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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사 김병조가 '야당 비하 발언' 다시 사과한 이유

개그맨에서 한학자로 24년... 그가 강조한 명심보감의 핵심

등록 2022.08.12 04:56수정 2022.08.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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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머리' 김병조씨가 전라남도 선비문화 체험프로그램에서 ‘청렴’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강진다산박물관에서다. ⓒ 이돈삼


"귀이망천자불구(貴而忘賤者不久)라고, 높은 자리에 오른 뒤 신분이 낮고 비천했던 때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 가난하거나 부자일 때나, 지위가 낮을 때나 높을 때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늘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한학자 김병조씨의 얘기다. 김씨는 "인기있을 때나 없을 때나, 수입이 적든 많든,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야간업소에 출연하지 않았고, 술이나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연예계의 짠돌이'로 소문이 나 있다. "김병조와 뽀빠이 이상용이 커피를 마시면, 돈을 누가 내냐? 지나가는 피디가 낸다는 말도 회자된다"고 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저축유공자 표창을 받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김씨가 지난 7월 8일과 15일, 22일 전라남도 선비문화 체험프로그램에서 '청렴'을 주제로 특강했다. 장소는 강진다산박물관이었다. 1980년대, 이른바 '배추머리'로 널리 알려진 김병조씨를 강진에서 따로 만났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데서 사고가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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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씨가 강진 사의재의 마루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전남선비문화 체험프로그램에서 특강을 한 직후다. ⓒ 이돈삼

 
1950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가 진행하던 <일요일밤의 대행진>은 시청률 60∼70%를 찍었다.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자 톱스타였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물론 어린이 프로그램인 <뽀뽀뽀>에도 출연했다. 여러 편의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지구를 떠나거라', '먼저 인간이 되어라', '나가 놀아라'는 그가 유행시킨 말이었다.

사고는 의외의 장소와 상황에서 터졌다. 1987년 6월 10일 한 정당의 정치행사에 초대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민정당 전당대회와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였다. 그날은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구호가 온 나라를 뒤흔든 6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대본대로 하되, 끝에다 한 마디만 추가하라고 주최 측에서 요구했습니다. 다른 당을 비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걸 꼭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광산 김가 선비 집안의 7대 종손답게 당당히 거부했어야 하는데, 제가 그걸 못 했습니다."

야당을 비하하는 그의 말이 신문에 보도됐다. 파장은 컸다. 섭외한 정당의 입장에서 한 풍자 한 마디로 다수 국민의 공적이 됐다. 그 여파로 출연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그만뒀다. 여러 편의 광고 출연도 중단됐다. 자괴감이 들어 더 이상 방송에 출연할 수가 없었다. 그의 나이 38살 때였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사건과 사고는 '괜찮겠지'에서 발생합니다. 방송도 아니고, 정치행사이고 쇼인데 괜찮겠지,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 反求諸己)라고, 모든 것은 제 탓입니다. 사려 깊지 못한 행동,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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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씨가 지난 7월 15일 강진 다산박물관에서 열린 전라남도 선비문화 체험프로그램에서 ‘청렴’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이돈삼

 
김씨는 고향 하늘을 그렸다. 그 시절,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준 것이 <명심보감>이었다. 어려서부터 보고 익힌 명심보감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나침반이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人間之事 塞翁之馬)'라고, 고난이 또 다른 기회로 찾아왔다. 광주에 있는 한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진행 제안을 해왔다. 서울과 광주를 매주 오가며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 번도 펑크를 내거나, 지각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에서 방송한 지 7년 됐을 때입니다. 조선대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방송을 위해 내려오는 날, 강의를 하면 어떻겠냐고? 연극·영화 분야 강의 요청이었는데, 제가 역제안을 했습니다. <명심보감>을 강의하겠다고. 학교 측에서, 속으로 웃었을 겁니다. 진짜 웃긴 사람이라고." 

1998년 대학 강단에 선 이래 '명강사'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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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병조씨. 지난 7월 22일 전남 강진에 있는 한 식당에서다. ⓒ 이돈삼


대학 강단에 선 것이 1998년. 학부가 아닌, 평생교육원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은 학부와 대학원에서도 강의를 한다. 올해로 24년째다. 대학뿐 아니라 전국의 중·고등학교, 공무원과 민간연수원 등을 다니며 '명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수강생은 10대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다. 직업도 학생, 공무원, 직장인, 군인, 주부, 할머니․할아버지까지 가리지 않는다. 주제도 인성, 행복, 청렴, 리더십 등 다양하다. 선비문화 체험프로그램에서 특강을 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저는 고향말 가운데 '안쓰럽다'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건 엄마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건강해도, 우등생이어도, 성공해도, 엄마는 늘 안쓰러워합니다. 자식이 80살이 돼도 안쓰러워해요. 자식이 죄를 지어도, '저놈은 원래 착한데, 내가 잘못 가르쳤다'며 엄마 탓을 하십니다. 엄마는 성인이십니다."

김씨는 '공직자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무한책임이고, 주민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젓갈과 고구마순을 팔며 자신을 키운 어머니, 가난한 환경에서 동생(김병조)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누나 이야기를 할 때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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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씨가 지난 7월 15일 강진 다산박물관에서 열린 전라남도 선비문화 체험프로그램에서 ‘청렴’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이돈삼

 
"장사빈난위곤 자연불교(長思貧難危困 自然不驕)라. 가난해서 살기 어려웠을 때나 위급하고 곤란했을 때를 늘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교만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습니다. 제가 유행시킨 말 '먼저 인간이 되어라~'는 명심보감의 핵심입니다."

김씨는 "먼저 인간이 되고 상대를 사랑하는 공직자가 되면, 청렴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면서 "앞으로도 선현의 지혜를 알기 쉽게 전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 무대에서 강단으로, 관객 대신 수강생을, 대본 대신 교재를 택한 김씨는 "방송은 재밌고 유익해야 하고, 교육은 유익하면서 재밌어야 한다"면서 "재밌는 교육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젊은 날의 '배추머리'에서 농익은 '시래기'로 살고있는 한학자 김병조씨의 뒷모습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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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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