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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열린 이 축제... 만사 제치고 달려갔습니다

“혐오는 승리할 수 없다, 사랑이 이긴다"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기

등록 2022.07.18 16:09수정 2022.07.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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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 퀴어축제가 열린 건 3년 만이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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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 퀴어축제가 열린 건 3년 만이다. ⓒ 지유석


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코로나19 확산세로 3년간 광장에서 축제를 열지 못하다, 올해 마침내 다시 열린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충남 아산이다. 매년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면 바로 맞은 편에서 반대집회가 열린다. 그래서 서울시내 교통은 비상이 걸린다. 올해라고 예외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축제를 온전히 즐기고 돌아오기 위해 1주일 전부터 숙소를 알아보고, 교통정체에 대비해 차량 이동 동선을 체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축제 당일, 아내와 함께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서울광장 녹색 잔디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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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 3년 만에 열린 퀴어축제에 서울광장은 무지개 깃발을 든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 지유석

  
난 그리스도인(대한성공회)이다. 그리스도교, 특히 보수 성향의 개신교는 퀴어문화축제를 불온시한다. 내가 속한 대한성공회도 구성원 간 온도 차가 무척 심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퀴어문화축제만큼은 놓치지 않고 참석한다. 아내도 무척 적극적이다. 더구나 3년 만에 열리는 축제이니 만사를 제치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퀴어문화축제를 찾는 건 일단 재미있어서다. 볼거리가 많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특유의 다양성을 그야말로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다. 내 주위에도 성소수자(트랜스젠더)가 있다. 

그녀 역시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고, 자신만의 재능이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있다. 그런 이들이 일 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가 바로 퀴어문화축제다. 

그러나 대다수 개신교 교회, 특히 보수 개신교 교회는 혐오를 여과 없이 발산한다. 수년 간 이들의 행태를 지켜본 바로는, 이들은 혐오감정을 쏟아내는 걸 굉장히 귀한 신의 소명쯤으로 여긴다. 


3년 만에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도 이 같은 '소명의식' 가득한 개신교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서울광장 바로 건너편 서울시의회 앞 대로에선 '2022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광장 입구엔 3층 짜리 임시 구조물이 들어섰고, 거기선 군복을 차려입은 이들이 '동성애 동성혼 반대',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반대' '학생인권조례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반대집회의 단골메뉴(?)는 역시 차별금지법이다. 자신을 사랑제일교회, 그러니까 전광훈 목사가 시무하는 바로 그 교회에 다닌다고 소개한 한 고등학생은 "목사가 동성애 반대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을 가게 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퀴어 축제 반대 국민대회 연합예배'에서 설교한 정성진 목사(크로스로드 이사장)도 "차별금지법은 에이즈확산법, 동성애확산법, 역차별조장법, 부도덕강요법, 종교탄압법, 인권탄압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퀴어문화축제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이들이라면 이런 광경, 주장들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모습, 주장들을 보고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그리고 성소수자에게 미안하다. 

결국 문제는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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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퀴어축제가 열린 가운데 건너편 서울시의회 대로변에선 보수 개신교가 주도하는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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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가 열린 가운데 보수 개신교 주축으로 반대 집회도 동시에 열렸다. ⓒ 지유석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확산법이고, 목회자의 반동성애 설교를 탄압하는 악법이라는 주장은 흡사 오래된 레코드판을 틀 듯 수년째 반복되는 주장이다. 하지만 오히려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더 강하다. 

국가인권위가 지난 4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09%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는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7.2%가 동의했다. 

이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동도 점점 더 힘을 얻는 양상이다. 

이 같은 현실에도 보수 개신교계는 여전히 '퀴어축제 반대',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만을 외치며 혐오 정서를 앞장서 조장한다. 또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수원 영광교회 이동환 목사를 종교재판에 세웠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안타까움은 비단 나 혼자만의 심경은 아닌 것 같다. 오랜 기간 성소수자와 연대해온 대한성공회 민김종훈 자캐오 신부도 "상대가 진화해야 이쪽 편의 논리도 정교해지는데 반대 세력은 몇 년째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주장만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정치권,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각성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이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여야 할 것 없이 일부 세력, 특히 보수 개신교계의 극력 반대를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 사회는 두 번의 전국선거를 치렀다. 이때 여야 할 것 없이 주요 후보들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새에덴교회 같은 보수 대형교회를 찾아 예배드리고 목회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보수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주요 후보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이들 목회자들이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전달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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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퀴어축제가 열린 가운데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그리고 성소수자와 함께 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무지개예수가 차량행진에 나섰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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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는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 (중략) 절대 포기하지 마라. 사회 변화는 꼭 일어난다. 그리고 그 속도는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빠를 것"이라고 연설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 지유석

   
차별금지법이 높은 지지여론에도 국회에 발이 묶인 건, 여야 정치권이 보수 대형교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신한다. 아무리 혐오 세력이 종교의 이름으로 반대를 해도 성소수자와 엘라이(연대자)들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고,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더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혐오 세력의 혐오선동은 끝내 실패할 것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은 21세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혐오는 실패해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승리할 것이다." -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 

"밖에 있는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는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 (중략) 절대 포기하지 마라. 사회 변화는 꼭 일어난다. 그리고 그 속도는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빠를 것이다." - 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 대사 
#서울퀴어문화축제 #대한성공회 #무지개예수 #이동환 목사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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