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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57건 기사 삭제, '김중배 선언' 떠올리게 해"

[이영광의 '온에어' 158] KBS 1TV <시사기획 창> 우한울 기자

22.04.12 12:12최종업데이트22.04.1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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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신문>이 2019년 7월부터 4개월 정도 보도된 '호반건설 대해부 시리즈' 등 기사 57건을 삭제해 논란이 일었다. 이미 보도된 기사를 2년이 지나 삭제하는 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 <서울신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5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은 57건의 기사가 왜 삭제되었는지 추적하고, 삭제된 57건 기사에 대한 검증의 시간도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 편을 취재한 우한울 기자와 지난 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 방송 마친 소회가 어떠세요?
"당사자인 <서울신문> 기자들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봤어요. <서울신문> 기자들이 방송 이후 저나 제작진에게 여러 경로로 "고맙다, 힘을 얻고 있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울신문> 독자들 혹은 신문 기사를 관심 있게 읽는 독자에게 현재 언론계의 이슈를 알렸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자본이나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감시 등이 언론 본연의 역할일 텐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 민주주의가 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위안삼고 있습니다."

- 어떻게 처음 이 문제를 접하게 되셨나요?
"사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지난 1월에 큰 이슈였어요. 이른바 미디어 전문지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어요. 1월 16일에 57건의 기사들이 대거 삭제되면서 보도가 됐는데 처음 접하고 황당했죠. 저도 기자지만 언론계에서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 독자들이 온라인으로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는 상황에서 아무 설명 없이 대대적으로 (기사를) 삭제했다는 건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 폭력의 근원은 한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서 취재를 시작했죠."

- 기사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삭제되는 경우가 있었을까요?
"저도 그 사례들을 확인해 봤는데 거의 못 찾았어요. 기사에 하자가 있으면 바로 잡아야 되기 때문에 보통 '바로 잡습니다'라고 쓰고 즉시 수정하죠. 몰래 바로잡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바로잡고 무엇이 틀렸고, 왜 틀렸는지 등등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잡는 것이 상례죠. 취재 당사자와 기사의 진실성을 두고 다툼이 생겼을 때도 언론 중재라든지 여러 가지 제도가 있기 때문에 중재 결과에 따라서 반론을 실어준다거나 일부 내용을 정정하는 절차를 거쳐요. 중재가 안 될 경우에는 법원을 통해서 당사자와 합의하기도 하고요. 그런 절차 없이 기사를 삭제한 경우가 있나 봤을 때 언론 전문가들도 사례를 잘 얘기하지 못하더라고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 <서울신문>에서는 기사를 삭제하고 난 후, 사과했나요?
"없죠. 그래서 문제라는 거죠."

- 기사를 쓴 기자와 합의가 된 건가요?
"사측은 해당 기자들도 모두 동의했다고 주장하는데 저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모두 동의한 건 아니에요. 그 부분은 주장이 달라요. 기자들 입장에서 내가 쓴 기사는 내 이름을 달고 나가기 때문에 내 자식 같거든요. 그걸 모두 없앤다는 데 흔쾌히 동의할 기자는 없죠. 다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있었어요.

<서울신문>의 지배권을 둘러싼 주주 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서울신문>은 원래 2019년도만 해도 기획재정부가 1대 주주, 우리사주조합이 2대 주주, 그리고 포스코가 3대 주주로 돼 있었어요. 정부가 최대 주주이긴 했지만, <서울신문> 운영에 깊숙이 관여한다거나 편집권에 개입하진 않았거든요. 사실상 <서울신문>의 구성원과 기자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신문사였어요.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자 우리사주조합은 최대 주주로 지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죠. 그런 와중에 포스코 지분을 호반건설이 매입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면서 기자들이 '이건 언론 사유화 조짐이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지배권에 두려 한다'라고 반발했고, 그러면서 시작됐던 게 '호반건설 대해부 시리즈' 기사입니다.

