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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품으로 만든 공원과 공연장... 작은 마을에 별 게 다 있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30] 콴타스 항공사의 고향 윈톤

등록 2022.07.27 16:03수정 2022.07.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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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에서는 360도 지평선을 자주 만나게 된다. ⓒ 이강진


다음 목적지는 윈톤(Winton)으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적당히 운전하여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린다. 자동차는 많이 다니지 않는다. 도로를 달리는 기차(Road Train)라 이름 지어진 긴 트럭을 가끔 마주칠 뿐이다. 도로변에 세운 경고판에는 트럭 길이가 53.5m라고 쓰여 있다. 마주치거나 추월할 때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오팔을 발굴한 지역, 윈톤 

한참을 운전해 야영장에 도착했다.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지역에 새로 조성한 야영장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반긴다. 야영장 주인이다. 이 동네에 최근 정착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도시에서의 삶을 등지고 오지에서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모습이 부럽기조차 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솜씨로 캐러밴을 설치하고 동네를 둘러본다. 동네 중심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도 많다. 사람들이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는 술집(pub)도 서너 개나 있다. 특별한 생각 없이 찾아온 동네다. 그러나 호주를 누비는 여행객에게는 잘 알려진 관광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날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관광안내소는 월칭 마틸다 센터(Waltzing Matilda Centre)라는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건물이다. '월칭 마틸다'는 호주 사람이라면 모두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다. 비공식 호주 국가라고 불릴 만큼 사랑받는 노래이기도 하다. 한국에 아리랑이 있다면 호주에는 월칭 마틸다가 있다.

이렇게 유명한 노래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던 동네가 윈톤이라고 한다. 오래전(1895년) 이곳에서 가까운 목장에서 시인(Banjo Paterson)이 작사했다. 그래서일까 건물 내부는 월칭 마틸다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난다. 기념품 가게에도 노래를 상징하는 상품이 널려있다. 분위기에 휩쓸려 월칭 마틸다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집어 들었다.

월칭 마틸다 모자를 쓰고 동네를 둘러본다. 관광객을 위한 가게가 많다. 그중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오팔 보석을 파는 가게다. 가게에 들어서니 수많은 종류의 오팔이 진열돼 있다. 보석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모든 오팔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색깔만 조금 다를 뿐인데도 가격 차이가 심하다. 지금까지 발굴된 오팔 중에서 가장 큰 오팔도 윈톤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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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톤에는 오팔(Opal)을 파는 가게가 많다. ⓒ 이강진

 
보석 가게를 나와 도로를 건너니 콴타스(Qantas) 항공사에 대한 정보가 진열대에 가득한 건물이 보인다. 호주의 대표적인 콴타스 항공사가 1921년 첫 번째 이사회(Board Meeting) 모임을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항공사가 처음으로 거래를 시작한 은행도 윈톤에 있다. 따라서 작년에 열린 항공사 100주년 기념식에는 콴타스 사장도 참석했으며, 두툼한 책(Winton and the QANTAS Story)도 출간했을 정도다. 인구는 1000명도 되지 않는 오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자랑거리가 많은 동네다.

동네 주변을 걸으며 기웃거리는데 특이한 공원(Arno's Park)이 보인다. 쓸모없어 버려진 폐품으로 가득한 공원이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폐품을 수집해 조성한 담장(Arno's Wall)이다. 길이가 70m인 담장에는 손재봉틀을 비롯해 온갖 폐품이 널려 있다. 상식에서 벗어난 담장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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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폐품으로 조성한 담장(Arno’s Park) ⓒ 이강진

 
하루를 끝내고 식사 준비하려고 수돗물을 틀었다. 그런데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물이 나쁠 것 같아서 생수로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관광 안내 책자를 들척이는데 물에 대한 정보가 있다. 수돗물은 지하 1.2km에서 퍼 올린 100도 가까이 되는 물을 냉각해서 제공한다고 한다. 땅속에서 나오는 물을 직접 제공하기 때문에 유황 냄새가 나지만, 끓이든가 조금 두었다 마시면 냄새가 없어진다는 설명이 있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수돗물은 수질이 좋기 때문에 물통에 담아 가는 여행객이 많다며 수돗물 자랑이 대단하다.

각종 타악기가 비치된 희한한 공연장 

다음날은 관광안내 책자에서 소개하는 국립공원(Bladensburg National Park)을 찾았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원이다. 동네를 벗어나 10여 분 운전해 공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허허벌판이다.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황량한 들판을 운전한다. 건조한 땅에서 몸을 비틀며 삶을 견디어내는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들 사이로 새 떼가 날아가기도 한다.

조금 더 운전해 들어가니 구멍 난 해골(Skull Hole)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이름이 쓰여있다.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 본다. 강바닥을 드러낸 계곡이 나온다. 물이 흘렀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지금은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1800년대에 200여 명의 원주민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지명에 해골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다.

화살표를 따라 공원 깊숙이 들어가니 또 다른 계곡(Scrammy Gorge)이 나온다. 비가 온다면 멋진 폭포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 계곡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지금은 물이 보이지 않는다. 공원에는 이러한 계곡이 곳곳에 있다.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구경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야영장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먼지를 씻어낸다. 호주가 아닌 아프리카의 황량한 들판에 다녀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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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멋진 폭포를 만들어 낼 것 같은 계곡(Scrammy Gorge) ⓒ 이강진

 
윈톤에서 자랑하는 관광지로는 공룡 화석을 볼 수 있는 박물관과 오팔 광산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굳이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공룡은 박물관에서 많이 보았다. 그리고 보석에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한가하게 자동차로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동네 외곽에 있는 저수지를 지나친다. 지하에서 퍼 올린 물을 보관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물을 냉각해 수돗물로 제공한다. 야채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의 야채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식빵도 냉동고에서 꺼내 준다.

동네에는 골프장도 있다. 호주에서는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기는 운동 중에 하나가 골프다. 그래도 뜻밖이다. 이렇게 황량한 곳에 골프장이 있다니. 그러나 평소에 알고 있는 골프장이 아니다. 잔디는 보이지 않는다. 잔디가 빼곡히 있어야 할 그린조차 모래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골프를 포기하지 못하는 호주 사람들, 골프 사랑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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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가 없는 곳에서도 골프를 즐기는 호주 사람들 ⓒ 이강진

 
타악기들이 즐비한 장소(Musical Fence)도 있다. 악기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자동차 바퀴부터 가스통까지, 두드려서 소리가 날 수 있는 모든 악기(?)가 비치된 공연장이다. 준비해 놓은 스틱으로 이것저것 두들기며 나만의 연주를 한다. 나름대로 특유한 소리가 흥미를 유발한다. 드럼 치는 음악가가 와서 공연하면 기발한 연주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특이한 공연장을 생각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본다. 양복을 즐겨 입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털털한 자유인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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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수집해 놓은 공연장(Musical Fence) ⓒ 이강진

 
야영장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수돗물을 튼다. 첫날 무척 꺼렸던 물 냄새가 정겹기까지 하다. 식후에 마시는 차도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물에 대한 설명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편견을 가지고 폄하했던 수돗물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편견으로 멀리했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할 수는 없을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부처라는 말도 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 대하듯, 부처님 대하듯 할 수는 없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이 수행을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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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최대의 항공사가 태어난 동네라는 것을 자랑하는 조형물, ⓒ 이강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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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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