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운동은 미래세대를 위한 운동이었다

일제식민시대 언양, 울산지역 소년운동사 (1)

등록 2022.06.28 15:11수정 2022.07.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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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왕성하게 민족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소년운동과 아동문학의 황금기이기도 하다. 2022년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23년 10월 언양에서 언양 소년회[단]가 창립한 지 100주년이다.

이 글은 언양소년회의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울산지역과 언양지역 소년운동 역사를 당시의 신문보도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한 글이다. 당시 보도량이 울산지역에 비해, 언양지역이 많다. 따라서 이 글은 언양지역 중심의 소년운동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린이는 미래의 어른이자 현재의 미래인이다. 조선 역사에서 어린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적 국가는 위계적이고 계급적이고 남녀 차별적이고 장유유서의 수직적 인간관계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한국 사상사에서 경동 천지 할 새로운 사상이 1860년 수운 최제우에 의해 펼쳐졌다.

"사람을 한울님같이 모시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사람이 한울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을 강조한 동학(천도교)사상이 등장하면서 만민평등의 인간 존중 사상이 조선인들의 오랜 사상을 깨뜨렸다. 사람이 하늘과 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 양반과 노비, 어른과 아이의 차별이 사라지는 대동 사회를 꿈꾸는 시대가 도래했다.

1919년 3월 독립 만세운동 이후 민족해방운동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국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독립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도모하였다. 국내에서는 일제 식민 통치 방식의 변화로 청년운동을 시작으로 여성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소년운동 등 각 부분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어 사상단체들도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은 민중의 계몽과 조직화로 민족해방운동의 부흥기 및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기미년 만세운동 이후 민족의 자각에 따른 어린이 애국계몽운동이 시작되었다. "어린이"란 개념이 1920년 식민지 조선 사회에 처음 등장하였다. 일제 식민지가 된 지 10여 년 만에 어린이가 사람으로 온전히 대접받는 계기가 생겼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소년단체가 생기고 마침내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날 행사를 하였다. 1930년까지 식민지 조선은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린이(소년) 운동의 황금기였다.

어린이는 다만 천사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존재가 되었다. 어린이는 청소년으로 청년으로 어른이 된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조선의 장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내일의 조선의 일꾼 소년·소녀들을 잘 키우고자 하는 의식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한국 근대 소년운동 사는 단순한 소년운동의 임무뿐만 아니라 민족 독립을 위한 최후 보루(堡壘)로서의 소년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전개한 민족운동의 전위운동이다. 그러나 소년운동은 일사불란하게 활성화만 된 것은 아니고 내적으로 끊임없는 난관에 부딪히며 전개한 전위운동이었다."(김정의, 한국근대소년운동의 노선갈등과 일제탄압고, 실학사상연구, 281쪽)

경성(서울)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에 따른 소년운동의 갈등이 있었다. 1920년대 울산 언양지역 소년운동의 역사도 그 영향권 안에 있었지만, 그 갈등은 첨예화되어 나타나지 않았다. 갈등의 언제나 변화와 발전과 함께한다. 중앙과 지역의 소년운동 차이가 있었다. 지역은 지역 소년을 위한 운동에 매진하였다.

울산지역의 소년운동은 영남산무리가 있는 언양지역에서 가장 활발했다. 그 당시는 언양은 울산과 다소 지리적 역사적 거리감으로 인해 1920년대까지는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부터 언양지역의 활동이 주춤해지면서 울산지역 중심으로 각종 사회운동이 진행되었다. 언양지역의 소년운동은 애국 계몽, 실력양성에서 시작하여 항일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어린이 운동의 사상적 시원, 동학사상

동학은 1860년 4월 5일(음력) 경상북도 경주군 현곡면 가정리 용담정에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가 창도하여 반외세 반봉건의 깃발을 들었다. 동학은 기존의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봉건적 조선 사회를 극복하고, 서세동점의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의 침략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 근대적 사상이며 민중의 신앙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후천개벽 사상이었다. 동학의 창도는 한국 근대 사상과 가치관 변화의 분수령이었다.

