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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즐기는 윤 대통령, 이순신 영화라도 보시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지지율 폭락 속에서도 꿋꿋하게 휴가 즐기는 대통령

등록 2022.08.04 15:40수정 2022.08.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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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트위터 계정 글 ⓒ 트위터


"[평산마을 비서실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월요일부터 며칠 동안 여름휴가를 갈 계획입니다. 시위하는 분들,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7월 30일 문재인 전 대통령 트위터 계정 글

현직도 아닌 전직 대통령의 휴가 계획이 이목을 끌었다. 함께 올린 사진 속 '우리들의 평화와 일상을 돌려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평산마을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사진으로 보인다. 지지자는 물론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욕설 시위' 중인 유튜버들이 헛걸음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공지였다.

이를 두고 '배려'부터 '우회적 비판'까지 갖가지 반응이 쏟아졌다. 이후 제주도로 휴가를 간 문 전 대통령 부부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재임 후반 3년간 코로나19 대응 등으로 휴가를 반납한 만큼 일상을 즐기는 전직 대통령의 자연스런 모습은 관심을 받을 만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조명을 받기 마련인 대통령의 휴가는 언론과 국민들의 전통적인 관심사였다. 10년 전 '저도의 추억'이라 명명됐던 박근혜씨의 휴가 사진이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던 일을 상기해 보라.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들이 휴가 기간 읽은 책들은 어김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곤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일부터 5일간 여름휴가에 돌입했다. 지방 휴가 대신 자택 휴가를 택했다. 대통령실은 "일과 비슷한 일은 안 할 것"이란 설명을 내놨다. '영화도 보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겠다'는 취지였다. 대통령 휴가에 쏠린 관심은 납득이 간다. 출근길 문답을 위시해 언론 노출을 즐기던 대통령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마침 3일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평소 영화 관람을 즐긴다고 공언해 온 윤 대통령에게 휴가 중 <한산>과 전작 <명량> 관람을 강력하게 권하는 바다. '이순신 리더십'을 간접 체험할 기회요, <칼의 노래>와 같은 '이순신 서적'을 읽는데 걸릴 귀한 시간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2천만 관객이 호응한 이순신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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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용의 출현>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관객 다수가 꼽은 <한산> 속 이순신의 명대사다. 무의미한 죽음이 난무하는 전투와 임진왜란의 의미를 회의하는 '항왜' 준사에게 영화 속 이순신은 자신의 철학을 긴 설명 대신 이 짧고 굵은 정언으로 대신한다.

'역사가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음에도 관객들은 이순신과 조선 군사들이 왜군을 때려잡는 전투 장면에서 영화적 쾌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전작의 '반일' 논란을 의식한 듯, <한산>은 '항일'로 귀결될 수 있는 왜군의 잔악함 등을 강조하지 않았다.

'반일'이나 '항일'이란 일방적인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으려 상당한 자제력을 발휘한 것이다. 300억 원 넘게 들인 상업영화조차 이런 신중한 자세로 까다로운 우리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현 정부의 대일 외교는 정반대로 보인다. 한일 관계 개선을 빌미로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지소미아)과 강제징용 배상, 한미일 군사협력 등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일본은 느긋한데 윤석열 정부만 몸이 단 것 아니냐는 평가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달 박진 외교부 장관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면담 직후 시민사회는 '굴욕적 대일외교'란 비판을 이어가는 중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반발은 예상 그대로였다.

<한산> 속 이순신의 과묵함도 눈여겨볼 만하다.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쳤다. 전세는 수세에 몰렸다. 거북선(구선)의 출정도 불투명하고, 원균은 호시탐탐 이순신을 깔아뭉갤 틈만 노린다. 그럴수록 이순신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영화적으로는 심심하기까지 한 이순신의 과묵함과 신중함은 후반부 학익진을 통해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반전의 기반으로 작용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은 어떠한가. 기자들 앞에 몸소 나섰던 출근길 문답은 '지지율 폭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형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가볍고 신중하지 못한 화법과 태도가 화근이었다. 공허하고 허울뿐인 대통령의 말 잔치는 고스란히 실제 정책 사이의 괴리로 나타났다. <한산> 속 젊은 이순신의 과묵함과 신중함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 말잔치는 결국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으로 나타나는 중이다.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의 '만 5세 조기 입학' 정책 추진 과정이 대표적이다. 오락가락 갈팡질팡 하루 이틀 사이에도 몇 번씩 말이 바뀐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안정감을 느끼고 신뢰할 여지를 본인들이 차단하는 꼴이다. 전투 끝까지 일관성 있고 신중하게 '바다 위의 성'이라는 학익진을 밀어붙인 이순신과 역시나 대비된다.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니라."

<명량> 속 이순신이 아들에게 건네는 이 유명한 대사야말로 이순신의 애민(愛民)정신을 함축한다. <한산>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거북선을 포함해 내부에서 실제 함선을 끌어나가는 일반 군사들의 피와 땀을 조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애민의식을 바탕으로 군사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던 이순신의 리더십을 시각화한 설정이다.

아울러 <명량> 속 마지막 전투를 앞둔 이순신은 고뇌하고 또 고뇌한다. 불리한 형세로 인해 군사들과 백성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악몽까지 꿀 정도였다. 냉정한 상황인식과 처절한 자기 성찰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백성을 향한 충정. 이야말로 영화들의 완성도와 별개로 '리더 이순신'에 도합 2000만 넘는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일 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봉했던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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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명량>은 세월호 참사 직후이던 2014년 여름 개봉했다. 당시 관객들은 현실 속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하는 동시에 영화 속 이순신의 리더십을 통한 대리 만족을 호소했다. 공교롭게도, 8년 후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반 <한산>이 당도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8%까지 폭락했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을 향한 민심이 흉흉하다. 다만, 작금의 지지율 폭락은 외부적 요인보다 취임 이후 대통령과 정권 스스로 자처한 측면이 다분하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냉정한 상황인식과 겸손한 자기성찰은커녕 오만과 독선의 정치로 일반 서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인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지적은 여야, 보수진보, 지지층을 뛰어넘는 중이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순신 리더십에 호응해온 국민들이 취임 100일도 안 된 윤 대통령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3일 방한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 인사가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순방에 나선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공개한 입국 사진에 우리 정부 인사가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외교 참사'와 '윤석열의 중국몽' 등 갖가지 반응이 쏟아졌다.

4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따로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 한다고 발표했다. 펠로시 의장이 아시아 타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가진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명량> 속 이순신의 대사가 떠오른다. 지지율 폭락 속에서도 꿋꿋하게 휴가를 즐기는 중인 윤 대통령이 향후 제시할 카드로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한미동맹일까, 그도 아니면 검찰공화국의 완성일까. 정국 구상 중이라던 윤 대통령의 휴가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윤석열 #이순신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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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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