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7 12:17최종 업데이트 21.07.0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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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여름, 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새벽 기차를 탔습니다. 미국에서 인천행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가장 싼 표를 골랐는데, 그 덕에 예정에 없던 도시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우연한 여행이 제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객차에 승객이 많지 않았고, 저는 짐을 내려놓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창에 비스듬히 기댄 채 낡은 공장지대, 주택가, 숲, 공장으로 되풀이되는 경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창밖 세상이 순식간에 증발한 듯 광활한 하늘이 드러나고, 아래에는 그만큼 넓은 호수가 철로를 따라 펼쳐졌습니다. 수면을 덮고 있는 안개 위로 떠오른 해는 회색 구름 사이로 오로라 모양의 빛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호수 언저리에는 검푸른 나무 한 그루가 망부석처럼 서서 물끄러미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이 기막힌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익숙한 솜씨로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좌우로 움직여 최적의 구도를 담은 뒤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찍힌 사진을 즉시 확인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그곳에는 우중충한 하늘 밑의 잿빛 호수와, 젖은 물감을 문지른 듯 희미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장 이후 경험에 앞서 공유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난 듯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소중한 순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강인규

 
다시 카메라 앱을 열고 고개를 드니, 호수는 온데간데없고, 기차는 낯선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했는데, 사실은 영원히 잃어버리고 만 셈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했어야 할 시간에 저는 카메라를 찾고, 앱을 열고, 생생한 현실을 외면한 채 조악한 픽셀의 조합을 지켜보고 있던 것이지요. 카메라를 눈앞에 댄 순간, 현실은 그 뒤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저는 미술관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잘 알려진 그림이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관찰합니다. 거리를 두고 응시하다가 바짝 눈을 들이대기도 하고,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가서 살피는 등 열의를 보이지요. 반면에 카메라를 들거나 멘 사람은 대충 훑어본 뒤,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는 자리를 뜨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마치 '이제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 감상은 나중에 천천히 하자'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함께 하지 않는 교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 강인규

 
움베르토 에코가 사진 찍기를 거부한 이유

탁월한 기호학자이자 작가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생전에 사진을 잘 찍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쓴 에세이에서, 청년시절의 프랑스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서술합니다. 그는 1960년에 프랑스의 성당들을 둘러보며 미친 듯 사진을 찍어 댔는데, 정작 집에 돌아와 발견한 것은 별 감흥 없는 사진들과, 여행에서 무엇을 봤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당혹감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마음속에만 경치를 담기로 결심하고, 여행지에서는 멋진 기념엽서를 사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저는 한국에 도착한 뒤, 쓰던 소셜미디어 계정을 모두 폐쇄했습니다. 디지털 매체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책 쓰는 작가로서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인스타그램 등을 포기하는 것은 적잖은 기회비용을 의미합니다. 소셜미디어가 연구 대상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생각을 소개하고 저작물을 홍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잃는 셈이니까요.

사실, 저도 계정을 닫으면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계정 폐쇄'를 선언하고 며칠 뒤 복귀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기도 했고, 소셜미디어가 제 삶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일부를 골라 자랑하지 않는 듯 자랑하면서 사람들의 호응을 기다리는 게 하나의 습관이 된 터였습니다(사실은 은근한 자랑질이 더 욕먹는 행위입니다. 소셜미디어의 기본 원칙은 '자랑하려면 대놓고 하라'입니다).

제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진을 찍으려던 까닭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삶에서 감동적이고 소중한 순간도 차창 밖의 경치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즐거움과 기쁨이 이런 찰나 속에 존재한다면, 카메라를 습관적으로 개입시키는 것은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예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게다가 내 경험은 누가 보지 않아도, '좋아요'와 '하트'의 승인 도장이 찍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소중한데 말입니다.

남에게 내 경험의 가치를 평가하도록 '아웃소싱' 하는 것은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라도 내 경험을 혼자 오롯이 누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소셜미디어를 버려야 했지요. 친구들과의 소통은 직접 만나 얼굴을 보거나 전화 목소리를 듣는 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제 삶은 다시 나만의 기억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얼굴 없던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는 소수의 벗들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지난 7년을 지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떠나고 나니, 짧은 글로 배설하듯 쏟아내던 생각이 축적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글 쓸 주제도 늘어났습니다.