최제우는 민족주의적 관점에 있었다. 특히 일본에 대한 관점은 과거의 침략에 매우 강력한 적개심을 나타내 '개 같은 왜적 놈'이라고 표현하였다. 최제우는 만일 그가 죽은 후에 일본이 재침략하는 일이 있으면 영혼이 되어서라도 이 '개 같은 왜적 놈'을 하룻밤 사이에 멸하겠다고 굳은 결의를 『용담유사(龍潭遺詞)』의 「안심가(安心歌)」로 노래하여, 그 후 모든 동학도가 이 노래를 불렀다. 동학은 일본의 재침략에 대해 가장 강력한 저항적 민족주의 사상을 가졌다. 기미년 3ㆍ1독립만세운동은 바로 이러한 동학사상에서 연유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라며, '사람(人)'의 마음속에 '한울(天)'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강조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한울님(하느님)을 모시고 있으니, 이제 사람은 한울님이니 이 한울님은 신분·계급·남녀·노소·빈부에 전혀 차별 없이 모두 똑같은 한울님이시다. 이제 모든 사람은 한울님으로 인격적으로 평등하다. 임금이나 노비나 같다는 만민평등, 인간 존중의 사상은 반봉건주의 사상이었다. 동학은 조선사회의 변혁적 기운을 불어넣고 후천개벽을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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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직전의 최시형 사형 직전의 최시형. 보따리 하나 들고 사인여천, 만민평등의 인간해방 사상을 펼치며 사셨던 한울님이다. ⓒ 러시아의 파블로프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1827~1898.6.2.)은 "인간이 음식을 먹는 것은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는 것(以天食天)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한울님을 잘 길러나가는 것(養天主)이 한울님을 모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오 한울님이 곧 사람이다"라는 '인시천(人是天)'사상을 정립하여 "사람 섬기기를 하나님 같이 하라(事人如天)"고 하였다.

그는 여성도 '하나님을 낳는 하나님'이라고 하여 남녀평등을 강조했으며, 어린이는 '어린 하나님'이라고 하여 어린이 존중을 강조하였다. 특히 "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내수도문」)"라고 하셨다. 이 한 구절이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에 대한 관점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천도교의 개벽 사상은 어린이를 한울님으로 격상시킴으로 위대한 사상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최제우의 사상에 감응한 사람이 소춘 김기전(1894~1948?)이다. 그는 1920년 『개벽』지 창간호에 "다수 인민이 갈앙(渴仰)하고 또 요구하는 소리는 곧 신이 갈앙하고 요구하는 소리니 곧 세계 개벽의 소리로다"라고 하였다. 그는 "조선인은 어른이 사람인 줄은 잘 알되 어린애도 같은 사람인 줄 모른다"라며 장유유서의 수직적 인간관계를 강조하며 아동 인권을 짓밟는 유교를 비판하였다. 또한 어린이들이 인간 중에 가장 최하위에 위치하는 윤리적 압박과 궁핍을 면하기 위해 노동을 강요당하는 경제적 압박에 짓눌려있다고 보고 '사인여천'의 인간해방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어린이에게 높임말 사용과, 양생 토양 만들기, 남녀 차별 해소를 주장하였다. 당시 천도교 이론가인 이돈화(1884~1950) 역시 어린이의 인권은 보장되고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유교의 윤리와 도덕은 소년의 인격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사회적 지위나 예의라고는 털끝만치도 주지 않았다"라고 유교적 수직적 인간관계를 비판하고 수평적 인격적 인간관계를 어린이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천도교 사상가들은 어린이가 신조선을 이끌어나갈 역량을 갖춘 신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개조를 통한 자주 자립적 인간의 양성이 독립의 길이라고 보았다. 그 신인간이 바로 어린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 조직이 요구되었다.

