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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이 대선 앞두고 히말라야에 간 이유

[서평] 탁재형 글·사진 '오르막길: 문재인, 히말라야를 걷다'

등록 2022.06.02 14:01수정 2022.06.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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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문재인, 히말라야서 한가한 소리나…"(2016.06.16, 데일리안) 
정치현안 눈감은 채 외곽여행 즐기는 문재인(2016.07.25, 뉴데일리) 


2016년 6월 13일에서 7월 9일까지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사실을 두고 일부 언론사가 뽑아낸 헤드라인이다. 기사만 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히말라야에 놀러 가서 한가한 소리나 하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과연 그랬을까?


탁재형 피디가 히말라야에서 직접 본 '문재인' 

지난 5월 출간된 <오르막길>은 6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 했던 탁재형 피디가 그와 함께 걷고, 오르며 듣고 봤던 일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긴 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즈음에 쏟아져 출간되었던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탁재형 피디의 책이다.
 
두 개의 험한 봉우리 사이에 자리한
얼마 되지 않은 평야와도 같은 시간
그 시간을 히말라야에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문득 궁금해졌다.
 
다만 탁 피디가 '들어가며'에서 썼듯이 <오르막길>은 대선이라는 대장정을 앞둔 한 남자가 그렇게 바쁜 와중에 왜 하필 멀고도 험난한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난 것인지를 추측하며 써내려 간 그래서 그 어떤 책보다 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으로 느껴지는 희한한 책이다.

1장 '히말라야로 떠나다'를 읽으면, 6년 전 트레킹이 단순히 개인의 취미 생활 영위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문 전 대통령이 방문한 랑탕 트레킹 코스는 2015년 4월 발생한 네팔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지역이었다. 그는 과학 실습 도구와 각종 교보재를 기증하고 학교 복구 현장에 들러 벽돌을 쌓았다. 그러니까 대규모 수행단을 데리고 기자들과 동행하며 사진 찍기 바빴던 다른 정치인들의 뻔한 짓거리와는 달랐다.

본격적인 트레킹은 2장 '산을 오르다'부터 시작한다.
 
걸을수록 숨이 차올라 말이라곤 쓸모없어지고
일행조차 의미 없어지고 생각마저 소용없어져서

텅 빈 내가 오직 하나, 내딛는 발걸음만 의지하게 되는 곳.


이런 곳이어야 했던 모양이다.
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잘 왔다. 여기로 오길 잘했다.
 
문 전 대통령이 랑탕을 걸었던 6월은 히말라야에서는 우기에 속하기 때문에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피하는 시기라고 한다. 턱까지 기어 올라와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들이 춤을 추고, 그치지 않는 비를 온종일 맞으며 진창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비 맞는 순간을 푸념하는 부류는 아니었다고 탁 피디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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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도중 잠시 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 탁재형

     
구름 뒤의 해만 바라기보다
비가 그친 순간을 기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된 산행 도중 숨돌릴 시간이 찾아와도 쉬기보다는 자기 손으로 직접 빨래를 해 다음 날을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손님 대접받으려 혼자만 숟가락을 들기보다는 그들의 풍습을 지켜 손가락으로 밥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진으로 모든 걸 잃었으나 다시 희망의 끈을 이으려는 사람들의 일념(一念)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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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처럼 손으로 식사를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손 ⓒ 탁재형

 
한편 탁재형 피디는 '그는 고집이 셌다'고 쓴다. 지팡이는 두 개를 짚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고 얘길 해도 원래 해 오던 대로 하나만 짚었고, 등에 지는 수통이 편할 텐데 한 번 입을 대 보고는 마다하고 늘 하던 대로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발목까지 오는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는 조언도 문 전 대통령이 듣지 않은 것 중 하나였다. 히말라야를 가기엔 턱없이 가볍고 단출해 보이는 노란 신발을 신고, '몰아치는 비와 휘감겨 오는 진창 속에서, 뒤꿈치를 긁어 대는 날카로운 자갈과 위태롭게 벌어진 바위 틈새'를 오직 그 노란 신발만 신고 걸었다고 한다.
 
신발이 품은 이야기를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뜻을 미뤄 놓고 먼저 간 친구. 그리고 여전히 그를 기리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만들고, 전해 준 것이 바로 그 노란 운동화였다는 것을
그때의 난 알지 못했다.
(중략)
그가 친구와 함께 걷고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책의 마지막 장은 고사인쿤드 호수로의 여정을 담는다. 해발 4,380m 높이에 있어 하늘 호수로도 불리는 고사인쿤드는 인근에 거주하는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의 성지이다. 천지를 조각낼 듯한 굉음을 내며 흐르는 계곡을 건너, 산허리를 바다로 만드는 운해를 건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걷고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당도하게 되는 그곳. 호숫가 너럭바위에 앉아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상념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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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 탁재형

 
문재인의 책이 아니라 탁재형의 책이기에 독자들은 영원히 그 대답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꼭 글과 말의 형태로 보고 들어야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아주 짧은 침묵 속에서도,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도 그 마음이 전달되기도 한다.

이쯤 되니 탁재형 피디가 6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왜 이 책을 출간하는지도 이해가 된다. 보수언론들이 물고 뜯고 비난하기 딱 좋을 이 퇴임 시점에 그의 오르막길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닐까? 그의 다음 히말라야 산행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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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르막길> 표지 ⓒ 넥서스books

오르막길 - 문재인, 히말라야를 걷다

탁재형 (지은이),
넥서스BOOKS, 2022


#문재인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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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책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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