소셜미디어 탄생 후 폭등한 십대 우울증과 자살

2020년 <소셜 딜레마>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서서히 사고와 행동을 바꿔가는지를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고찰한 작품입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기획, 개발, 투자자로 일했던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 매체들의 중독성과 사회적 해악을 고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개발과 운영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등장해 소셜미디어의 심각한 폐해를 경고합니다. ⓒ Netflix

 
이 다큐멘터리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래 10~14살 소녀들의 자살률이 151% 증가하고, 자해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비율도 3배 증가했다는 통계수치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평가를 타인에게 맡기도록 유도하는 소셜미디어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서이지요. 이른바 '페이스북 우울증(Facebook depression)'에 대해서는 학계에 꽤 많은 연구결과가 축적돼 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을 많이 쓰는 사람들일수록 불행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최근 소셜미디어 사용시간을 줄였을 때 우울감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불행, 우울, 소외감을 강화하는 이유는 나의 내면의 삶을 남의 외면적 삶과 비교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써 본 사람은 그곳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기록이 매력적인 부분만을 골라 대외용으로 포장한 경험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무의식중 우리는 잘 편집된 타인의 삶을 내 현실의 삶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곤 하지요. 또한 우리는 남이 습관적으로 누르는 '좋아요' 버튼이나 한마디씩 던지는 말에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공허한 평가에 집착하게 됩니다.
 

손님 없는 매장 앞에서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강인규

 
사람들은 타인과 더불어 살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동물이고, 남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타인이 내게 보이는 반응을 통해 태도와 행동을 조절해야 합니다. 사람이 상대방 표정을 몇 십 분의 1초 만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까닭도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상대가 기뻐하는 표정을 가장 빨리 포착하는데, 이때 걸리는 시간은 0.023~0.028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거울로 삼도록 만들어져 있고, 특히 상대의 승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길러집니다. 과거에는 주위 몇 명의 판단만 의식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그조차도 관계가 일상화되면 큰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지요.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이런 본성을 수백, 수천, 수만의 시선이라는 비자연적 환경에 내던졌습니다. 당연히 심리적, 정서적 충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소셜미디어 운영자는 사용자들이 겪는 장단기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소셜미디어 종사자들이 이런 부작용을 잘 알고 있는데도, 이를 바로잡기보다 오히려 부추기고 유도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소셜미디어의 존재 목적이 공익이 아닌 이윤 추구이기에, 중독이나 강박의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 삶에 파고들어 지속적으로 주의와 시간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 점은 '소셜미디어는 도구가 아니다'라는 트리스탄 해리스의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도구란 수저나 망치처럼 사용자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물건입니다. 수저가 '야, 나 한 번 써봐'라고 부르는 일도 없고, 망치를 본다고 갑자기 못을 박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도 않지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소리와 이미지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유혹합니다. 사용자의 의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도구'일 수 없는 것이지요.

트리스탄 해리스는 구글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사표를 던지고 '인도적 기술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설립합니다. 그는 스탠포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그가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이 사용자를 길들이는 이론적 토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구글을 비롯해 애플, 페이스북에 사용자들을 보호할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했지만, 이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결국 회사를 떠납니다.

휴대전화 앱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실

소셜미디어와 더불어 모바일 환경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축은 온라인 쇼핑일 것입니다. 앱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일은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 만큼 일상적인 활동이 되었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일 년 반 동안 대책 없이 불어난 배를 좀 줄이기 위해 지난달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조깅화를 한 켤레 사려고 온라인쇼핑몰을 기웃거리다가 모양도 괜찮고 가격도 적당한 신발 한 켤레를 발견하고는 쇼핑백에 담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볼이 넓은 제 발에 잘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직접 매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집 근처 상점가로 향했습니다. 문 닫힌 가게, 열렸지만 손님이 없는 가게가 즐비하더군요. 당장 저부터 온라인 상점을 먼저 찾는 마당이니, 지역경제가 허물어져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릅니다. 천천히 스포츠용품점 몇 군데를 들러본 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할인판매 중이어서 인터넷보다도 가격이 쌌고, '로켓배송'보다 빠른 속도로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요.
 

온라인 쇼핑은 매우 편리하지만, 지역경제를 황폐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사진은 '폐업정리' 현수막을 내건 의류매장입니다. ⓒ 강인규

 
운동화를 산 뒤에는 산책 삼아 시내 반대편을 둘러봤습니다. 한산한 상점들을 지나자 '폐업세일' 현수막을 건 매장이 보였습니다. 비루한 현실은 매끈한 휴대폰 앱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번화가 입구에 이르렀을 때, 여성의 울음 섞인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열 명 정도가 나란히 현수막을 들고 묵묵히 여성의 증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쿠팡 배달기사로 일하다 숨진 장덕준씨의 어머니로, 회사의 사과와 책임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27세였던 장씨는 2020년 10월에 심야근무 중에 사망했으나, 회사 측은 산재 판정이 나기 전까지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관련 보도를 찾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쿠팡의 배달 물량이 크게 증가하고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나, 인원은 도리어 감축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직원의 업무량과 노동 강도가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쿠팡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에서 탈퇴했습니다. 인터넷 쇼핑을 완전히 중단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식당에 찾아가 음식을 먹으려 합니다. 조금 불편하겠지요. 하지만 불편을 무릅써야 만날 수 있고, 만나야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르긴 해도, 제 뱃살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시위대가 쿠팡에서 과로사 한 20세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며, 회사 측의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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