통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진다 한들, 장애인으로서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 이상 다시 배우고 익히고 사귀고 따라야 한다. 싫다고 게을리하거나 무시한다면 오로지 내 손해일 뿐이고, 나만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서 난 배우고 익히려 애쓴다. 시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상상 외로 많다. 음성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컴퓨터 문서 작업은 물론 인터넷 서핑이나 각종 커뮤니티 활동도 거의 문제 없이 할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도 꽤 많은 걸 할 수 있다. 시각 장애인용 도보 내비게이션도 있고, 주변 사물과 간판이나 안내판을 설명하고 읽어주는 앱도 있다.

다만, 좀 복잡하고 낯설고 답답해서 배우고 익히는 게 조금 어려울 뿐인데, 어차피 공짜는 공짜일 뿐, 좀 더 좋은 걸 원한다면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필요성이 덜해진 탓에 배운 점자를 거의 잊어버렸지만, 솔직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립 장애인 도서관이나 시각 장애인 복지관 등에서 제공하는 음성 도서가 거의 20만 권에 가깝다. 내가 노력만 하면 최신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세계 명작들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이란 꼬리표가 필요 없는 것도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장애인도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울려야 하기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난 기타를 배우면서 보다 넓어지고 여유로워진 내 삶을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도 사귀어야 한다. 기존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동창회도 나가지만 난 얼굴도 모르는 분들과 즐겁게 지내고 과분하게 회장직도 맡았다. 조용필이 노래했듯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은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의 기본 중 기본이니까. 

동병상련, 이보다 좋은 공감이 있을까

정말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친구나 지인 중에는, 본인이나 가족이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얻을 만큼 큰 사고를 당했을 때 내가 생각났다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날 만나면 예외 없이 이런 말을 한다.

"미안하다, 연락 못해서. 네가 그렇게 힘들었을지 정말 몰랐어."

동병상련. 이보다 좋은 공감이 있을까. 혹자는 아쉬우니까 연락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절친'이라면, 함께 웃고 울었고, 싸우며 사귀었던, 그래서 즐거움도 아픔도 같이했던, 얽히고설킨 최고의 공감, 바로 우정이란 게 있어서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여전히 그 느낌 그대로다. 동병상련도 마찬가지리라. 느꼈고 느낄 그 아픔, 견뎠고 견뎌야 할 그 고통을 알고 공감하는데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할까.

변호사 부부 친구가 있다. 남편 S는 나와 고교는 물론 대학도 동창, 부인 L은 내 아내와 고교 단짝 친구이면서 나와도 대학 동창이다. 참으로 별난 인연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만남이 좀 뜸했다. 그러다 지난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L이 중환자실에서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두 달 넘게 싸웠지만, 결국 왼쪽이 마비되어 손과 발을 맘대로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위로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대하는 게 나을지 고민하며 우리 부부는 막 퇴원한 L과 S를 만났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제대로 말도 못 하는 L도, 그 옆을 지키고 선 S도 진짜 웃고 있었다.

"그럼 울어?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지금부터라도 잘해야지."

특유의 콧소리 가득한 목소리로 S가 말했다.

"미안해요. 연락 못 해서. 내가 이렇게 되니까 선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겠더라고. 나도 선배처럼 잘 견뎌야지."

잔뜩 쉰 데다가 어눌하기까지 한 탓에 거의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L이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파도 웃을 수 있다면 절반은 이긴 것이다. ⓒ 김승재

  
친구 부부는 지금도 재활을 최고의 목표로 열심히 싸우고 있다. 내가 아는 S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성을 다하고, L도 병원 치료는 물론 하루 서너 시간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정말 열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은 웃음이 피어나는 즐거움을 또 하나의 치료법으로 삼고 있다.

독서토론회를 빙자한 수다 모임까지 만들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귀농한 누님 땅 일부를 구입해서 놀이터 같은 집을 짓고 틈나는 대로 모닥불도 피우고, 감자나 옥수수도 구워 먹고, 꽃도 심는다.

큰 돈을 들인 것도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 있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 또다시 배우고 익히고 사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다행히도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나와 아내도 같이 수다를 떨고, 기타를 치면서 모닥불 앞에서 구운 옥수수를 먹는다. 처음에는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나와 아내에게도 또 하나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새로움은 기쁨도 아픔도 될 수 있다. 그것이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다르지 않다. 다만, 그걸 내가 어떻게 보고 만나고 함께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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