작년 5월에 우리사주조합은 호반건설이 가진 주식을 매입하려고 했어요. 만약에 호반건설이 우리사주조합에 주식을 팔게 되면 <서울신문>은 독립하는 것이고, 호반건설은 언론 사유화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죠. 이 기사를 썼던 기자들이 그런 조건이라면 일부 기사삭제 취지에 동의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우리사주조합이 180억 원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호반건설이 가진 지분을 인수하지 못했거든요. 이후 '호반건설이 우리사주조합 주식을 사겠다'라고 해서 지배권이 넘어가게 된 거죠. 상황이 거꾸로 된 거잖아요. 그럼에도 작년 5월 기사 삭제에 동의했었다는 걸 근거로 삭제가 집행된 거거든요. 당시 (삭제에) 동의했던 기자들도 이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어요."

-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일가 관련 57개 기사가 보도됐던 2019년과 지금 상황이 바뀐게 있나요?
"달라진 게 있다면, 없었던 회장님이 생기고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거죠. 그런 와중에 기사가 삭제된 거죠. 저희가 기사를 재검증하는 취재를 했거든요. 기사에는 중요한 두 가지 테마가 있었죠. 하나가 벌떼 입찰이에요. 이른바 계열사나 제3의 협력사들을 동원해서 입찰 경쟁률이 높은 것처럼 꾸민 다음 대거 계열사들 동원해서 어떤 계열사가 되더라도 호반의 건설 시행사가 공공택지를 가져가는 형태를 고발한 거고요. 그 벌떼 입찰을 통해 쌓인 자본이 결국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문제인데, 분양 개발 이익금들이 결국 김상열 회장의 세 자녀가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회사로 흘러가게 돼요. 결국에는 일감 몰아주기에 의한 편법 증여 아니냐는 부분들에 대한 의혹이에요. 저희가 경로를 따라 취재해 왔지만, 기사가 잘못 보도됐거나 과장, 왜곡된 사실관계는 거의 찾지 못했어요."

- 아무 문제 없는 기사라는 거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죠. 다만 (기사를 삭제하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법원에서도 그게 허위 왜곡이라고 인정하고 삭제를 명령했다고 주장해요. 그래서 저희가 그걸 또 검증해 봤어요.

2019년도에 <서울신문> 기자들이 호반건설의 제3대 주주 등극을 두고 문제라면서 기획 취재를 해요. 당시에 호반건설 주장은 그거예요. '우리 해명도 들어주지 않고 우리사주조합의 이익을 위해서 편집권을 남용해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부 기사 삭제 가처분 신청을 했거든요. 법원 결정문을 보면 일단 신청된 내용은 지금 문제가 된 기사들 전체 57건에 대해서 전부 한 게 아니고 기사 6개의 18개 부분, 즉 문장으로 따지면 18개 문장에 허위가 있고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삭제를 요구했고요. 법원은 당시 가처분이었기 때문에 급하게 판단을 했죠. 근데 당시 법원 재판부 판단은 '그 표현 자체가 명예를 실추한다고 해서 언론사의 기사를 일괄 삭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사실관계를 보니 한 3곳 정도는 사실관계가 좀 잘못된 것 같다. 그러니 이건 지우라'라고 해요. 18곳 중 3곳을 삭제하라고 명한 건 맞아요. 그런데 이걸 근거로 전체 57건 기사 삭제가 타당하다고 하는 건 과도한 주장이라는 거죠. 법원이 명한 세 개 기사는 PDF에서도 삭제했어요. 그리고 당시 가처분에서 문제가 없다고 한 15개 문장은 그대로 아직 남아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 판결 결정문을 근거로 자꾸 57건 기사가 모두 허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편집국장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삭제한 게 아닌가봐요?
"기사 삭제는 이른바 6인 협의체에서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6인 협의체라는 것은 지난해 5월 우리사주조합이 호반 건설이 요구한 기사 삭제를 처음으로 동의할 때 꾸려진 협의체를 말합니다. 이번 기사 삭제는 그 6인 협의체와 사람은 다르지만, 같은 구성으로 곽태현 사장이 소집해서 집행된 겁니다. 6인 협의체 구성원에 현 편집국장이 들어가 있었고요. 급하게 소집됐을 때 현 편집국장은 반대했다고 해요. 그런데도 강행이 됐고 편집국장은 본인의 직을 걸고 이걸 막을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답니다. 왜냐하면 작년 5월 일부 동의한 건 맞기 때문에 그동안의 협상 테이블에 우리 기사를 올린 순간 기사는 생명력을 잃어버렸다는 거죠. 거꾸로 얘기하면 내가 직을 걸 만큼 이 기사 삭제를 막아야 될 명분과 이유가 없다고 국장은 판단한 거죠."

