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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 '오행', 유신체제에 직격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9]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빗대어 그 전횡과 폭압정치를 고발한 작품

등록 2022.06.29 16:01수정 2022.06.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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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5일 시국선언을 준비 중인 재야인사들. 정중앙 태극기 아래에 있는 이가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 함석헌, 김지하, 계훈제, 천관우,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 동아일보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라이벌인 김대중의 납치 사건으로 김종필 국무총리가 일본에 가서 다나까 수상에게 사죄하는 등 국가적 자존과 국위를 손상시켰다. 이를 전후하여 일본 상인ㆍ관광객이 한국에서 '기생관광'을 즐기는 부끄러운 현상이 벌어졌다. <분씨물어>는 이런 상황에서 쓰인 작품이다.

함석헌 등 재야 민주인사들은 1970년 11월 5일 '민주회복을 위한 시국선언'에 이어 함석헌ㆍ장준하ㆍ김재준 등 각계 지도자 29명이 12월 14일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를 설치하고 100만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김지하도 참여하고 적극 활동했다. 

이 시기 김지하는 장문의 <오행(五行)> 시를 지었다. 박정희를 음양오행설의 목(木)에 비유하여 "쇠가 나무를 이긴다(金克木)"는 말로 유신체제의 몰락을 예언하였다. 당시에는 김(金)이 곧 김대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나, '김극목'의 주인공은 10ㆍ26 거사의 김재규장군이었다. 무서운 예언인가, 우연인가 새삼 묻게된다.

이 시는 일본의 진보지 <세계(世界)> 1974년 8월호에 게재되었다. 시의 한 대목이다. 

김가 비슷하게 들리는 성씨 가진 놈, 김가와 친구된 놈, 
김가와 장사한 놈, 김가와 동창인 놈, 김가와 혼인한 년, 김가와 혼인한 년을 낳은 년,
김가와 왕래한 놈, 김가와 동향인 놈, 김가와 사통한 년, 김가와 사통한 년을 낳은 년,
김가와 한번이라도 길가에서 악수한 놈, 김가와 희희낙락 대포집에서 술 마신 놈,
김가에 대해 글을 쓴 놈, 
김가라는 두 글자를 입밖에 내놓은 놈, 입속에 담았던 놈,
김가와 닮은 놈, 그 닮은 놈과 비슷한 놈, 그 비슷한 놈과 흡사한 놈,
그 흡사한 놈과 같은 놈, 그 같은 놈과 같은 놈, 그 같은 놈과 친한 놈, 그 친한 놈과 친한 놈,
그 친한 놈과 같은 놈,
심지어는 제 부하 가운데 기중 영악한 놈까지 김가라고 잡아 찢어 죽이려다가
당신께서도 몸만은 인간인지라 인정으로 차마 못 죽이고 멀리 탐라로 귀양 보내버리고. (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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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 상호간의 상극 관계. ⓒ 김종성

 

<오행>에 대한 평론가의 분석이다.

<오행>은 독재자로서의 상징인 노영왕, 즉 목씨(木氏)성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빗대어 그 전횡과 폭압정치를 고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대상황을 옛날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이것을 "전해 오겄다"와 같이 객관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객관적인 비판정신 또는 비판적인 리얼리즘의 길을 열어놓는, 김지하 담시의 일반적인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에 겉으로 드러난 사건전개는 비교적 단순하다. 목씨 성을 가진 이 노영왕이 자기에게 김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상극이 된다고 하여 이 김씨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탄압하고 제거해 나가다가 마침내는 '쇠(金)'와 유관한 모든 철기문화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언행을 한다. (주석 6)



주석
5> 앞의 책, 166~167쪽.
6> 김재홍, 앞의 책, 11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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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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