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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없는 서울' 외친 오세훈, 진심이라면 이렇게 하시라

[주장] 폭우 속 '정치 실종'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오세훈 시장이 해야 할 일 7가지

등록 2022.08.13 14:31수정 2022.08.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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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의 뜯겨진 반지하 창틀에 침수된 반지하방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숨진 3명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참사 현장에서는 소방대원들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8일 밤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강남구 등 주요 도로가 물에 잠기고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40대 여성 발달장애인 A씨와 여동생, 그 여동생의 10대 딸 일가족 3명이 반지하 주택에서 나오지 못해 익사했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택에서도 50대 여성이 사망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에 있는 기택이네 집 반지하(외신의 'BANJIHA' 보도)의 현실이 조명되자 정부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번 폭우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고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여전히 폭우가 오면 반지하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집이 물에 잠기고,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는 나라라는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윤석열의 현장 방문과 오세훈의 대책 발표

윤석열 대통령이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방문했지만,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대통령실이 홍보용으로 사용해서 논란만 일으켰다.

윤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근데 여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이 되더라고"라고 피상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사망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 반지하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처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라는 지시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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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로 인해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 반지하 집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 ⓒ 대통령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일 '서울시 지하, 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우선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자치구에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하는 한편, 건축법 개정을 통해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현재 있는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일몰제'를 적용해서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 대상에 모아주택이나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오세훈 시장이 반지하를 주거형태에서 없애겠다는 방침을 세운 방향은 옳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계획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10년 수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서울시는 침수지역 반지하 주택의 건축허가를 제한하도록 건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택공급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 주택 비용이 지상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수많은 문제와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반지하는 없애는 것이 맞지만, 현재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주 문제를 해결할 체계적인 대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해야 할 일 7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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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발달장애 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문제 해결 약속에 진정성이 있다면 오세훈 시장이 먼저 해야할 일들이 있다. 첫째, 서울지역 반지하 주거 현황을 전수조사해야 한다.

통계청 자료(2020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96%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서울 시내 지하(반지하) 주택은 20만849가구에 달한다. 서울시 전체 가구(301만5371가구)의 6.6%다. 관악구(2만113가구), 중랑구(1만4126가구), 광진구(1만4112가구) 등 노후주택 단지에 몰려있다.

오세훈 시장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이 20만 가구의 실태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경험한 폭우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앞으로 매년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올해 안에 반드시 전수조사를 마쳐야 한다. 이를 위해 최우선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피해에 대처할 수 있다.

국토부도 조사한다고 했는데 서울시가 추진하는 조사와 중복이 될 수 있다. 행정력과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서울시가 국토부와 잘 협의해서 합동으로 조사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반지하 거주자 전수조사를 통해 상습침수지역, 침수우려지역,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 자가거주자 등을 분류하고 이들이 단계적으로 이전할 수 있는 장기적인 종합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 반지하 거주자 중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부동산 가격에 어쩔 수 없이 주거안정을 위해 반지하를 선택한 자가 거주자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주거취약계층이지만 자가라는 이유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반지하 거주자에 대한 실질적인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서울시의 반지하 전면금지 방침에 대해서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울 안에서 옮겨갈 수 있는 값싸고 질 좋은 주택이 없다'며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반지하를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오세훈 시장은 반지하 전면금지를 실현하기 위한 체계적인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윤석열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주도 공급을 기조로 내세우면서 지난 정부 때 연평균 14만 가구였던 공공임대 공급량을 10만 가구로 줄여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 주택공급정책 역시 '신속통합기획' 등 민간주도의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도시정비사업이 활성화될수록 '저렴한 주거지'는 사라지고 주거 취약계층들은 갈 곳을 잃고 쫓겨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오 시장은 공공임대주택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SH 주도로 더욱 확대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반지하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을 우선으로 이주시키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셋째, 반지하 밀집 지역에 대한 소규모 주택개선사업, 개발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에 따른 공공임대주택 공급 방식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급량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우선 인근에 있는 주택들을 서울시와 SH가 매입해서 매입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반지하 거주 주거약자들이 인근 지역의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대규모 택지조성과 아파트 대단지 중심의 개발을 탈피해서 소규모 노후주택 밀집 지역의 개발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노후주택을 그린 리모델링하고, 반지하 밀집지역의 소규모 주택들을 모아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반지하 거주자들을 이주시키는 대책과 연계된 개발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넷째, 주거보조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서울시의 주택바우처 지급대상은 중위소득 60% 이하인 가구(주거급여 수급가구 제외)로 1인 가구 월 8만 원, 2인 가구 8만5000원, 3인 가구 9만 원, 4인 가구 9만5000원, 5인 가구 10만 원이 각각 지급되는데 이 금액으로 다른 주택으로 이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 주거취약계층이 반지하에서 나와서 지상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주거보조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다섯째, 반지하 거주자 거주환경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지하 거주자를 지상으로 이전하는 중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과 별도로 당장 이주가 불가능한 사람들에 대해 수해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완벽한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침수피해 반지하 밀집지역의 경우 저류조 및 배수 펌프장 증설, 수중모터펌프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채광, 환기 시스템 보강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여섯째, 재난대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하드웨어적 대처방안도 필요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항시적으로 찾아오는 재난에 대처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과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 이번 폭우 사태 때 신고폭주를 감당하지 못한 구조매뉴얼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출동시간이 늦어서 구조를 못 하는 경우, 구조인력의 한계, 구조 우선순위 기준의 혼재 등이 그것이다.

