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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에게 수박 한 조각 건네는 인심이 여태 살아있다니

공재 윤두서 후손들 모여 사는 '땅끝' 해남 초호마을

등록 2022.07.25 10:58수정 2022.07.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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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논과 어우러지는 방풍림. 짙게 물든 나무와 벼가 여름날을 대변하고 있다. ⓒ 이돈삼


여러 해 전, '땅끝' 해남으로 가는 길이었다. 황량한 들녘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고목이 줄지어 있었다. 한눈에, 방풍림임을 직감했다. 줄지어 선 버드나무와 팽나무의 나이도 지긋해 보였다. 밑동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났다. 해남 윤씨의 옛집과 어우러져서 더 아름다웠다.

백방산(198m)과 사이산(162m)이 에워싸고 있는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다. 그 마을을 지난 17일 다시 찾았다. 계절을 달리해서, 초록이 짙어가는 여름날이다.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을 듯한 날씨다. 저만치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하늘은 희끄무레했지만, 방풍림은 여전히 늠름하다. 버드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의 이파리도 무성하다. 흡사 마을을 지키는 문지기나 장승 같다.

방풍림 주변으로 꽃이 많이 피었다. 참깨밭에는 깨꽃이 하늘거리고 있다. 호박꽃, 참외꽃도 피었다. 넝쿨 사이로 어린 호박과 참외가 얼굴을 내민다. 가지런히 서서 키재기를 하는 고추밭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돌담에 기대어 핀 능소화의 자태가 요염하다. 돌담을 기어오른 계요등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하얗게 핀 인동초는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한적한 농촌이다.

고목 아래 놓인 정자에서는 이야기꽃이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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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기대어 핀 초호마을의 능소화. 길가에서 길손의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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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림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 마을 어머니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 이돈삼

 
줄지어 선 고목 아래에 정자가 들어서 있다. 계단 아래에는 주인을 닮은 신발이 여러 켤레 놓여 있다. 마을에 사는 어머니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한 어머니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며, 길손에게 수박 한 조각을 건넨다.

"고맙습니다. 여기가 어머니들 쉼터인가요?"
"날마다 이렇게 모여서 놀아. 수박도 먹고 이야기도 하면서. 남자들 쉼터는 저쪽이여."


어머니가 가리키는 방풍림 반대편에 정자가 더 있다. 아버지들의 쉼터다. 100여 미터 떨어진 정자에선 바쁜 일을 끝낸 어르신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있다.

어머니들 쉼터 앞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표지석에는 '들독'이라 씌어 있다. 그 위에 큰 돌덩이 하나가 놓여 있다. '들독'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 무병장수를 소망하는 유물이다. 들독을 들어 올려 힘자랑을 하면 성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품앗이 자격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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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독과 표지석. 품앗이의 상징인 들독은 마을에 전해지는 유물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초호마을은 '써레시침'의 전통도 이어오고 있다. 써레시침은 모내기를 하려고 논바닥을 고르는 써레를 깨끗이 씻는 의례다. 모내기를 끝내고, 써레질의 고통을 잊으려고 하루 즐기는 풍속이다.

"언제부터 했는지는 몰라. 근디, 지금도 하고 있어. 모내기 끝내고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풍년을 비는 날이여." 길손에게 수박을 건넨 어머니의 말이다.

초호마을은 품앗이의 전통도 잇고 있다. 일손이 필요하면 네 일, 내 일을 가리지 않았다. 마을을 청소하고 가꾸는 일도 매한가지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함께 꾸려가는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간척지가 드넓다. 1930년대에 간척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전부 바다였다. 방풍림이 뭍과 바다의 경계였다. 초호리도 바닷가 마을이었다. 줄지어 선 고목은 나룻배를 묶어둔 계선주(기둥)였을 것이다.

간척으로 인해 마을사람들은 농사지을 땅을 얻었다. 대신 바다를 잃었다. 바닷바람에 파도가 일고, 나무가 흔들리는 풍경을 그려본다. 간척지 너머로 자리한 바다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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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 참깨밭과 어우러진 윤철하 고택의 대문간채. 마을의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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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하 고택의 대문간채 사이로 고목이 보인다. 마을 앞으로 줄지어 선 방풍림 가운데 한 그루다. ⓒ 이돈삼

 
이곳에 윤두서의 후손이 살고 있다

마을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옛집도 초호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옛집은 윤철하의 고택이다. 5년 전 윤탁 가옥에서 윤철하 고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안채 상량문에 남은 기록을 보고, 1906년 당시 건립자인 윤철하의 이름을 붙였다. 윤탁은 1984년 문화재 지정 당시 소유자다.

윤철하는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 후기의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후손이다. 공재는 초호마을에서 가까운 백포리에서 나고 자랐다. 공재의 자화상은 독특한 구도와 강렬한 눈빛, 인상적인 수염 등이 인상적이다. 백포마을에 공재 고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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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의 옛집. 초호마을에서 가까운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 있다. ⓒ 이돈삼

 
윤철하 고택은 조선 말기 호남지방 상류주택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산 아래 경사진 자리에 지어진 점이 색다르다. 대지를 3단으로 만들어 건물을 배치한 이유다.

집은 안채, 별당채, 사랑채, 대문간채로 이뤄져 있다. 대문간채는 1912년에 지어졌다. 대문간채 안으로 정원과 넓은 마당을 뒀다. 남성들이 손님을 맞는 사랑채는 중간의 높은 석축 위에 지어졌다. 사랑채 왼쪽에 작은 목욕간을 둔 것도 별나다.

그 앞에서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향나무가 눈길을 끈다. 돌담을 배경으로 핀 접시꽃도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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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하 고택 사랑채 앞에 흐드러진 향나무. 열매를 가득 매달고 있는 향나무가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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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하 고택의 사랑채. 나무와 꽃이 빼곡한 집의 정원이 아름답다. ⓒ 이돈삼

 
뒤쪽에는 중문채와 안채, 별당채가 자리하고 있다. 대문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비밀스런 공간 같다.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는 1906년, 자식들이 쓰려고 지은 별당채는 1914년에 각각 지어졌다.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별당채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안채 뒤에는 정원이 가꿔져 있다. 사랑채 앞의 돌담도 보기 드물게 장대한 멋을 풍긴다. 안채 마당에 붉은 벽돌의 큰 굴뚝과 자연석으로 쌓은 둥근 화단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윤철하 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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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마을 전경. 마을을 백방산과 사이산이 에워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간척 논이 펼쳐져 있다. ⓒ 이돈삼

 
초호마을은 북쪽으로 읍호리, 동쪽으로 황산리, 남쪽으로 송지면 금강리, 서쪽으로 백포리와 접하고 있다. 초지가 좋다고, 조선시대엔 '초평'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초호(草湖)'로 바뀌었다. 넓은 들이 푸른 호수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여졌다.

마을에는 윤두서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주된 소득을 쌀에서 얻는다. 콩과 마늘, 고추, 고구마, 참깨도 재배한다. 들판이 누렇게 채색되고, 고목에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가을에 또 다시 찾고 싶은 초호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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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림과 어우러지는 해남 초호마을. 벼논과 버무려진 풍광이 넉넉해 보인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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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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