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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학생들 미워하지 않아...방관하는 '진짜 사장' 연세대가 문제"

[인터뷰] 김현옥 연세대 청소노조 분회장 "재학생과 졸업생들 더 큰 '연대' 고맙다"

등록 2022.07.07 05:48수정 2022.07.07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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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과학관에서 청소노동자가 강의실 책상을 닦고 있다. ⓒ 유성호

 
"근무시간은 오전 6시 시작으로 돼 있지만 그렇게 나와서는 학생들, 교수님들 오기 전에 절대 청소 못 끝내요. 7시면 벌써 하나둘 모이는데, 우리가 학생들에 방해되면 안 되니까... 나는 보통 첫차 타고 새벽 4시 50분에 학교 와요. 일찍 오는 편도 아니야. 4시 전에 오는 사람들도 있고 새벽 2시 반에 집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 나이 많고 몸 어디 불편한 사람들이지. 청소로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남들처럼 일이 빨리빨리 안 되니까 더 일찍 나오는..."

연세대학교에서 13년째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A씨(69)는 정해진 아침 근무시간보다 한두 시간씩 일찍 일을 시작하는 관행을 "우리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추가로 일하는 시간은 따지지도 않아요. 그건 우리 편리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하지만 많이도 아니고 겨우 시급 400원 올려달라는 건데, 물가 오르고 최저임금 오르면 그냥 알아서 우리 임금 올려줘서 이 더운 날 이런 조끼 입고 길바닥에서 시위 같은 거 좀 안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라며 울먹였다.

A씨가 입은 빨간 조끼에는 '노동기본권 쟁취'라고 적힌 글자가 바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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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과학관에서 청소노동자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 유성호

 
정년퇴직 뒤 5년째 청소 일을 하고 있다는 B씨(70)는 연세대 건물 1개 층, 화장실 4곳에 변기 50칸을 맡는다고 했다. B씨는 "새벽 5시 전에 출근해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변기라도 하나 막혀 있는 날에는 뚫어뻥도 제대로 못 쓰고 장갑 낀 손으로 그냥 퍼낼 때가 많다"면서 "화장실 청소부터 빨리 해놔야 학생들이 오기 전 바닥 물기가 마르고, 지나다닐 때 안전하다"고 했다.

실제 나이는 73세지만 주민등록상 나이가 68세라 정년이 아직 남았다는 C씨는 "오전 일 끝나고 샤워 한 번 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겨울에도 흥건하게 맺히는 땀을 집에 귀가 전까지 제대로 닦아내지 못해 사타구니와 등에 가려움과 습진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동료 10명과 함께 사용하는 비좁은 탈의·휴게실에는 지난해 6월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이후에야 벽걸이 에어컨 한 대가 설치됐다고 했다. 그나마 여름에 에어컨을 켤 수 있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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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과학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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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계단 밑 자투리 공간을 개조해 만든 휴게실 내부를 보여주며 구조상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숙여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유성호

 
연세대 이전 다른 사업장 경력까지 합치면 청소 경력이 15년이 넘는다는 D씨(68)는 "학교라서 다른 데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오전에 착용해 축축하게 젖은 상의와 양말을 강의실 복도 한 구석에 있는 자그만 청소도구함 속에 널어놓고 있었다. "보기 안 좋아 밖에다 말리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동료들과 함께 쓰는 휴게실에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싫다"는 이유에서다. 휴게실은 건물 계단 밑 자투리 공간을 개조한 것이어서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천장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새벽 5시부터 일해도... 샤워실 하나 못 내준다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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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총장실 앞에서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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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A·B·C·D씨를 비롯해 수십 명의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5일 32℃의 뙤약볕 아래 학교 총무팀이 있는 백양관 앞에 섰다. ▲시급 400원(경비 440원) 인상 ▲정년퇴직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날 여름방학 맞이 '대청소'가 있는 건물의 노동자들은 집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지난주 폭우가 내린 뒤 학교 곳곳에 누수가 발생했을 때도 집회를 접어야 했다. 바구니를 받치고 여기저기 새는 물을 수시로 닦아내는 것도 청소노동자들 몫이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진짜 사장 연세대가 우리 문제 해결하라" "진짜 사장 총장님이 노동조건 개선하라"고 외쳤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사실상 매해 이들의 임금과 처우를 결정하는 것은 원청인 연세대다.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올해 시급은 939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보다는 높지만 서울시 생활임금 1만 766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근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 9620원보다도 낮다. 올해 초 정년퇴직자 3명이 발생한 지 7개월이 다 되도록 인원 충원이 안 돼 해당 건물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는 높아졌다. 학내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실은 전무한 상태다.

