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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과 강원도 홍천, 토종씨앗으로 만나다

'토종씨앗 공동운영 채종포'가 만든 특별한 공동체 활동

등록 2021.06.17 09:44수정 2021.06.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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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은 '상생공동체' 사업으로 서울과 농촌의 공동체가 일대일로 손잡고 3년간 교류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각 공동체에서 교류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하는 '상생 코디네이터'들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넘어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도시, 농촌, 우리 시리즈의 첫 주인공은 서울 광진구 광진주민연대 모은정 사무처장과 강원 홍천군 여성농민회 손경희 사무국장입니다. 이들에게 3년간의 상생공동체 활동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기자말]
 

채종포 농사에 참여한 서울과 홍천 주민들의 단체 사진 ⓒ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지난 5월 7일 금요일 아침.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있는 토종씨앗 채종포(식물의 종자를 채취하기 위해 조성한 밭)에 2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채종포에 모여 멀칭(잡초 관리 등을 목적으로 밭의 표면을 비닐로 씌우는 작업)을 하고 고라니가 들어와 농작물을 먹어치우지 않도록 채종포를 에둘러 울타리를 설치했다. 언뜻 보면 농민들의 품앗이 현장 같지만 사실 이들 중 과반수는 광진구 주민들을 포함한 서울시민들이다. 홍천군 여성농민회(이하 홍천여농)와 광진주민연대는 올해 이 채종포에 목화, 주먹찰옥수수, 반찬콩, 붉은땅콩 등 토종씨앗을 뿌려 함께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홍천군에 뿌린 토종씨앗, 상생의 씨앗

이들은 지난 2019년부터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의 '도시-농촌 상생공동체 구축' 사업을 통해 '상생과 연대의 길찾기'라는 이름으로 토종씨앗 살리기 활동을 하고 있다. 채종포 농사 말고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행복나눔 농부장터, 중랑천 텃밭을 함께 일구는 토종씨앗 농사, 농촌과 농민의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토종배움터 강연, 광진 주민들이 홍천에 가서 일손을 돕는 농활의 추억 프로그램까지. 광진의 도시 소비자와 홍천의 농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오고 있다.

홍천여농 손경희 사무국장에게 토종씨앗의 가치를 이해해주는 도시 소비자들은 소중한 존재다. 2011년 남면에 채종포를 조성하기 전에는 전국여성연대, 환경운동연합, 여성민우회생협(현 행복중심생협),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공동으로 '만원의 행복' 사업을 진행했다. 조합원들로부터 만 원씩 기금을 모아 토종옥수수 농사를 짓고, 수확한 옥수수는 기금을 낸 조합원들에게 나눠주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지었다.

"농산물은 우리가 아무리 가치를 이야기해도 먹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누군가는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알려야 하고 같이 소비돼야 계속 생산이 이어질 수 있고요. 그럼 그걸 누구와 해야 할까요? 당연히 도시 소비자들이고, 무작위적인 대상보다는 우리의 의미에 공감해주실 수 있는 분들과 시작을 했어요."
 

손경희 홍천군 여성농민회 사무국장 ⓒ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만원의 행복'으로 시작된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은 직접 농사를 짓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채종포 농사에 서울 내 여러 행복중심 단위생협들이 참여하여 채종포 활동이 커갈 무렵, 주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하던 광진주민연대가 상생공동체 사업을 통해 홍천여농과 인연을 맺게 됐다.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하다 도농교류를 떠올리게 됐어요. 교육으로 만날 수도 있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오고 가면서 장터를 연다거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지역 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광진주민연대 모은정 사무처장이 홍천군과 교류하게 된 배경에 관해 말한다. 광진주민연대와 긴밀한 관계인 행복중심광진생협이 홍천여농과 토종씨앗으로 맺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토종씨앗으로 정해졌다.
 

모은정 광진주민연대 사무처장 ⓒ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손경희 사무국장에 따르면 홍천여농에서는 "어떤 작물이 우리 땅에 심어져서 다시 채종되는 과정에서 변이 없이 같은 형질이 꾸준히 나온다면 그것을 토종으로 인정"한다. 토종과 개량종 사이에 선을 긋기보다는 가능성과 다양성에 문을 열어 놓는다.


"토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에요. 그런데 토종을 딱 어떠어떠한 것 이렇게 박제화시켜 버리면 저는 토종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육종을 통해 개량된 품종은 다수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획일적이기 때문에 병충해나 기상이변 등 재해에 대처하기 어렵다. 개량종은 외부 환경에 따라 수확량에 큰 편차를 보이는 반면, 토종은 수확량은 적을지언정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수확량이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다. 손 사무국장은 유전자조작기술로 개발되어 농민들의 종자회사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키는 터미네이터 종자(채종하여 다시 심었을 때 원래의 형질이 발현되지 않는 씨앗)가 아닌 이상 토종과 개량종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만큼이나 다수확 역시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에다. 또한 토종의 다양성이 개량종의 획일성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토종씨앗을 되살리기 위해서 해야할 일 

씨앗을 갈무리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 농민의 몫이었다. 손경희 사무국장은 "우리 신랑이 저보다 씨앗 가꾸고 갈무리하는 거 더 잘 한다"면서도 씨앗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거의 할머니들이다 보니 여성농민회에서 적극적으로 토종씨앗 채집에 나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어르신들로부터 토종씨앗을 어떻게 기르고, 무슨 음식을 해 드셨는지 듣고, 실제로 들은 대로 재배하여 음식을 해 먹어보는 과정에서 손 사무국장은 토종씨앗을 되살리기 위해 넘어야 할 여러 관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씨앗들은 사라져가고 있었고, 어르신들의 기억이 뒤섞여 있거나, 남아있는 자료가 불충분했다. 어르신들이 맛있다고 해서 씨앗을 얻어 농사를 지어봤는데 막상 먹어보니 현대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이 있었고, 맛은 뛰어나지만 다른 문제가 있는 것도 있었다.

