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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있을 수도 없는 일'... 91년생 막내 변호사에게 프로젝트를 맡겼습니다

90년대생과 90년대 학번이 공존하는 법조계...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 것인가

등록 2021.07.10 11:44수정 2021.07.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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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나온 지 약 3년이 지났고, 그들은 정말 왔다.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이제 어디든 그들이 있다.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다.


법을 밥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집단은 일단 고리타분하고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이는 사회에 꽤 알려진 평판이고, 법조인들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법이란 게 원래 재미가 없는 학문이라서 설사 타고난 유머 세포가 있었더라도 건조한 법서 속에서 극심한 감성 가뭄을 겪고 나면 어느새 무미건조한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또한, 이들은 기수에 따른 서열을 매우, 많이, 격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에서는 기수가 낮은 판/검사가 상위 직급으로 임명되면, '기수 파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보도를 한다. 유교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서열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법조계는 좀 유난스러운 듯하다. 

90년대생들, 법조계에도 이미 많다
 

이미 법조계에는 상당수의?90년대생들이?진입했다. 심지어 그들은 이 딱딱한 업계에서 전혀 딱딱하지 않게, 실속 있게 행동하고, 똑똑하게 일하고 있다. ⓒ elements.envato


앞서 언급한 책의 저자에 따르면, 90년대생의 특징은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솔직)하거나'로 압축되는데, 그런 면에서 법조계는 이들의 특징과는 대척점에 있는 업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미 법조계에는 상당수의 90년대생들이 진입했다. 심지어 그들은 이 딱딱한 업계에서 전혀 딱딱하지 않게, 실속 있게 행동하고, 똑똑하게 일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그들을 'N포세대'니 하며 '측은하다'는 이미지를 강요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꽤 행복해 보인다. 내려놓을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지,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바가 달라졌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은 나름대로 꽤 행복해 보인다.


최근 내가 한국 대기업 사내법무팀 팀장으로 겪은 일화를 통해 90년대생들과 90년대 학번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의 상사는 91학번(X세대), 나는 01학번(M세대), 우리 팀 막내 변호사는 91년생이다(Z세대). 91년생 막내 변호사는 최근 두 달간 우리 팀에서 가장 중요했던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

나의 상사와 나 때는 신입 변호사가 프로젝트를 맡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설사, 팀의 막내가 일을 매우 잘하는 친구라 해도 선배 변호사들의 가르침을 패스하고 단독으로 업무를 리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90년대생과 90년대 학번이 공존하는 세계는 다르다.

그 프로젝트는 디지털/데이터/서비스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업무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핫하고 중요한 분야다. 업무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업무는 법적인 접근만으로는 그 디테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막내를 리드 변호사로 투입하겠다고 상사에게 제안했을 때, 그는 "신입이 리드를 하고 네가 서포트를 할 거라는 거야? 그게 말이 돼?"라고 했다. 나는 솔직해졌다.

"네... 제가 배우면서 서포트 할게요. 막내는 이런 일의 개념이 체화된 세대예요. 우리가 배우면서 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서열이 중요하지 않은 세대, 중요한 건 조화
 

90년대생들에겐 나이, 학번, 기수 등은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 elements.envato

 
상사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수긍했다. 대략 2010년까지 한국의 변호사들은 계층의 이동, 부의 상징, 사회적 지위의 우위 등의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지식의 양과 깊이에 집착하고, 그것을 무기이자 명예로 삼기에 '모르는 것'에 대한 내적 반발이 심하다.

대학, 학번, 그리고 누가누가 사시를 빨리 붙었나가 서열의 기준이 되는 시간만을 살아왔기에 모든 경쟁에서는 숫자로 정확하게 우열을 가려왔다. 그래서 그 숫자의 배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너무 싫은 것이다.

반면에, 90년대생 변호사들은 웬만하면 외국생활 한 번쯤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외국문화에 익숙하고, 설사 외국에 직접 살아보진 않았어도 미드/영드에 익숙하여 한국 밖의 세상 일에 박식하며, 학부에서는 법이 아닌 다양한 전공들을 공부했으므로 뼛속까지 '법돌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그들에겐 나이, 학번, 기수 등은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각자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한 가지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당연하다.

91년생 막내는 미국에서 학부를 나왔고, 전공은 커뮤니케이션, 부전공은 경제학. 영어능통자인데 한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한국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그녀는 프로젝트를 맡아달라는 나의 제안에 한 치도 당황하는 모습 없이 담담하고 쿨하게 "네. 알겠습니다"라고 응했다.

그리고 두 달간 막내를 서포트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 나는 새로운 지식과 법과 해외 사례들을 공부하고 체화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중간 관리자가 되면서 게으르고 둔탁해진 머리가 오랜만에 유산소 운동이라도 한 듯 개운해졌다.

상사의 염려와 달리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90학번 상사는 경영진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낙수효과로 나도 상사의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90년대생들과 90학번들 그들의 공존은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들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지, 그 길이 기대된다. 
#90년대생 #MZ세대 #X세대 #공존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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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변호사입니다. 반려견 두 마리, 다정한 남편과 함께 매일 초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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