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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서 쏟아져 나온 유물... 국내 최초의 발견, 4년 후

고양시 도내동에서 발견된 '구석기 공장'... 보존 위해 역사박물관 건립해야

등록 2022.10.01 20:10수정 2022.10.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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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동 유적지에서 발견된 슴베형 석기. 4만~7만년 전의 구석기 4만 7000여 점이 발굴되어 우리나라 구석기 발굴의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재)겨레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경기) 고양 도내동 구석기 유적지, 한반도 최대 석기 제작소 추정'

도내동에 구석기 유적지가 있어? 구석기인들은 지적 능력이 그리 높지 않았을 텐데, 도구를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 내는 제작소라니? 


2018년 새해가 밝은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차가운 겨울 아침,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흥도나들목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덕양구 도내동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뭔가 엄청난 걸 발견하기라도 한 건지 많은 사람이 곳곳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언론사도 몰려와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다음 날 많은 언론·방송 매체에서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고양시 구간에서 국내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구석기 제작소가 발견됐고 이는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하는 엄청난 발견이다'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연일 관계자,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시민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양시에도 역사박물관 하나 지어야 할 때가 됐다'며 들떠 했다. 그러나 발굴 관리기관인 문화재청은 '아직 발굴 중이고 전문가 및 학계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문산 간 고속도로 흥도나들목 공사현장의 문화재 발굴조사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3차에 걸쳐 진행됐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개발 면적이 3만㎡가 넘을 경우 단계별로 사전에 문화재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먼저 문헌과 기초자료 등을 토대로 대상지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지표조사를 진행한다. 이어 유물이나 유적이 확인되거나 가능성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표본 및 시굴 조사를 실시한 뒤 최종적으로 정밀 발굴조사에 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으로 진행된 도내동 유적지 발굴 결과, 4만~7만 년 전의 구석기 유물 총 4만7000여 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석기가 발굴됐다. 종류도 주먹도끼, 찌르개, 슴베, 격지 등 다양하며, 곳곳에서 석기를 떼어낸 몸돌이 발견돼 석기 제작소로서 기능한 흔적이 뚜렷했다.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발굴된 유물의 숫자도 그러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석기 제작소'라는 존재다. 그간 국내에서는 몇 차례 석기 제작소의 사례가 보고됐지만 모두 학계의 검증을 받지는 못했다. 도내동 유적의 경우 돌감 산지이자 제작소의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출토된 석기의 수량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경기도 내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는 총 160여 개소인데 전체 출토 석기량의 4분의 1, 유적지 50여 개소를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 도내동 유적이 문화재청과 학계로부터 석기 제작소로서 학문적 검증을 받을 경우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는 아주 큰 사건이 된다. 

일산 개발 당시 발견된 5천 년 전 볍씨

1960년대 이후 꾸준한 발굴과 조사 활동을 축적해온 우리나라의 구석기문화연구는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함북 웅기 굴포리와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을 시작으로 경기도 160여 개소를 포함해 전국에 몇백 개의 유적이 분포해 있다.

과거에는 주로 당시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동굴이나 하천 주변에서 발견되는 양상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대단위의 토지개발 사업이 활기를 띠며 다양한 장소에서 구석기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구석기의 시대구분은 아직 편년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13만 년 이전을 전기, 13만~4만 년까지를 중기, 4만~1만 년까지를 후기로 구분한다. 

고양시에서는 도내동 유적이 발견되기 이전에도 일산가와지 유적을 비롯해 덕이동, 탄현동, 삼송동 등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 고양시는 지형상 동북부는 산악지대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부는 야산지대다. 남서부는 한강과 공릉천 연안 토사 운반작용과 침식작용으로 충적지가 발달돼 비교적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로 이뤄져 있다. 이처럼 남서부 지역은 하천을 낀 너른 벌판이어서 먼 옛날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장소도 대부분 이들 남서부의 한강 인근지역이다. 특히 일산 가와지 유적은 일산신도시 개발지역 발굴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의 유물 508점이 출토됐는데,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함께 출토돼 주목을 받았다. 고양시에서는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시초라며 '가와지 볍씨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많은 이벤트를 진행했지만, 학계의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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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동 구석기 유적 발굴현장 인근에 설치된 유적공원 이정표 ⓒ 고양신문

 
역사박물관 건립 고려해야

도내동 흥도나들목 공사현장에서 한차례의 소란이 있고 난 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흥도나들목 공사는 일부 설계변경을 거쳐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그 한가운데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발굴현장에는 문화재청의 방침에 따라 작은 유적공원과 전망대, 안내판 등이 설치됐다.

홍보가 부족하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 이곳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잡풀이 무성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박물관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양시민들이 그 가치를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진입도로 정비와 좀 더 보완된 내용의 전시시설이 조속히 갖춰지기를 기대해 본다. 

개발과 보존의 문제는 항상 '양날의 검'이다. 어느 쪽을 쓰든 이익과 손실이 같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국외여행으로 선호하는 유럽에 갈 때 무엇을 보러 갈까? 그것은 문화적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잘 보존된 문화유산을 보러 가는 경우가 다른 이유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개발과정에서 자주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손실. 중앙이나 지방정부 관계자, 개발사업자들의 좀 더 세심한 관찰과 고민이 요구된다.

그동안 몇 차례 논의만 되풀이 중인 '고양시 역사박물관' 건립 문제도 이제는 경제적인 논리가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역사박물관은 건립에 드는 비용이나 입장객의 수치로만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존재다. 지역의 뿌리인 고양 정신의 집합체이고 저장소다.

더구나 도내동 유적지에서 발견된 소중한 구석기뿐 아니라 그동안 고양시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할 역사박물관이 없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다. 이 또한 엄청난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전통과 문화적 자긍심이 미약한 108만 고양특례시는 자칫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K-POP, 드라마로 시작한 한류문화가 음식문화로까지 확대되며 세계시장을 정복해 가듯이 문화의 힘은 결코 수치로만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이다. 이제 108만 고양특례시의 미래를 굳건히 지탱할 수 있는 고양정신의 저장소 고양시 역사박물관 건립에 주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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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공원 내 전망대에 설치된 안내판. 시민들이 도내동 구석기 유적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접근로 정비와 전시시설 보완이 필요하다. ⓒ 고양신문

 
[참고자료] 
1. 『서울-문산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부지 내 유적(도내동 유문산포지4) 발굴조사 약보고서』(2019. 겨레문화유산연구원) 
2. 『한국고대사 입문·1 : 한국 문화의 기원과 국가형성』(2010. 신서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고양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일산동구도서관 과장입니다.
#구석기 #구석기공장 #유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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