- 기사의 생명력은 뭘까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자 스스로도 생명력에 대해서 판단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보도하는 순간 그 보도물은 공개가 되고 그 기사는 이 사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거든요. 내가 쓴 기사의 생명력을 영향력이라고 해석한다면 그 영향력이라는 건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면서 사회에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주겠죠. 하지만 그건 언론 기관이나 그 기사를 생산한 기자의 손을 떠난 부분인 것 같아요. 물론 그 기사가 허위라면 즉시 바로잡아 될 의무가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 기사의 영향력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할 수 있겠느냐라는 거죠."

- 기사를 다시 복구해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취재해 보니까 기사 복구가 타당하다고 판단되고요. 그럼에도 <서울신문> 기자들은 일단 명시적으로 기사 복구를 요구하지는 않고 있어요. 재발 방지책이라든가 편집권 독립이 침해된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죠. 6인 협의체 같은 근거 없는 조직을 통해 이런 일들이 재발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겠다고 하지만 논란이 있은 지 여러 달이 지났는데도 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어요.

그리고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장도 사건 초기에 기자들이 반발했을 당시 사내 게시판에 '기사의 진실성이 어느 정도 규명된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서 한번 따져보겠다. 그리고 진실성이 어느 정도 규명된다면 회장의 직권으로 기사를 다시 게재하겠다'라고 했거든요. 그런 부분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대화를 원하는 기자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냥 넘어가는 게 괜찮을지 우려스러운 거죠."

- 회장이 직권으로 기사를 삭제하고 복구하는 게 맞을까요?
"회장의 직권으로 기사를 복구한다는 것도 저희가 취재한 언론 전문가들의 얘기에 따르면 편집권 침해 행위일 수 있죠. 기사를 삭제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이미 삭제한 기사를 복구하는 것도 편집국 내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되는 일인데 그걸 직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약속한다는 것 자체가 언론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거죠."

-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김중배 선언'이라고 있어요. 1991년 9월 6일 <동아일보> 김중배 당시 편집국장이 퇴임하면서 '자본의 언론 통제가 권력의 통제보다 더 무섭고 집요하다'라며 '앞으로는 어떻게 보면 자본 권력에 대응하는 건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고 언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라고 했어요. 지금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거죠. <서울신문>은 118년이 된 언론사인데 <서울신문>만 놓고 봐도 과거 일제 기관지로서의 오명이 있었지만 해방이 됐잖아요. 그런데 또 정부 기관지로서의 오명이 있었죠. 하지만 또 독립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색깔이 있는 기획 취재에 강하고 기자들의 전문성도 있는 언론사로서 전통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 건데 결국 자본의 독립은 해내기 힘들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김중배 기자의 30년 전 경고가 새삼스럽게 더 다가왔어요."

- 취재하며 어려운 건 뭐였나요?
"언론 기관을 취재하다 보니까 제가 하는 취재 행위가 또 다른 편집권 침해를 부르면 안 될 텐데라는 걱정이 있었어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팩트를 꼼꼼하게 챙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방송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들어왔죠. 저희는 나름대로 해명도 충실히 듣고 호반건설의 주장과 김상열 회장의 주장을 다 듣고 (방송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갑자기 가처분 신청이 들어와서 놀랐어요. 결과적으로 법원이 상식선에서 잘 판단을 해줘서 방송할 수 있었습니다."
우한울 시사기획 창 서울신문 호반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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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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