김현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은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해마다 거리에 나와 한을 내뱉는데 진짜 사장 연세대는 늘 우리의 요구를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린다"라며 "이번 주 안에 마무리 지어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최근 연세대 학생 3명이 이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사회적 논란이 된 것에 대해 "학생들은 밉지 않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학교"라고 입을 모았다. 안희숙 조직부장은 "우리가 학생들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어서 박사도 나오고 석사도 나오고 취직도 해야 하지 않나"라며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있다는 걸 우리도 안다. 우리는 학생들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연대도 이어졌다. 이 학교 사회학과 해슬(22)씨는 집회에 참석해 "청소노동자들이 매년 투쟁할 수밖에 없도록 내모는 학교가 가장 큰 문제"라며 "학내 다른 구성원들도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고 있다는 것, 노동자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외교학과 채영(23)씨는 "오늘 청소노동자분들이 고소한 학생 개개인을 미워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들으며 역시 저보다 훨씬 너그럽고 지혜로운 분들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라며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 쐬면서 뒤에 숨어있는 학교가 빨리 나와 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학생들로 이뤄진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연세대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지지연대 성명서엔 3000명 이상이 이름을 올렸다.

커지는 '연대'... "고소한 학생들 미워하지 않는다, 싸울 대상은 학교"
 

연세대 청소노동자 “고소한 학생 하나도 미워하지 않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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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학내에서 시위를 벌이다 일부 재학생들로부터 형사·민사 소송을 당한 가운데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노조의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 유성호

 
무더위 속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시위가 끝나고, 김현옥(68) 분회장을 만났다. 연세대 노천극장 남자화장실 옆 창고에 마련된 노조사무실에서다. 2008년 노조가 처음 출범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며칠을 점거해 얻어낸 곳이라고 했다. 김 분회장은 청소노동자들을 "엄마들"이라고 불렀다.

- 사무실이 창고에 있다.

"15년 된 곳이다. 창고 자리라 여기저기 곰팡이 냄새가 지독하다. 머리가 다 아프다. 여름에 더워도 이렇게 선풍기를 벽 쪽으로 틀어놓는 것도 곰팡이 때문이다. 비도 줄줄 새고. 그래도 그때 학생들이 여기라도 점거해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까지 연세대 노조사무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 2008년 노조 결성 당시 학생들의 연대가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살맛'이라는 학생들 단체가 있었다. 그 학생들이 우리 노동 실태를 보고 '엄마들'을 몰래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합원 70명 정도가 모여 2008년에 노조가 만들어졌다. 지금 조합원은 310명 정도로 불었다. 그때 우릴 도와줬던 학생들 중에 계속 노조에 남아 활동가가 된 학생들도 있다(웃음)."

- 최근 연세대 학생 3명이 분회장 등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형사 고발하고, 63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15년간 이렇게 언론의 관심을 받기는 처음이다. 이렇게 소송 당한 게 처음이라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학생들은 자식 같은 존재다. 엄마들이 학생들하고 싸우겠나. 아까 집회에서도 학생들 연대 발언하는 것 보지 않았나. 학생들 그 바쁜데 우리를 위해 대자보도 붙이고 박카스도 사다주고 서명도 하러 다닌다.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일자리도 있다.

