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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단지에서 굿판이라니, 신기하네

750년 수령 느티나무 앞에서 거행된 마을제와 마을굿 '역말 도당제'

등록 2022.11.12 20:13수정 2022.11.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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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토)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단지 내 750년 수령의 느티나무에 붉은색과 흰색 천이 둘러쳐 있었고 제단도 차려져 있었다. 도곡동 느티나무로 알려진 고목 주변으로는 제관들과 이들의 일행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보였다. 코로나19로 중단된 '역말 도당제'가 3년 만에 열리고 있었다.

제관들과 노인들은 '역말 향우회' 회원들로 삼십여 년 전까지 역말에 살았던 주민들이었다. 역말은 도곡동 느티나무 근처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오래전부터 있었던 마을이다. 그러니까 역말 향우회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강남 토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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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토) 강남구 도곡동에서 열린 '역말 도당제' 예전 역말에 살던 주민들이 매년 가을에 치르던 마을제다. 서울시 보호수인 수령 750년의 느티나무 아래에 제단이 차려졌다. ⓒ 강대호

 
강남 도곡동의 농촌 마을

1976년 역삼동의 아파트로 이사한 기자는 1979년 말죽거리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불편해 한동안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통학코스는 도곡로, 지금의 강남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뱅뱅사거리 방향으로 놓인 도로로 당시는 비포장이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매봉산 자락에 농촌 마을이 나왔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통 마을의 모습이었다. 그곳이 역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아파트 단지와 느티나무가 있는 그곳이다. 

과거에 말은 교통수단이면서 통신수단이기도 했다. 지방이나 한양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마다 역(驛) 혹은 역참(驛站)을 설치해 말을 관리했고, 주변 마을을 역말이나 역촌(驛村)이라 불렀다. 도곡동의 역말은 과거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에 설치한 양재역(지하철역이 아니라 역참) 인근에 자리했던 마을이었다. 

양재역(良才驛)은 인근 12곳의 속역(屬驛)을 관리할 만큼 중요한 곳으로 양재도찰방, 즉 종6품 찰방(察訪)이 책임자였다. 주요 고지도들에는 모두 양재역이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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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여도'에 표시된 양재역 빨간 원이 양재역이다. 광여도는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지도첩이다.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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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군현지도에 표시된 양재역 파란 원이 양재역이다. 팔도군현지도는 18세기 영조 시절에 간행된 지도첩이다.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972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역말은 북으로 지금의 도곡로에, 남으로는 지금의 남부순환로에 접하는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넓은 논을 가운데에 두고 와이(Y) 자 모양의 마을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걸 볼 수 있다.

역말은 역삼동(驛三洞) 지명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재역 인근에 자리했던 말죽거리, 방아다리, 역말 등 세 마을을 합쳐 '역삼리'라는 동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역말이 있던 곳은 현재 도곡1동 관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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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촬영한 말죽거리 일대의 항공사진 지도 중앙의 마을이 '역말'로 현재 도곡동 럭키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노란 원은 도곡동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도곡동 경남아파트가 들어섰다.파란 원이 은광여고, 빨간 원은 언주초등학교다. 초록 원은 언주면사무소가 있던 자리로 지금은 도곡1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 국토지리정보원

 
주변 지역으로 아파트 단지와 현대식 주택가가 들어서도 역말은 1980년대 후반까지 농촌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1990년 11월 19일 '역삼 재개발 아파트 강남 마지막 요지' 기사에 그 이유가 나온다.

도곡동의 역말이 그동안 강남 개발에서 소외된 것은 "서울 편입 당시 중심 주거지역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울시가 "여러 차례 토지구획정리사업 또는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토지 소유자들의 반발이 심해 번번이 무산되었다"고. 또한 "세입자 문제로도 골치를 앓았었다"고 기사는 전한다. 

역말에 사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어 개발이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런 난관을 뚫은 것은 부동산 가치였다. 역말이 도곡동에 자리한 "8학군의 노른자위 땅으로 강남의 마지막 요지"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역말은 86년부터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기사는 전한다. 

