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새 대통령 참모진, '대통령실'인가 '검찰실'인가

[주장] 검찰 출신 전진 배치... 윤석열 정부, '검찰공화국' 비판에도 할 말 없다

등록 2022.05.09 16:56수정 2022.05.09 17:04
27
원고료로 응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던 2013년. 그해 1월 중국 쓰촨성(四川省) 광위엔(廣元)에 갔었다. 쓰촨 사람들에게 광위엔은 성도(省都)인 청뚜(成都) 못지 않게 자긍심 가득한 곳이다.

청뚜는 유비와 제갈량이 활동했던 유서 깊은 촉나라 땅이다. 청뚜가 삼국지 무대였다면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광위엔은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지역이다. 측천무후와 덩샤오핑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황제다. 그는 당태종이 이뤘던 '정관의치'에 견줘 '무주의치'라는 칭송을 얻을 만큼 태평성세를 열었다. 덩샤오핑은 또 어떤가. 오늘날 미국과 함께 중국을 G2로 만든 거인이다. 그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며 개혁개방을 앞세워 공산주의 중국에 새바람을 넣었다.

그해 쓰촨성 체류 기간 내내 한국 대통령선거는 화제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자신들도 중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황제를 배출했던 만큼 한국 사정이 각별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중국인들이 보이는 부러움에 내심 우쭐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을 뛰어넘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길 기원했다. 진영을 넘어선 정치인이길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국정농단이라는 후유증을 남긴 채 파면당했다.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에 분노한 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새 정부 대통령 참모 인선을 보니
 
a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9일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취임식장에서 취임식 준비 관계자들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내일(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으레 새 정부가 출범하면 설렘과 기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2022년 지금, 축제는커녕 불안과 우려가 지배적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새 정부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잘할 것이라는 여론은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지지율 80%대와 비교하면 한참 낮다. 10년 전, 중국 쓰촨성에서 느꼈던 기시감을 떠올리는 건 이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잘해주길 염원하면서도 우려를 떨치기 어려운 조짐은 한둘이 아니다. 첫 내각 구성과 대통령실 참모진 인선에서 '에코챔버(폐쇄 진공관)'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 정도 코드인사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상식 선을 넘지 않나 싶다.

진보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 자기 세계에 갇혔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집권 내내 국민을 편 가른 진영정치에 넌더리쳤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국민을 가르고 포용과 관용이 아닌 적대 정치를 일삼은 것에 분노했다. 국민들은 '이건 아닌데'라고 여겼지만 집권 여당은 진영으로 뭉쳤다. 끼리끼리 인사는 핵심이었다.

윤석열 정부 또한 통합과 화합에 방점을 두기보다 분풀이, 나아가 진영을 구축하는데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지명에서 시작된 우려는 대통령실 참모 인선에서 '혹시나'가 '역시나'로 구체화 됐다. 우리가 이겼으니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오만함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 당선인은 6일 인사 전반을 총괄하는 인사기획관실에 인사기획관으로 복두규 전 대검찰청 사무국장, 인사비서관으로 이원모 전 대전지검 검사를 배치하는 등 비서관급 대통령실 2차 인선을 발표했다. 1·2차 인선에서 눈에 뜨이는 건 '검찰 출신 전진 배치'다.

특정한 직군을 애써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지나치다면 문제다. 이대로라면 공직기강·법률·총무비서관을 검사 출신이 꿰찬다. 여기에 인사까지 핵심 자리를 검찰 인맥으로 채웠으니 지나쳤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대통령실을 대검 부속실로 만들려 한다(더불어민주당)'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 공화국' 프레임이 정치 공세에 그치길 바랐지만, 현실화하고 있다.

새 정부에 짙게 드리운 검찰 그림자
 
a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1차 법안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5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인사기획관은 정부 부처와 공기업 인사를 담당하는 핵심 요직이다. 복두규·이원모 내정자는 검찰에서 '윤석열 라인'으로 꼽혔던 최측근이다. 앞서 대통령실 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비서관에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이 내정됐고, 폐지된 민정수석실 기능을 맡는 법률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에는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과 이시원 전 수원지검 형사2부장이 기용됐다.

인사(인사기획관 및 소속 비서관), 민정(법률·공직기강비서관), 예산(총무비서관) 등 대통령실 핵심 보직 중 무려 다섯 자리를 검찰 출신이 장악했으니 대검 조직을 대통령실로 그대로 옮겨놨다고 공격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여기에 9일 대통령비서실 부속실장(차관급)에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이 인선됐다. 

그들은 기우라고 하겠지만 편중됐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렵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미 사정 및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장관으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명했다. 부정적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대통령실 법률 보좌·감찰 기능마저 측근 검사들이 접수한 탓에 '검찰 공화국' 우려를 배제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지만 인사는 대검 측근 사무국장에게, 검증은 한동훈에게 맡기는 등 국정운영 핵심을 검찰 출신이 쥐고 흔드는 구조"라고 혹평했지만 반박이 딱히 여의치 않다.

게다가 공직기강비서관에 이시원 전 검사를 내정한 것을 두고 파장이 간단치 않다. 그는 검사 재임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징계받은 전력이 있다. 민주당과 시민사회는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든 국정원 조작을 묵인하고 동조했던 사람을 통해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니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 소속이었던 이 전 검사는 유우성씨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중국 출입국 기록 위조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법무부는 검증 소홀 책임을 물어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다. 또 간첩 조작 사건을 재조사한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검찰이 사전에 기록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제 식구 감싸기 수사' 정황을 자인한 셈이다. 이런 인물을 발탁했으니 상식과는 동떨어졌다.

조작 사건에 휘말려 삶이 망가진 유우성씨는 "윤석열 당선인께 묻고 싶다. 대선 후보 시절 말씀하신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이런 겁니까"라며 "(내정 소식을) 접했을 때 동명이인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이자 검찰권 오남용 사건에 관여해 중징계까지 받은 인물을 발탁해 공직기강을 바로잡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역시 "이시원 내정자는 증거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거나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유씨와 그 가족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을 준 책임자"라면서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a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 인수위사진취재단

 
10년 전, 쓰촨성 광위엔에서 가졌던 불길한 예감이 이번에는 틀리길 기원한다. 그런데 상식과 어긋난 인사를 보고 있자니 개운치 않다. 쓰촨에는 '촉나라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촉견폐일(蜀犬吠日)'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자신이 인식하는 세계에 갇혀 불통해 지혜로운 이의 언행을 의심하는 아둔함을 뜻한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촉 지방은 안개 때문에 연중 해를 보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촉나라 개는 해를 보면 이상히 여겨 짖는다는 것이다.

해는 항상 뜨고 진다. 여론과 상식은 해와 같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 인사를 이상하다고 여기는데 자신들만 아니라고 고집한다면 '촉견폐일'은 아닌지 떠올려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임병식씨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립니다.
댓글2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우려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 윤 대통령 밑에서 살아남기
  2. 2 무릎까지 꿇었지만... 간담회 국힘 불참에 분노한 유가족들
  3. 3 사라진 대장동 '50억 클럽' 수사... 검찰 답변은?
  4. 4 "윤 대통령, 이상민 아니라 유가족 어깨 두드렸어야"
  5. 5 모든 걸 멈추게 한 참사... 외국인 희생자 24명 이야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