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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눈초리... 색다른 방법으로 금기 깬 두 남자

[리뷰] 영화 <마테호른>

21.06.21 16:07최종업데이트21.06.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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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의 계절이다. 노을빛 살구가 시장에 얼굴을 내밀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추억이 있다. 시골 집 건너 건너 마당에 있던 큰 살구나무. 밤새 비바람이 치고 그 다음날도 비가 내리는 아침, 비를 뚫고 달려가 한가득 살구를 주웠던 기억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 살구나무집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노부부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보통 사람과는 좀 달랐다. 그러나 동네 사람 누구도 편견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우리 반에 한 친구가 있었다. 뛰는 것은 물론 일자로 걷는 것조차도 불편한 친구였다. 팔의 움직임, 손의 움직임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말도 어눌해서 집중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놀리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의 동네 친구들은 책가방을 들어주며 도보 30분 정도의 학교길을 함께 오고갔다. 그가 결석하는 날은 반 아이 모두가 그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가 벌써 40여년 전 일이니, 세월이 흐른 만큼 세상도 많이 변한 듯하다. 둘째에게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누구든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게 좋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지금이 더 좋은 세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수 학교나 학급에서 특별 교육을 받으니 재활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도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장애를 '특별함'으로 강조할 때, 때로는 불편함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뿐만 아니다. 비정상이라고 배제된 사람들의 특별함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프레드 앞에 나타난 한 남자

영화 <마테호른>(2013)은 비정상성이 정상성을 전복시키는 이야기다. 주인공 프레드는 시곗바늘 처럼 재깍재깍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는 준비된 식탁 앞에서 시계를 바라본다. 재깍! 시계 바늘이 마지막 한 걸음을 떼어 12를 가리키자 두손을 모으고 감사기도를 한다. 다음은 벽에 걸린 아내와 아들 사진을 본다. 그들을 식탁에 불러들이기라도 하듯. 

프레드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들은 프레드가 내쫓았다. 아들이 성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런 프레드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다. 프레드는 아내에게 청혼했던 마테호른에 가서 죽은 그녀와 화해하고 싶다. 

프레드의 외로운 삶에 테오라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어른이지만 모르는것 투성이다. 자기 이름도, 자기 집도, 자기가 결혼한 사실도 모른다. 큰 사고를 당한 후 의식불명에서 백지의 상태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절도있고 깔끔한 프레드 성격에 그 남자가 마음에 들리 없다.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다. 독실한 프레드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그 남자를 먹이고 재운다.
  

프레드(톤 카스)와 테오(레네 판트 호프) ⓒ 전주국제영화제

 
테오는 자기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별이 없다. 그는 마트에서 염소 흉내를 내며 어린 꼬마를 즐겁게 해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테오는 생일파티 동물 공연자로, 프레드는 공연 기획자로 나선다.

테오는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도 없다. 프레드 아내의 브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밖에 나오기까지 한다. 보는 사람마다 아연실색이다. 이 일로 프레드는 사람들의 의심을 산다. 동성애자가 아닌지. 

일요일 당연히 교회 가는 날, 프레드는 금기를 깨고 이벤트 공연에 나선다. 교회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두 남자는 당당하게 걸어나간다. 공연중에 있는 프레드, 과거 얼음장 같았던 얼굴이 사르르 녹아있는 모습이다. 
 

생일 파티에서 동물 공연에 열연 중인 프레드와 테오 ⓒ 전주국제영화제

 
테오는 프레드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성소수자인 아들을 내쫓은 프레드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테오와 지내는 동안 프레드는 조금씩 변해간다. 테오와의 결혼, 안될 것도 없다.

그들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을 교회로 달려간다. 그리고 마주 서서 결혼서약을 나눈다.

정상성을 무장해제한 비정상성

처음에 프레드는 테오에게 이것저것 가르쳤다. 그러다 어느새 프레드도 테오에게 물들어버렸다. 남자, 백인,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로 사는 것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적 지향 등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 우월함과 열등함, 옳고 그름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어떤 지점에선 차별당하기도 하는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반면 테오는 그 모든 기준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도 차별하지도 않는다. 편견도 고정관념도 없다. 이런 테오 앞에 프레드는 무장해제하고 평안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전에 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그것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 한다. 더 살만한 세상을 향한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프레드처럼 정상의 기준에 맞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세계란, 얼마나 숨막히는가. 테오처럼 어떤 편견도 고정관념도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모두가 좀더 행복한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다양한 삶 영화<마테호른> 차별금지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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