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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이 없다고? 면접 성비 조작·성별 임금 차이부터 설명해보라

현저하게 불리한 여성 면접자...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21.09.10 14:45수정 2021.09.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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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사건 이후 한동안 휴지기에 들어갔던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다시 활동에 들어갔다. 공동행동은 2017년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채용 성차별이 드러나고 뒤이어 공공기관, 은행권의 채용 성차별이 밝혀지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연대기구이다.

2019~2020년 대전 MBC 아나운서의 채용 성차별에 대응하기 위한 공대위를 꾸리면서 같은 단위가 중복으로 활동하기 어려워서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 대전 MBC 아나운서는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차별 결정문을 받고 회사와 협상 끝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대전 MBC는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만 채용했다. 용감한 한 여성의 문제 제기와 이에 연대한 공동행동의 활동으로 잘못된 채용 성차별 관행을 바로잡은 사건이었다.

이미 정해진 면접 성비... 혹은 질문 자체가 성차별
 

성별 연령별 월임금총액 ⓒ 통계청


2018년 공동행동을 꾸릴 때 드러난 문제점은 면접 점수 조작이었다. 기업들이 면접 과정을 공정하게 했다면 여성들이 채용되었을 자리에 남성 구직자들의 점수를 일괄적으로 올려 이들을 채용했다. 채용 성비는 내부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대한석탄공사, 서울교통공사, 킨텍스, 하나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삼성과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은행권에 대한 일괄조사가 진행되자 아예 채용 관련 서류를 파기해 버렸다. 이러한 과정이 밝혀진 것은 채용 성차별을 수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고 다른 비리를 수사하던 중 드러난 것이었다.

이후 공동행동은 지원자 성비 대비 합격자 성비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기업들의 반대가 거세다며 난색을 보인다. 하지만 기업이 거리낄 것이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정보는 이미 취합되어 있고, 공개할 것은 숫자 네 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숫자 네 개면 차별을 가려낼 수 있다. '4/5룰'이라는 통계적 차별 판단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집단의 선발률과 다른 집단의 선발률을 나누어 이것이 0.8을 넘지 않으면 차별이라는 통계적 기준을 많은 나라가 채택하고 있다. 이 단순한 공개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21년 동아제약 사건은 조금 다른 사건이었다. 채용 성차별이란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지만, 이는 면접 과정에서의 성차별적 질문으로 면접점수 조작과는 완전히 다른 사건이었다. 면접관이 "군대를 다녀온 남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임금이 다른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병역 이행이 가능하면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는지" 등을 여성 면접자에게만 질문한 것이다.

어떤 답변을 내놓더라도 분명 여성 면접자에게 불리한 질문이었다. 면접자에 따라서는 질문만으로 당황하여 이후 면접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질문이다. 그 자체로 성차별이었다.

수사를 통해 문제 제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기관과 은행권의 문제 자체가 드러났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동아제약 사건은 당사자가 직접 이를 문제 제기하면서 드러났다. 문제는 성차별적 질문 자체를 성차별로 인정할 수 있는가였다. 성차별적 질문을 했다는 것으로만 차별로 인정된 판례가 없었던 것이다.

기존 판례들은 성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과의 연계성을 입증한 후에야 성차별로 인정해 왔다. 이전에 유사한 문제로 싸운 이는 없었다. 많은 법 전문가들은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성차별 인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성차별적 질문 자체를 성차별로 제기한 사실상 최초의 사건인 셈이다.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달랐을 결과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성차별은 그 자체로 문제인 것 아니야?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법으로 성차별이 인정되는 영역과 일상생활에서 성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매우 달랐다. 이전 판례의 유무가 중요했고, 법의 모호성을 해석하여 노동자 입장을 관철하는 것은 투쟁의 영역이었다.

법 전문가들은 남녀고용평등법은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입법 목적 자체가 성차별 자체의 금지가 아니라 이를 통해 여성이 성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매우 보수적인 관점으로 남녀고용평등법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나온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성차별적 질문을 받은 면접자는 이 질문으로 인해 당황하고 분노한 상태에서 면접을 진행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탈락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성차별적 질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태에서 면접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남성 면접자와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다른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 자체의 금지를 통해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법이다. 한국의 법과 해석은 성차별을 촘촘하게 막기 위한 내용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공동행동은 문제 제기 당사자와 논의하여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성차별·성희롱 익명신고센터에 사건을 접수하였지만, 고용노동부는 익명신고센터 접수만으로는 행정지도 이상은 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공동행동과 피해자는 상의 끝에 사건을 고용노동부 진정으로 접수했다.

채용 성차별 사건은 당사자가 나서기 어렵다. 자신이 당한 성차별과 탈락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신하기도 어렵고,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처럼 성차별적 질문 자체를 성차별로 인정한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또한, 이를 성차별로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만족할만한 실익을 거둘 수도 없다.

현행 채용 성차별에 대한 벌금은 최고 500만 원에 불과-정부는 2018년 채용 성차별 대책 발표 시 이를 5년 이하의 징역,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하겠다고 발표만 했을 뿐이다-하다. 구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차별 판단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사건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구직자 신분으로는 이후 동종업계로의 취업 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당사자는 희귀하고 드물다.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노동자들이 한 건 한 건 판례를 쌓아갈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빠르게 제도를 개선하고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

여성은 채용 성차별로 인해 남성보다 구직 과정에서 더 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그런 만큼 하향 취업을 선택할 확률도 높다. 성별 임금 그래프를 들여다보면 여성 임금이 평생에 걸쳐 남성과 동등한 경우를 단 한순간도 찾아볼 수없다. 그 시작점은 채용 성차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 10월호 ‘女性여성女聲’ 꼭지에도 실렸다.
#여성 #성차별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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