이제 이런 재난이 매년 찾아온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국가적 차원의 재난 대응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해당 지역에 호우가 내린다는 경보가 감지됐을 때 침수피해 지역의 반지하거주자들을 우선으로 대피시키는 시설을 지정하는 등 실질적인 대처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곱째, 용산 쪽방촌 공공재개발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폭염, 장마, 폭우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고시원, 쪽방 등에 사는 비주택 거주시설에 사는 수많은 시민을 포괄하는 주거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지하 없는 서울시를 만들겠다는 오세훈 시장이 진심이라면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하고 용산쪽방촌 공공주택개발사업을 더 이상 늦추지 말고 빠르게 추진해야한다.

지금 용산 쪽방촌 사람들은 정권 교체로 전임 정부가 제시했던 쪽방촌 공공재개발사업이 과연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 근본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서울시가 중심을 잡고 해당 지역 건물주들과 국토부를 설득해서 서울시에 존재하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확고한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재난시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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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폐지 및 공공임대주택 300만호 요구연대, 집걱정없는세상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참사 현장 부근에서 침수된 반지하에서 사망한 3명을 추모하는 회견을 열었다. ‘반지하에서 사람 죽는 나라가 선진국이더냐!’ ‘banjiha(반지하) stop!’ ‘공공임대주택 확대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온 참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국회, 서울시의회 등을 향해 반지하 거주자에게 예산 확보 및 공공임대주택 추가 확보 방안 등 실질적인 주거권 보장 대책 제시를 촉구했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이 재난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나오지 않고 전화로 대책을 지시했다는 사실에 '폰트럴타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를 정치적 공격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지금 이 난리가 났는데 국가는 뭘 하고 있는가' 시민들이 묻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국토부, 그리고 서울시는 기후위기 시대 자연재해에 의한 재난이 항시적이고 일상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처하는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거취약계층이 몰려있는 수도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국토균형발전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사회대전환을 추진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지금부터라도 구상을 해야 한다.

그만큼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32만 가구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것은 많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수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했던 지난한 과제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뿌리를 가진 문제이고,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 못한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없다. 이런 일을 하라고 정부가 있고, 정치가 있는 것이다.
   
반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축법도 개정해야 하고, 모든 국민의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주거기준을 상향하는 주거기본법, 주택법 개정도 필요하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위기는 더 이상 이런 사회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줬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평시가 아닌 비상의 대책을 마련할 기회다.

더이상 말로 그쳐서는 안된다. 오세훈 시장의 '실천'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재민씨는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입니다. 이 기사는 지역언론사에도 송고되며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hcry99)에도 실립니다
#오세훈 #반지하 #최저주거기준 #공공임대주택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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