방정환과 천도교소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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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전과 방정환 어린이 해방운동을 펼쳤던 소전 김기전과 소파 방정환. ⓒ 자료사진

 
1920년경 안변소년회, 왜관소년회, 진주소년회 등이 지방에서 태동하였다. 조선소년운동을 일으킨 소년 역사가 시작되었다. 특히 1920년 8월 강민호 등 30여 명이 발기하여 20세 이하의 청년 학생으로 조직된 진주소년회(晉州少年會)는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기회를 보아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독립 만세운동을 하려는 독립운동 단체였다.

조선 소년운동의 첫 봉화(烽火)였다. "소년 자신을 주체로 한 사회적 의의를 가진 운동"으로 "소년회를 위한 소년회가 아니고 어린 사람들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부르고"한 소년의 자발적 독립운동단체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대단히 높다(방정환, 조선소년운동의 사적고찰, 조선일보, 1929.01.04). 진주소년회의 독립운동은 천도교소년회의 계몽운동과는 달랐다.

1920년대 천도교는 민족주의 계열을 대표하는 민족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천도교 청년회와 소년회는 일제 식민시대 청년 소년운동의 주역이었다. 기미년 만세운동 후 천도교는 혹독한 탄압을 딛고, 1920년 4월 25일 천도교청년회를 결성하였다. 청년회는 문화운동의 이념을 생산 전파하는 신문화 선전의 봉화 역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구현하기 위한 문화운동에 솔선수범했다. 특히 당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어린이(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년운동을 시작하였다.

방정환은 1920년 8월에 발행된 『개벽』 3호에 실은 번역 동시 「어린이의 노래」에서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어린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인격을 부여한 개념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어린이에게서 한울님의 얼굴을 발견하였다.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한울 뜻 그대로 산 한울님이 아니고 무엇이랴"라고 하였다. 그는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생겨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기성 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나오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으로 천도교 지도부가 투옥되었다. 천도교 운용의 주체와 노선을 일신(一新)하여 청년들이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전통적인 동학운동의 주체인 '농민' 이외에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세대와 성별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운동 대상-주체를 발굴하고 운동의 핵심 과제로 '개조(개벽)'을 내세우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과업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하였다.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운동의 대상-주체로서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소년, 즉 어린아이이다(박길수, 천도교소년회 초기 활동연구 - '천도교회월보'를 중심으로, 2021, 72쪽).

"어린아이는 한울님이다." 어린아이도 어른과 같은 인간 존엄의 존재임을 널리 알리며 어린이에게 높임말을 할 것과 예의를 지키며, 민족의 미래요 희망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방정환은 '늙은이'나 '젊은이'의 호칭과 동격으로 어린이들도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높여 부르고자 하였다. 그에게 소년운동은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라는 가련한 소년의 어린 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실천 운동이었다.

그는 학교에서의 배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 노릇하는 바탕을 지어 가지기 위해서는 "유치원과 같이 그들의 자유로운 심신의 활동을 도모하는 외에 더 근본적이요 더 실제적인 생각과 지식과 또 훈련까지 주는 것이 소년회다"라며 조직을 통한 실천을 강조하였다.

일제 식민시대에 본격적인 소년운동은 경성의 천도교회와 개벽사의 뜻있는 청년들이 1921년 4월 '천도교 청년회' 내에 소년부를 두면서 시작되었다. 소년부는 도쿄 유학생 방정환과 경성의 김기전을 지도자로 맞이하였다. 소년부를 설치한 직후인 5월 1일 천도교소년회를 결성하였다.

이는 한국 소년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천도교소년회가 생기기 전까지 진정한 의미의 소년회가 없었다. 소춘 김기전은 소년들이 독립운동 이전에 소년기에 갖추어야 할 지식과 소양 등을 체계적으로 지도해주는 체계적인 소년회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천도교의 소년운동은 어린이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어린이 운동이었다. 이것이 훗날 천도교소년회와 오월회의 갈등의 원인이었다. 인간해방을 위한 소년운동과 민족해방을 위한 소년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는 이념적 차이였다.
덧붙이는 글 울산저널에도 게재함,
#언양소년회 #어린이운동 #천도교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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