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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의 계곡 사이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흔적들

[고도를 찾아가다 2-4] 운민의 경주별곡

등록 2022.07.20 14:28수정 2022.07.2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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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왕릉 경주 안강에 위치한 흥덕왕릉은 괘릉과 함께 신라왕릉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흥덕왕릉의 무인상도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운민


경상북도 동남쪽에 위치해 북으로는 포항시와 아래로는 울산광역시와 맞닿아 있는 경주시는 의외로 면적이 매우 크다. 전국 지자체의 순위를 따져봐도 홍천, 인제, 안동, 평창 다음가는 크기이며 서울 면적의 두배가 넘는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찾는 여행객의 발길은 경주 시내와 불국사 일대, 기껏해야 감포 근처의 바닷가에 머문다.

걸어 다니는 야외박물관이란 말이 허상이 아닌 듯 경주 전역에 걸쳐 국보, 보물급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그중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한 안강 일대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장소가 2군데나 있을 정도로 볼거리가 풍부하고, 신라시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시내 못지않게 다양한 시대의 유적군이 분포되어 있다.


경주에서 만난 예상 못한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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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형탑이다. ⓒ 운민


다만 아직까지 뚜벅이 여행자들에게는 양동마을을 제외하고는 안강으로 가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시내에서 상당히 먼 거리라 적어도 하루 이상은 여기 머물러야만 이곳의 매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 시원한 계곡물과 함께 발을 담그면서 역사를 함께 엿볼 수 있는 여행지는 흔치 않다.

안강읍 도덕산과 어래산 사이를 흐르는 옥산천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문화재를 두루 만나게 된다. 일단 가장 상류 쪽에 위치한 정혜사지 13층 석탑으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자. 한 번도 보지 못한 이형적인 석탑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진다. 보통 우리나라의 석탑은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3층 석탑과 정림사지 5층 석탑 이래로 충청 지역에서 쉽게 접하는 5층 석탑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2층부터 13층까지 급격하게 쌓아 올려진 지붕돌은 가파른 상승감을 불러일으켜 위압적인 인상을 준다. 이런 형식의 탑은 한국에서 오직 이곳뿐이다. 원래 정혜사 자리는 신라시대 당나라 사람 백우경이 모함으로 망명 와서 살던 터라고 전해진다.

그는 수원 백씨의 시조가 되었고, 9세기 무렵 이 터에 절과 탑이 들어서니 지금 우리가 보는 십삼층 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정혜사는 근처 독락당에 살던 이언적이 공부를 하기도 하는 등 조선말까지 사세를 유지해 나갔지만 1834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지금의 터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서 300미터 정도 내려가면 동방오현 중 하나인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언적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독락당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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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계곡 옥산서원 앞에 펼쳐진 너른계곡은 경주시민들의 피서지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 운민


회재 이언적 선생은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낙향하여 이곳에 독락당을 짓게 되었는데 주변 계곡과의 조화가 훌륭하기로 손에 꼽히는 가옥으로 유명하다. 계곡가에 면한 담장을 틀어막은 것이 아니라 나무로 좁은 살을 만들어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게 건축되었다.

특히 계정에서 옥산 계곡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닐 수 없다. 한동안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었던 독락당은 한옥스테이로 거듭나면서 누구나 이곳에서 숙박을 하면 그 풍경을 마음껏 접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하류로 내려갈수록 더위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이 점점 늘기 시작한다.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대단한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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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의 풍경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옥선서원, 현판의 글씨는 추사김정희가 쓴 것이다. ⓒ 운민


옥산천이 너른 바위를 만나 휘감기는 지점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옥산서원의 당당한 자태가 우리를 맞아준다. 서원 앞을 흐르는 계곡물은 이곳을 찾는 누구라도 발을 담그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게 만든다. 옥산서원은 1572년 경주부윤 이제민과 지방유림들이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건립했다. 이 서원은 1574년 임금이 '옥산서원'이라는 현판을 내어주어 사액서원이 되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회재 이언적 선생은 성리학 정립에 선구적 역할을 했고, 퇴계 이황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인 만큼 그분의 위패는 성균관 문묘에 모셔져 있다. 옥산서원은 건립 이래로 왕에게 8차례에 걸쳐 서적을 하사 받았고, 국가에서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는 치제를 다섯 번 지내는 등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서원이다.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크게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유생들의 교류와 유식을 위한 공간을 계곡과 함께 구성했다. 입구를 지나 보이는 누마루인 무변루가 바로 그것이다. 강학 공간인 구인당의 '옥산서원' 현판은 당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것이다. 마당은 넓은 편이 아니지만 강학 공간의 암수재에서 차 한잔 마시며 옥산서원의 뛰어난 풍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이제 옥산 계곡을 나와 동쪽 방향으로 이동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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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왕릉의 솔숲 흥덕왕릉 앞에 펼쳐진 소나무숲은 사진작가의 출사지로 알려져 있다. ⓒ 운민


안강 육통리 일대는 어렵지 않게 소 농장을 찾아볼 수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 농가에서 경주가 전국 최대의 전국 최대 규모의 한우 사육을 하는 고장이란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근처 언양의 봉계를 비롯해 산내, 화산, 모화 등 경주 이곳저곳에서 불고기단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느 순간 마을의 끝자락에서 솔숲이 장대하게 어우러진 흥덕왕릉을 만나게 된다. 왕릉의 들어가는 입구에는 소나무 숲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포토 스폿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지나면 괘릉과 더불어 신라 왕릉의 정수로 꼽히는 흥덕왕릉 능역이 한눈에 펼쳐진다.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딴곳에 잘 보존된 왕릉을 만나게 될 줄 쉽게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왕릉 근처에서 몇 조각의 묘비 파편이 발견되었는데 흥덕대왕이 태조 성한의 24대손이라는 문구가 있어 이 무덤이 흥덕왕릉인 것이 확실해졌다고 한다. 무인상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봉분의 병풍석에는 십이지상이 조각되어 있다.

왕릉의 주인 흥덕왕은 신라의 쇠퇴를 막지는 못했지만 장보고로 하여금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였던 군주였다. 흥덕왕은 또한 로멘티스트였다. 그가 키운 한쌍의 앵무새 중 암컷이 죽자 수컷이 머지않아 따라 죽은 것을 보고는 마침 얼마 전 죽은 자신의 부인을 기리며 궁중에 여인을 들이지 않았다. 흥덕왕은 죽어서 장화 부인과 합장되면서 지금도 우리 곁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경주와 포항 사이의 작은 동네 안강, 어느 고도 못지않은 많은 문화재들이 이야기를 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경기별곡 2편)가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인문학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경주 #경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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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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