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3 12:35최종 업데이트 21.06.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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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원코리아 혁신포럼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의 당선은 일찌감치 예상되었다고는 하나 정치사적으로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당내 원로라 할 수 있는 나경원·주호영 등을 제친 인물이 국회의원조차 지낸 적 없는 37세 청년이라는 점은 보수 정당에서 상상하기 힘든 이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당선시킨 힘이 세대교체의 열망인지, 정권교체 염원의 총아인지 판단은 아직 이르다. 그러나 원인보다 결과가 세대교체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586 퇴진론이 불거진 것이나 청와대에서 25세의 박성민 청년비서관을 기용한 것 또한 (인사검증은 그 전부터 진행됐다고 하지만) 이준석 돌풍의 여파라 할 수 있다. 사실, 노쇠한 인력들이 주도권을 장악해 물갈이가 더딘 곳 중 하나가 정치권이다. 구관이 명관으로 대우받고, 4년에 한번씩 바뀌는 국회도 언제나 50대 이상 남성들 중심이다.


고루함의 상징처럼 박제화 된 보수정당에 젊은 당수가 출현한 것은 환영하고 기대할 만한 일이다. 정치인 이준석의 평가가 아니다. 국회의원조차 한번 지낸 적 없는 청년 이준석을 선택한 당론과 민심이 놀랍다는 것이다.

놀랍다

이준석이 당 대표 선거 기간 중 보인 행보와 발언의 면면은 딱히 특별한 것이 없다. 정당의 공천, 내각의 구성, 직장에서 여성 등 약자의 몫을 보장하는 할당제 폐지 공약은 오히려 진부하기까지 하다.

젠더 문제를 이슈화 해 반페미니즘 정서를 자극, 소위 '이대남'을 지지층으로 결집시킨 전략은 당선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없다. 20~30대의 젠더 문제를 할당제로, 부동산 불만을 586 세력과의 세대 갈등으로 치환해 지지를 이끌어 낸 행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저학력 백인들의 불만을 오바마 대통령의 역차별 탓으로 몰아간 전략과 다를 바 없다. 정치적 욕심을 위해 편 가르기 하는 나쁜 정치인이라는 꼬리가 생겨날 만하다.

그래서 이준석의 역차별 해소가 공정이라는 주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인 선동 정치만큼 아찔해 보인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을 부추겨 반 문재인 민심의 지렛대로 삼고자 하는 거라면, 사회적 해악성은 최근 불거진 개인의 병역 특혜 논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역차별 호소로 극렬 지지층을 선동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미국 정치는 세계적 조롱거리가 됐다. 이준석을 두고 트럼프의 빙의라고 비판하는 것이 이유 없어 보이지 않는다.

당 대표로서 이준석의 행보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은 국민 80% 가까이 동의하는 사안이다(리얼미터가 지난 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수술실 CCTV 도입에 대해 찬성이 78.9%, 반대가 17.4%). 2011년부터 꾸준히 입법화 논의가 이어진 현안에 유보 입장을 밝힌 것은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국민의 안전권보다 앞세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비판하는 지적조차도 '선악을 조장한 여론조사 정치'라며 맞받아치는 이준석 당 대표에게서는 공감 능력보다 나만 옳다는 오기가 먼저 보인다. 10년을 논의해온 수술실 내 CCTV 설치 입법안. 통과시켜 환자의 권리를 지켜가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수순을 밟으면 안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차별금지법 입안을 두고 시기상조라는 이준석 대표의 입장 표명도 그렇다.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 현안이나 당위성이 충분히 검증된 입법안조차도 시기상조라며 재논의를 고집한다면, 이전 지도부의 개혁 입법 발목잡기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을 충분히 들을 법하다. 이준석 효과로 국민의힘 지지율이 40%에 육박했다는 여론조사가 있지만, 정작 이준석의 정치철학이나 행보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이준석의 당 대표 선거 압승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경원·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인물로는 보수 정당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당의 목표인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함의이기도 하다.

이준석의 정치역량 무게를 떠나 낡은 익숙함을 벗어던진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국민 여론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박수를 받아야 하는 건 이준석이 아니다. 젊음이 곧바로 개혁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새로운 선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세대교체의 도화선 되길, 다만...

지형을 넓혀보면 세대교체의 당위성이 차고 넘친다. 정치에서 노화는 사회 전반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세대 담론으로 보더라도 87년 6월 항쟁 세대, 586의 이념은 너무 오래됐다. 반독재·반통일에 맞섰던 자주·민주·통일이나 노동탄압에 맞섰던 노동해방의 이념이 지금 시대에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변화된 세상의 담론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대두된 게 공정이고 정의다. 공정과 정의.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을 관통하는 외침이었고 앞으로도 이 담론의 효용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정과 정의의 담론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등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약자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준석 대표의 정치철학은 정글 보수일 뿐 공정과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정과 정의의 정치의 표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를 둘러싼 의혹에서는 불공정과 불의의 그늘이 짙다.

그래서 87년 6월 항쟁의 담론을 공정과 정의로 대체하려면 정치인 이준석이 아니라 이준석 현상에 주목해야 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공정과 불공정 모두를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586은 이제 시대의 주인 자리를 내줄 때가 됐다. 산업화 세대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 20~30대들의 약진을 기대하는 이유는 586과 산업화 세대들을 새로운 담론을 담을 그릇으로 쓰기에는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시대의 담론으로 만들려면 586세대나 산업화 세대에 퇴진을 요구하는 소극적 행위로만은 안된다. 자주·민주·통일과 노동해방의 이념이 수많은 논쟁과 투쟁 속에서 정립되었듯이, 새로운 담론이 안착 되려면 20~30대의 적극적 사회 참여와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정치권력의 이양은 투쟁의 산물이다. 공정과 정의로 무장한 젊은 정치가 약진해야 비로소 586세대와 산업화 세대를 정치판에서 물갈이할 수 있다.

이준석 열풍에서 바꿔야 한다는 열망을 본다. 정권교체가 목적이라고 탓할 것도 못된다. 진보도 안주하면 정체되고 정체되면 정권을 지키기 어렵다. 공정과 정의로 무장한 20~30대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한다. 586 세대와 산업화 세대를 밀어내고 정치도 젊어져야 한다. 이준석 열풍의 귀착점이 이준석 대표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준석 열풍, 기대 반 우려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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