재개발 추진 이후에도 역말에는 구설수가 잇따랐다. 주택조합 간부들이 각종 비리로 재판을 받은 것이다. 그러던 1992년 1월 14일경 <조선일보> 등 일간 신문들은 조합 관계자가 공기총으로 자살한 소식을 알린다.

사망자는 일명 "역말자연부락"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주민"으로 주택조합 총무이사로 일하던 중 분양권 비리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았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 억울함을 호소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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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0년 11월 19일 기사 역말이 강남 부동산 마지막 요지라는 취지의 기사. ⓒ 조선일보

 
이 마을의 상징인 750년 수령의 느티나무도 수난을 당했다. 높이 27m, 둘레 7.9m의 도곡동 느티나무는 1968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1995년 9월경 누군가가 느티나무에 농약을 뿌려 고사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역말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느티나무가 방해가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물론 느티나무를 보호하자는 주민도 많았다고.

이후에도 느티나무를 두고 보존하자는 측과 개발하자는 측의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주민들은 도곡동 느티나무를 '효자의 전설'이 깃든 나무라 신성시하며 매년 마을제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1998년 11월 27일 <동아일보>는 부동산 관련 기사를 통해 도곡동 느티나무 주변이 공원이 될 거라는 소식을 전한다. 아마도 그때부터 도곡동 느티나무는 지금의 모습처럼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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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느티나무 강남구 도곡동 경남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수령 750년의 보호수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다. ⓒ 강대호

 
역말 도당제

지난 5일 '역말 도당제'가 열린 곳은 도곡동 경남아파트의 느티나무가 자리한 공원이다. 느티나무는 아파트 건물 사이에 위치해 사방이 막힌 듯하고 하늘만 열려 있다. 그래서 쾌청한 날이었는데도 공원은 그늘이 졌다.

'역말 도당제'는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금의 강남구 도곡동 일대인 역말 사람들이 지내는 마을 제사와 마을굿이다. 그래서 '도당굿'이라고도 불렀다. '도당굿'은 경기도 지역에서 행해지는 마을굿을 일컫는데 역말이 과거 경기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풍습이기도 하다. 

역말은 1962년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역삼리에 속했었다. 경기도 광주 땅 언주면은 1963년에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다가 1975년에 강남구로 분구했다. 

역말 바로 옆에는 언주면사무소가 있었다. 그 자리에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시 농촌지도소와 서울시농업기술센터가 있었고, 그후에 강남구 도곡1동 행정복지센터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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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말 도당제 11월 5일(토)에 열린 역말 도당제 모습 ⓒ 강대호

 
3년 만에 열린 '역말 도당제'는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장이기도 했다. 위령 순서를 넣는 한편 마을제와 마을굿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간소하게 치렀다. 향우회 회원들 수십 명이 행사를 지켜봤고 식사 시간에는 인근 주민들도 찾아왔다. 

향우회 회장은 "이렇게 느티나무라도 남아 있으니 고향 같습니다. 아파트만 있었다면 옛 흔적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라며 감회를 밝혔다. 코로나19로 몇 년간 행사를 치르지 못했지만, 올해에는 간소하게나마 치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도당제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머리 허연 노인들만 남았다. 그들이 천막을 걷고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는 등 뒷정리했다. 향우회 총무는 "젊은 사람들은 향우회에 관심 없어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향우회 하면 지방이 떠오르고 왠지 강남과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 하지만 역말 향우회 사람들에게는 강남이 고향이다. 중학생 시절 기자는 도곡동의 농촌 마을 사람들을 낯선 이방인처럼 바라봤지만, 오히려 아파트에 살던 기자가 그들의 땅으로 이주해온 외지인이었다. 역말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강남 토박이였다. 

그런 면에서 역말 사람들과 도곡동 느티나무는 강남 개발 이전과 이후를 모두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역말 사람들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던 땅에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봤고, 75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역말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과거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열렸던 도당제가 지금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에서 열린다. 강남의 아파트 단지에서 펼쳐지는 역말 도당제는 오랜 전통을 상징하지만, 역말의 후손들 관심에서 멀어지는 한편 외지인에게는 이채로운 풍습으로 비치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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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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