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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명 찾아 떠난 세계문화기행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4] 그의 여행은 관광목적이 아니었다

등록 2022.08.13 14:35수정 2022.08.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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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완 목사, 양재성 목사, 수경스님, 도법 스님, 최상석 신부, 홍현두 교무, 최종수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김지하 시인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逆天(역천,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 권우성

 
그는 스스로 '최후의 국내파'로 불렀다. 1990년대의 이른바 국제화 시대에 한 번도 외국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데서 만든 은유였다.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그의 구명운동에 헌신해온 일본 지인들의 초청을 받고도 연기를 거듭하였다. 

기인 감옥살이에서 풀려났을 때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초청했으나 사양했고 미국의 하와이대학이 전 미국 대학 순회강연을 제의해 왔을 때도 거절했으며, 여러 번 일본측 초청을 어물어물 뒤로 미루어 왔다.

한 번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노신영 씨가 나의 해외 유람을 집요하게 설득해 왔으나 완곡히 사절했으며 또 한 번은 저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미국 거점인 뉴욕 사회과학대학원 대학이 박사학위를 준다고 정중히 방미를 요청해 왔지만 이 역시 정중히 사양했었다. (주석 4)

민주화가 진척되고 위험인물 리스트에서 벗어나게 되어 '최후의 국내파' 위상을 더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첫 여행지 홍콩과 베트남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에 참여하면서 이루어지고, 일본을 전후 다섯 차례에 걸쳐 다녀온 것은 학술대회ㆍ강연 등의 목적이었다.

2004~5년에 집중된 해외여행은 "새로운 문명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기행"이었다. 초청강연 차 일본에 처음으로 간 것은 1998년 겨울이다. 홍콩과 베트남 이외의 여행은 부인 김영주와 함께였다.

백두산에 가기 위해 중국을 거쳤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고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순방하였다. 알마티, 비슈케크, 이시쿨, 다스미아, 타슈켄트, 사마칸틔, 아무르, 바이칼, 마하, 하바로브스크, 비애라, 캄차카반도를 둘러봤다. 

유럽은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빈, 아테네, 로마, 파리, 런던, 미국은 보스턴, 뉴욕, 애틀랜타, 뉴올리언스, 휴스턴, 댈러스, LA,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 플레그스태프와 세도나, 제롬시티, 프레스콧, 팜 스프링스, 워싱턴DㆍC, 베트남은 하노이, 다낭, 후에 등이 그의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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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김지하 시인 ⓒ 송주민

 
그의 여행은 관광목적이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문화유적지를 방문하고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중국ㆍ러시아ㆍ중앙아시아에서는 고대문화의 동질성을 찾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자신의 번역시집 <중심의 괴로움> 출판기념회가 있었고, 시 낭송과 석학 몰트만과의 대담도 하였다. 


여행기를 책으로 엮은 <김지하의 예감>에서 몇 대목을 골랐다.(여행기에는 부인의 그림도 함께 실었다)

백설로 뒤덮힌 텐산 준봉들 위에 '침블락'이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는데 그 뜻이 '하늘 높이 멀리 있는 샘물'이라는 설명 앞에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 천지의 바로 그 '천지天池'가 아닌가!

산 높은 곳에 있는 연못을 신성시하고 그곳에서 신령한 제사와 장터와 공동체의 정치회의를 벌인 역사와 전통이 바로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한민족의 풍류, 신시, 화백으로 이어졌음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식간을 매개해 준,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시 한 구절이 있다.

'산 위에 물이 있음이여!'
그렇다.
이것은 고조선의 백두산 천지에 근거를 둔 동이문화로부터 동학사상 때까지 이어지는 '한'의 전통이요 동학의 5만 년 후천개벽이 차이와 반복을 지닌 채 돌아가야 하는 중앙아시아 파미르 문화의 '다물'의 핵심인 것이다. (주석 5)

중앙아시아에는 도처에 '서낭당'이 남아 있다. 당연히 '서낭신앙'도 남아 있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서낭당'부터 찾기로 했다.

비슈케크로부터 텐산 쪽으로 고도 1700미터를 지나 2000미터 이상 되는 '알라-아르찬'을 오르기 시작했다. 백두산이 2700미터인 데 비하면 과히 낮은 산도 아닌 셈, '알라-아르찬 산 마즈라 서낭당'의 또 다른 이름은 '밥 먹는 자리'다. 된장국까지 끓여서 현지인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가파른 시냇물 이쪽저쪽에 커다란 마즈라나무 두 그루에 각종 빛깔의 천조각이 가득가득 묶여 바람에 흩날린다. (주석 6)

함스부르크 왕가 이후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곳을 웅변하는 벨베데레 궁.
오스트리아의 중립과 평화는 1955년 이 궁전에서 발표되었다. '옛 것을 결코 바꾸지 않는' 바로크의 도시임을 드러내는 궁전이다. 

나는 알 것 같았다.
그 전례가 없는 어려운 중립의 선언을 가능케 한 것은 사람 얼굴에 사자의 몸을 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스핑크스의 힘! 그 오랜 절대왕권과 왕가의 집중의 힘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모권제의 여신의 힘에 의해 집중했다는 독특한 역사에 있었음을…….
1945년에서 1955년 사이 영ㆍ미ㆍ프ㆍ소 4개국의 신탁통치 후 1955년 5월 15일 중립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힘의 참된 근원은 바로 그 '바로크'와 '마리아 테레지아'에 있었다는 얘기다. (주석 7)


주석
4> <김지하의 예감>, 9쪽, 이룸, 2007.
5> 앞의 책, 84~85쪽.
6> 앞의 책, 115쪽.
7> 앞의 책, 23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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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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