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플랫폼 노동 문제 등장과 확산 맥락

일본의 플랫폼 노동 문제, 한국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등록 2022.09.02 13:44수정 2022.09.0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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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아마존 재팬 배달기사 노동자들이 지역일반노조에 가입하면서 노조 결성이 이루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반노조 행태를 보여온 아마존에서 또 하나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물론 엄밀히 이야기하면 아마존 재팬에서 노조가 결성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에 이미 아마존 재팬의 정규직(관리직) 사원들이 장시간 노동과 가혹한 노동 환경 등 이른바 '블랙기업' 행태를 고발하며 아마존재팬노동조합을 결성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배달기사들의 노조 결성만큼 커다란 주목과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 배경에는 이번 노조 결성의 주인공인 배달기사들이 거대 IT기업에서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이 '플랫폼 노동자'인 것은 아니지만, 관련 분야에서 '위장청부'라며 노동자성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도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용 및 노동조건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1985년 파견법 제정 이후 간접고용이 고도로 발달하고 확산해 왔다. 그 때문인지 한국의 '특수고용'과 같은 문제는 비교적 크지 않았다. 말하자면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웅을 겨루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일본은 간접고용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선배'이고, 특수고용 내지는 '위장 자영'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후배'인 셈이다. 어쨌든 지금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위장 자영 노동자들이 확산되어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노동의 급속한 확산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위장 자영 노동자들의 확산 배경과 맥락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앞서 짚어본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파견 노동이 허용되었고, 제조업 파견 허용 등 그 제약요건도 훨씬 느슨했다. 한국의 IMF 외환위기와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은 것도 아니어서 일거에 피고용자인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전환하는 일도 없었다. 일본의 위장 자영 노동자들은 일반화된 간접고용 관계 속에서 등장해 확산하였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일본에서 위장 자영 노동자가 확산한 시기는 2000년대 중후반과 2010년대 중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두 시기 모두 아베 정권이 관련되어 있다. 2000년대 중후반 고이즈미 내각과 이어지는 1차 아베 내각이 추진한 노동 개혁은 노동시장을 한층 더 유연화하는데, 그 핵심은 파견규제 완화였다. 그래서 파견 노동 중에서도 더욱 취약한 이른바 '일용파견'이 확산되었고, 후일 이들이 2008~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대거 거리로 내몰리며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동시에 2000년대 중후반에 걸쳐 위장자영 노동자들이 확산되며 노동자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로 다단계 하청 구조가 발달한 건설업이나 IT 분야(시스템 엔지니어링 등)에서 확산되었고, 일본 정부도 이들이 겪는 문제를 포착하면서 '개인청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른바 개인청부 노동자들이 이 시기 제기한 노동자성 인정 소송 가운데 건설 관련 분야(유지보수 업무)의 이낙스(INAX) 사건은 2011년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최고재판소(대법원에 해당) 판결을 받아 큰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개별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해 일하던 개인사업자 형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재판에서는 사용종속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제시되며 노동자성이 인정된 사례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고용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판결이 더 많고, 전 사회적으로 간접고용이 확산되어 있어 사용자 책임 회피라는 문제에 대해 일종의 마비 상태가 고착화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돌아온 아베는 아베노믹스로 지지율을 올린 뒤 다시금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번역되어 사용되는 '일하는 방식'이 강조되며 노동시간 유연화가 추진되었다. 일하는 방식이란 '고용'이나 '노동'과 같이 노동관계법으로 규정되는 개념 자체를 회피하는 정치적 언어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대놓고 '고용 관계에 의거하지 않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발명하여 그 확산을 꾀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2차 아베내각의 노동개혁에서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같은 환경 변화가 본격적인 정당화 근거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집약된 노동 개혁 방안이 2016년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일하는 방식의 미래 2035〉 보고서였다.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 신경제연맹이라는 IT업계 중심의 경제단체다. 이들은 우선 우버와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 도입을 추진하였다. 신경제연맹은 후생노동성의 노동개혁 방안 발표 두 달 뒤에 〈승차공유 실현을 향하여〉라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 핵심 내용의 한 축은 '고용 관계에 의거하지 않는 노동'의 확산이었고, 여기에서는 여성이나 고령자 등의 경제 활동 참여 증대가 정당화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물론 정치권의 제동으로 승차공유는 여전히 합법화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일본에서 승차공유 도입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일본의 거대 IT 기업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다. 그는 미국의 승차공유 서비스인 리프트에서 거액을 출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승차공유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존 택시 등 업계 반발은 물론, 과거 유사한 형태로 불법 지입제 택시 영업을 하다 초장시간 노동 등 문제를 낳으며 적발된 사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개인 청부 등 형태로 불려온 다양한 직군들에서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수도 및 가스 검침원, 공영방송 수신료 수금원, 애니메이션 원화 작업 노동자, 가사도우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급격한 노동조건 저하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이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형태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우버이츠 배달 노동자, 호텔 체인의 업무위탁 지배인, 배우나 음악가 등 예술인 등이 새롭게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나서고 있다.

한편, 아베 내각 당시에도 '일하는 방식 개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컸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다른 한편에서 '노무 제공자' 개념 등을 참고하여 '고용에 의거하지 않는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 방안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이 프로세스는 곧 중단되었다. 나아가서 2020년 초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계속고용 노력의무 부과에 대해 선택사항으로 고용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도 허용하였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겪고 있는 노동력 부족을 플랫폼 노동 등 '고용 관계에 의거하지 않는 노동'으로 메우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2021년 초에는 '프리랜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이른바 프리랜스 형태의 노동을 '고용 관계에 의거하지 않는 노동'의 한 축으로 장려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문제는 프리랜스 노동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정작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일방적 계약중지나 산재보험 미적용에 대한 보호 방안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급속하게 확대되면서 나타난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전 세계적 추세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자웅을 겨루고 있어 안타깝다.

정치인으로서의 아베 전 총리는 '정교분리의 불철저함'이라는 또 다른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배경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고용 관계 부정이라는 극단을 추구하는 노동 유연화 정책은 현재의 기시다 정권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고용 관계에 의거하지 않는 노동'의 다양한 형태들을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확산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기시다 내각은 앞서 말했던 '가이드라인'에 이어 프리랜서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세계의노동' 꼭지에도 실렸다.
#플랫폼 노동 #비정규직 #노동 #노동자성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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