우리도 을이고, 학생들도 을이다. 갑은 학교다. 사장인 학교가 해결해야 한다. 애초에 학교가 나섰다면 이런 논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학교가 각성했으면 좋겠다.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 논란이 커진 뒤 학교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졸업생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연세대를 졸업한 동문 변호사들이 많을 것 아닌가. 그분들이 직접 변론을 맡아주시겠다고. 우리는 법을 모르니 고소장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막막했는데, 정말 눈물 나게 고맙더라. 우리 학교 어느 교수님께서 강의계획서에 우리를 지지하는 글을 써주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곳곳의 연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에야 설치된 휴게실 에어컨

- 노조는 시급 400원(경비노동자는 440원) 인상, 정년퇴직 인원 보충,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 이게 무리한 요구인가. 우리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로 돼 있지만 학생들 오기 전에 무조건 청소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부분 늦어도 새벽 5시 전에는 청소를 시작한다. 학교에선 우리가 왜 빨리 청소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지 뻔히 알면서 '누가 5시부터 하라고 했냐'고만 한다. 그러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액인 460원보다도 적은 '시급 400원 인상'도 못 받겠다고 한다. 말이 되나. 요새 물가도 얼마나 올랐나.

정년퇴직자 충원도 안 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결원이 발생했는데 지금 벌써 7월이다. 건물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청소노동자 한 명이 1개 층 이상을 담당한다. 화장실 개수만 4곳 이상은 다 넘는다. 변기 칸 수십 개다. 근데 퇴직 인원 보충을 안 하면 어떻게 되겠나. 쓰레기 넘치고 화장실 변기 더러워지는데 내 구역 아니라고 주변 담당들이 '나 몰라라' 할 수 있나. 업무강도가 당연히 높아진다.

게다가 이제 한여름이다. 올해 벌써 푹푹 찌는데 샤워 할 곳 하나 없다. 아침 9시 전까지 땀 뻘뻘 흘리고 돌아다니면 아무리 깨끗이 하려고 신경 써도 냄새가 안 날 수가 없다. 선풍기 틀어놓고 아무리 말려봐야 소용없다. 동료들끼리도 같이 있으면 냄새가 나니까. 학생들, 교수님들 마주치지 않게 피해 다닐 수밖에 없다. 대단한 시설을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이미 있는 화장실 한 켠에 그냥 자그맣게 샤워 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하나 만들어달라는 거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 휴게실 상황은 어떤가.

"지난해 6월 서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셨지 않나. 그 후에야 휴게실에 에어컨이 설치됐다. 15년 동안 에어컨 하나 없이 지내다가 작년에 처음 생긴 거다. 꼭 누가 죽고 나서야 바뀌어야 하나."

"학생들 고마움 어떻게 잊겠나, 학교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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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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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ㆍ경비노동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마친 뒤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총장실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김현옥 분회장은 학내 청소·경비노동자 500여 명 중 300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연세대는 그나마 다른 대학에 비해 노동조건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2008년 연세대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월급이 70만 원도 안 됐다. 저도 청소 일하기 전까지 수선가게나 양장점에서 객공(비정규직 봉제노동자)으로 오래 일했는데, 그때보다도 훨씬 적은 수입이었다. 용역업체 중간 착취가 심했던 거다.

임금뿐만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 일 끝나면 우리들 데려가서 자기네 감자탕집에서 일 시키고, 교회까지 데리고 가서 청소시키는 용역 소장들이 있었다. 못하겠다고 하면 '그럼 아줌마는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했다. 그러면 정말 그날로 보따리 싸서 나가야 했다.

아직도 멀었지만, 노조가 생긴 뒤로 엄청나게 변화했다. 용역업체가 중간에 떼어갔던 임금을 받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감자탕집 청소나 교회 청소도 없어졌다. 그래서 아직도 노조 없는 학교들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청소 일 하는 엄마들, 다 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노조와 연대가 꼭 필요하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준 사람들이 다름 아닌 여기 학생들이다. 지금 무슨 일이 있든 우리가 어떻게 그걸 잊겠나. 문제는 앞에서는 진리를 가르친다면서 뒷짐지고 방관하는 학교다. 학교가 빨리 나서라. 이 문제를 해결하라."


[관련기사]
"학생들 청소노동자 고발, 부끄럽다"...수업계획서로 일침 놓은 연대 교수 http://omn.kr/1zm5c
[단독] 연세대 출신 법조인들, 청소노동자 '연대' 변론 나선다 http://omn.kr/1zo9m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현옥 #노조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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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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