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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가 적어도 친구 아버지 수준은 됐으면 좋겠다

[대선 이슈 칼럼] 성평등-성인지 예산이 여성 위한 거란 그의 인식에 대하여

등록 2022.03.04 10:29수정 2022.03.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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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사회분야 방송토론회에 참석해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2월 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나흘 뒤인 2월 8일 "구조적인 남녀 차별이 없다고 말씀 드린 건 아니고요"라고 발언을 번복한 바 있다. 누군가는 호떡 뒤집듯 말을 쉽게 바꾸는 것을 비판했지만, 나는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지난 2월 21일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1차 법정 토론회에서 윤 후보는 다시 처음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언급을 했다. 
 
(다만) 집합적 남자, 집합적 여자의 문제에서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게 훨씬 더 피해자나 약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해줄 수 있다.

지난 2일 진행된 마지막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되었다. 
 
(구조적 성차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마는, 중요한 것은 여성과 남성을 집합적으로 이렇게 나눠 가지고 이걸 양성 평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떤 범죄를 피해를 당한다거나 또는 공정하지 못한 처우를 받았을 때 거기에 대해서 우리 공동체가 강력하게 대응해서 그걸 바로 잡아야 한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윤 후보의 말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구조적 불평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왜 이것을 양성 평등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윤 후보의 말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내 능력밖의 일인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 번의 말 실수가 아닌, 그의 인식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후보의 인식, 두렵다

이쯤되니 내 친구가 자주 하는 농담이 떠오른다. 대기업에서 평생을 일해 온 친구의 아버지는 여성 직원이 팀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셨고 발령을 거부한 적도 있다고 한다. 친구는 이에 빗대 "내가 아빠 때문에 사회 생활이 잘 풀릴 수가 없지"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면 안 된다지만, 이게 어디 농담이기만 한가. 친구와 그녀의 아버지는 사회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엮이거나 마주친 적이 없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얼굴을 붉히고 뒷머리를 긁적이시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표현하신다. 

정녕 이것이 '집합적'인 문제가 아니며 '개인적'인 문제인가. 기업들이 남성을 선호해 온 역사는 누구에게 따져야 하는가. 여성에게 제한적인 역할이 주어진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이러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오직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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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일 오후 세종시 조치원읍 조치원역 광장에서 열린 세종 유세에서 마스크를 고쳐쓰며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동안 고용상 성차별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부단히 있어 왔고 오는 5월 19일부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절차가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과 제도들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사회적인 인식 또한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윤 후보의 인식은 이를 뒷걸음질치게 만들지는 않을지 두렵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후보는 3차 토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가 성인지 예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예산들 중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 차원으로 만들어 놓은 그런 예산들"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 발언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고 성평등이 실현된다면 여성만이 그 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보는 그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모두 함께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성평등

내겐 세 명의 남자 조카들이 있다. 나는 진심을 다해 오직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성평등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내 부모 생애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고, 나와 내 남편이 겪고 있는 고단함이 끝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성평등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모든 후보들이 지적하는 저출생 문제 또한 성평등한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저출생'이 아닌 '저출산'이라고 말하는 윤 후보의 단어 선택에서도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출산율은 여성이 아이를 낳은 횟수를 말하는데, 저출산은 인구 감소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의미로 읽혀 최근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회에선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앞서 친구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나는 부끄러움을 표현하시는 친구 아버지의 모습이 기성세대가 보여줄 수 있는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도처에 널린 불평등을 각 개인이 모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치를 아는 것.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시 잘못된 과거와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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