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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 국가는 없었다" 부산 40개 여성단체 시국선언

철저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요구... 희생자 유가족 입장에 힘 실어

등록 2022.11.23 12:56수정 2022.11.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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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부산지역의 40여개 여성단체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규탄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 김보성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성평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정부·여당의 무능, 무책임함을 보며 분노하는 것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다음 날인 23일 부산 여성단체도 시국선언을 위해 부산시청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유가족과 같은 목소리를 내며 힘을 실었다. 참사 이후 지역의 여성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이태원 참사 관련 선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부산학부모연대 등은 23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성평등민주주의 후퇴 규탄'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가의 응답이 제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지만, 그날 이태원에 국가는 없었다"라며 상실감을 표현했다. 꼬리 자르기 논란이 일고 있는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애도가 이제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다"라고 강조하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 책무가 무엇이냐"며 따져 물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문제가 된 여성가족부 폐지를 놓고도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수십 년간 여성운동의 결실로 탄생한 여성인권, 성평등 법·정책이 파편화하고, 후순위로 밀리게 될 것"이라며 "이미 대구시나 부산시 등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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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부산지역의 40여개 여성단체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규탄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 김보성

 
부산 여성들의 이번 선언은 참사 24일 만에 공식적 입장을 낸 희생자 유가족의 요구와 맞닿아 있다.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유가족들은 대통령 사과, 성역없고 엄격하며 철저한 책임규명 등 6가지를 요구했다. 부산 여성단체 또한 시국선언에서 이러한 내용을 함께 담았다.

장선화 부산여성회 상임대표는 "지난주부터 취합이 됐고, 단체로 보면 40곳, 개인으론 300여 명 이상이 함께했다"라며 "전국서 이태원 참사 관련 여성들이 시국선언을 낸 첫 사례로 안다. 앞으로 추가적 실천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소장은 "대통령과 대통령실, 행안부 장관, 그 누구도 이 참사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갑갑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시국선언을 보고 정부가 제발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시국선언 전문과 참가한 단체들이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성평등민주주의 후퇴 규탄! 부산여성시국선언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22일 현재 희생자 수는 158명이다. 29일 저녁 6시 34분. "압사당할 것 같아요"라는 첫 신고와 현장의 잇따른 '경고와 요청'에 단 한 번이라도 국가의 응답이 제때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그날 이태원에 국가는 없었다. 참사 당일 윤석열 정부와 당국의 무책임한 대응 과정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애도는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다.

참사 직후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어처구니없게도 위법적인 방법으로 시민단체와 언론,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참사 이후 한 달이 되어가는 현시점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까지 잘못을 상대 쪽에 돌리며 자신들의 책임은 축소, 면피하기에 급급하다. 과연 참사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국가의 존재 이유와 책무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목도하며 우리 여성들은 분노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일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성이 폭력 피해를 겪고, 일터에서 살해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 9월 발생한 신당역 사건 또한 단순히 한 개인이 겪은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여성 폭력이었으며 국가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뿐 아니라 낮은 고용률과 성별임금격차 등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여성 인권의 현실에서 국가의 책무는 성평등 전담부서의 권한과 기능 강화를 통해 사회 전 영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10월 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 여성가족부 폐지를 전면화하며 오히려 성평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성평등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이다. 여성가족부가 전담 부처의 위상을 잃을 경우, 국무위원으로서의 심의·의결권, 전담 부처의 입법권과 집행권이 상실되며, 지난 수십 년간 여성운동의 결실로 탄생한 여성 인권과 성평등 관련 법·정책들은 다른 부처나 부서들로 파편화되어 연결되지 못하고 후순위로 밀리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 여파로 대구를 비롯한 지역의 성평등체계는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으며, 부산도 여성정책연구 전문기관인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축소 통폐합될 위기에 놓여있다.

성평등 실현은 모든 국가의 과제이자 인류가 실현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며 국가의 책무이다. 또한 국민의 안전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권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재난과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내야 할 본연의 의무를 방기했을 때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는지 이번 참사를 통해 우리는 여실히 목격했다. 우리 여성들은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며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시키려는 정부·여당의 무능과 무책임함에 분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 참담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더 많은 여성과 함께 행동해 나갈 것이다.

하나. 이태원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 성역 없는 수사, 책임자를 처벌하라!
하나. 여성가족부 폐지 정무조직법 개정안 철회하라!
하나.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규탄한다.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하라!

2022년 11월 23일
부산여성시국선언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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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성 시국선언 #이태원 참사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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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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