사과참외처럼 쉽게 파손되어 유통이 어렵거나, 밤콩처럼 잘 물러지지 않아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때문에 토종 농산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사람들이 과연 즐겨 먹게 될지 고민이 생겼다. 손경희 사무국장은 토종 농산물이 실질적으로 우리 밥상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토종 농산물을 활용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기록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토종에 대한 지식이라는 건 씨앗을 심고, 키우고, 수확하고, 가공해서 먹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거잖아요. 그런 자료가 정리돼야만 어르신들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씨앗이 아니라 젊은 친구들도 재배할 수 있는 씨앗이 될 것 같아요."

도시 소비자들의 관심도 중요하다.

"상생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토종씨앗이라는 존재를 우리 스스로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관심도 갖지 않았어요. 그런데 토종씨앗이라는 걸 우리 입에 올리게 되면서 그 존재가 우리한테로 들어오게 되고, 계속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람들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관심이 시작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은정 사무처장은 교류가 거듭될수록 스스로의 변화, 지역 주민들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처음에는 '중랑천 텃밭에' 활동가들만 가서 일했는데 지금은 그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늘었어요. 농활도 가고 싶어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고, 토종씨앗을 가져가서 키워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어요. 그리고 홍천이 광진에 장터를 열면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일부러 홍천 농산물을 사려고 일하다가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채종포에 한 번 왔다 간 사람, 농민회 언니(홍천여농 구성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의 교육을 들은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의도하지 않았던 변화가 보이고 있어요."

교류가 많아질수록 추억도 차곡차곡
 

토종 사과참외 ⓒ 손경희

 
"작년 채종포 수확하는 날, 수확 시기가 늦은 거예요. 그래서 콩이 다 터져가지고 바닥에 다 떨어져 있는 거죠. 그게 한두 개가 아니어서 하루종일 콩만 줍다 갔는데 그걸 놓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콩을 주우면서 그냥 가자 싶다가도 '안돼, 이걸 어떻게 키운건데'라며 하루종일 콩을 줍고 갔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요."

모은정 사무처장이 말한다. 이 기억은 손경희 사무국장에게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게 진짜 어떤 콩인데' 이러고 주우시더라고요. 가시라고 했는데 안 가고 계속 줍더라고요."

워크숍에 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함께 사업 구상을 하던 일, 홍천군 농산물로 요리를 해 먹은 사진을 서로 SNS에 공유하던 일, 중랑천 텃밭일을 마친 뒤 함께 새참을 나눠 먹은 일 모두 기억에 남는다. 그 과정에서 연대의 정도 쌓여갔다.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해주려는 마음이 생겼다.

"저렇게 좋은 언니들이 저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우리도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은 텃밭을 받아서 거기다 토종씨앗을 키워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모은정 사무처장은 홍천군 여성농민회를 통해서 농촌과 농민의 삶에 대해 배운 뒤 '언니들'과 함께 농민들을 위해 싸워야겠다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멀칭작업이 한창인 채종포 풍경 ⓒ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농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에는 배우지 않아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농민들이 갈수록 기업을 상대하게 돼요. 기업에 농산물을 납품하면, 기업이 가공해서 제품을 만들고. 그러니까 도시 소비자들과 농업인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손 사무국장은 농업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줄어들어 농업의 중요성보다는 농촌이 제공하는 정서적 휴식이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것 같다고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도시에 사는 손 사무국장 조카들은 전보다 더 자주 홍천에 찾아와 뛰놀았다. 그의 자녀들은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삶이 유기적이라고 느꼈다.

"뭘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거잖아요. 서로 부족한 걸 채워주고. 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하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모은정 사무처장은 농촌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접 가보지 않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추상적으로 '그런 게 있다더라' 생각하거나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삶처럼 넘어가는 것 같아요."

우리의 밥상을 책임지는 농민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농사도 지어보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농촌과 농민의 삶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이해하기에는 긴 설명도 부족하다. 모 사무처장은 말한다.

"일단 가보자."
 

오전 9시경 시작된 채종포 작업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하루 작업이 마무리 된 채종포 앞에서 손경희 사무국장(왼쪽)과 모은정 사무처장(오른쪽)이 ‘토종씨앗 공동운영 채종포’라고 새겨진 10년 된 팻말을 들고 있다. ⓒ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맹민현님이 작성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서울 용산구 다사리협동조합과 충북 괴산군 웅골협동조합 상생공동체 이야기를 전합니다.
#서울시지역상생교류사업단 #공동체 #상생 #지역상생 #토종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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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은 서울과 지역의 행복한 동행을 위해 다양한 일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은 중소농가 판로를 지원하는 상생상회, 지역의 먹거리를 소개하는 서로맛남(쿠킹클래스), 서울과 지역의 공동체를 매칭해 교류를 지원하는 상생공동체입니다. 이 외에도 서울과 지역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지속해서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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