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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2만6000% 상승... 가상 부동산은 제2의 비트코인?

투자 열기 뜨겁지만 실체 없고 불확실성 커... "투자 가치 사라질 수도"

등록 2021.06.03 07:32수정 2021.06.0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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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부동산을 사고 팔 수 있는 플랫폼 어스2의 대표 화면. ⓒ 어스2


"잠실 땅을 7000원에 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누리꾼 A씨는 지난 1월 서울 잠실에 위치한 약 30평대 땅을 7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사들였다며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구매 후기'를 올렸다. 그가 공개한 토지의 주소지나 위성 사진은 모두 현실에 있는 것들이었지만 정작 토지는 '진짜 땅'이 아니었다. 그가 사들인 건 어스2(EARTH2)라는 이름의 가상현실 플랫폼 내에 속한 가상의 땅이었다. 

A씨는 "수요 공급에 따라 땅값이 오르내리는 구조인데, 구입하고 사흘째 되던 날 10%대 수익을 봤다"고 밝혔다. 이어 "폰지사기 아니냐는 의혹도 있지만, 현재 1코인당 4000만원대에 육박하는 비트코인도 처음엔 사기라고 의심받았다"며 "(가상 부동산 투자는) 제2의 비트코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주식과 암호화폐에 이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가상 부동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이 연이은 폭락으로 주춤하자, 최근 투자자들이 제2의 비트코인을 찾는 탐색전에 나서면서 '메타버스(metaverse)'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란, 가공이나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에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로 3차원의 가상현실을 뜻한다.

가상 부동산으로 간 투자 열풍

메타버스는 최근 투자 시장에서 대세 중 하나다. 코로나19로 일상적인 삶에 제약이 생기자 VR기기를 쓴 채 각종 메타버스에 접속해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뿐 아니다. 각종 기업들도 가상현실로 진출 중이다.

지난 2월 명품 브랜드 구찌는 네이버 자회사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ZEPETO)'에서 아바타를 꾸미는 데 사용할 패션 의류·잡화를 출시했다. 편의점 씨유(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8월부터 제페토 내 'CU 제페도한강공원점'을 열겠다고 밝혔다. 디지털광고연구소 인크로스는 2025년까지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8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체 메타버스를 만들어 가상 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사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어스2와 브이파크(vPARK), 애프터어스(AFTEREARTH) 등이 대표적이다. 세 곳 모두 사업자,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용자들에게 땅을 팔아 수익을 챙기고 있는 구조 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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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부동산을 사고 팔 수 있는 웹사이트 어스2에서 청와대 주변 부지를 검색해 본 화면. 가상 부동산을 구입한 이용자들의 국적이 화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 어스2


대표적으로 어스2는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지도를 그대로 복제해 10㎡ 단위의 구역을 '그리드(Grid)'라는 이름으로 쪼갠 뒤 이용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모든 땅의 가치는 처음엔 0.1달러지만, 새로운 이용자가 특정 국가의 땅을 사면 국가 전체의 땅값이 오른다. 이렇게 구입한 땅은 '마켓플레이스(Market Place)'라는 이름의 가상 부동산 시장에서 다른 이용자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세 업체는 각기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어스2의 경우 메타버스를 게임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장기 목표를 갖고 있다. 이용자들이 각 토지 위에 게임이나 집, 쇼핑 센터를 건설할 수 있게 하고 이 과정에서 토지 보유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반면 브이파크는 현실 세계를 그대로 가상현실로 옮겨놓는 게 사업의 주된 목표다. 이용자들이 360도 카메라로 콘텐츠를 찍어 올리면, 그 장소에서 기업들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하고 그 대가로 보상을 주겠다는 것. 애프터어스의 사업 목표는 '사용자 친화적인 가상현실의 조성'으로, 앞선 두 업체보다 추상적이다.

청사진만 가득한 가상 부동산 투자, 믿을 수 있나

문제는 이들 업체의 사업이 구체적 실체 없이 '청사진'만 가득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 사업자들은 '조만간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시행 시점은 밝히지 않고 있다. 현재 투자 열풍은 '언젠가 해당 메타버스가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이용자들의 토지 구입·판매를 중개해주는 것 외에 수익 창출 수단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보니 해당 사업자들을 신생 메타버스 업체가 아니라 피라미드식 다단계 사기(폰지사기) 업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례로 브이파크는 개별 이용자들에 '추천 코드'를 발급하고 있다. 새로운 이용자가 이 코드를 사용해 토지를 구입하면 각각에게 5%의 이자를 주는 식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추천인을 받는 형태가 폰지사기의 수법과 유사하지 않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게다가 막상 수익을 창출했다 하더라도 회사로부터 직접 투자한 돈과 이자를 돌려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어스2의 경우, 신용카드나 온라인상 결제 수단인 '페이팔(PayPal)'을 연결하기만 하면 쉽게 가상의 땅을 살 수 있는 것과 달리,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선 본사 이메일로 계좌 명의자 이름·이메일 주소·은행 이름·은행 계좌 이름·계좌 번호·SWIFT 코드·받을 금액과 국제 이체 관련 모든 정보 등을 제공해야 한다. 투자금을 돌려받는 데도 최소 수 주에서 수 개월이 걸린다.

"제2의 비트코인 될지 몰라"... 가능성에 베팅하는 투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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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2의 한 이용자가 가상 부동산 위에 'FLEX(돈 자랑의 은어)'라는 글자를 새겨뒀다. ⓒ 어스2

 
상황이 이런데도 투자자들의 관심은 뜨겁다. 어스2 내 한국 토지 가격은 1그리드 당 약 26달러로, 투자가 허용되기 시작된 지난해 11월 가격 대비 2만6000% 넘게 상승했다. 상승폭만 보면 암호화폐 열풍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강남이나 종로 등 서울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이용자들이 돈을 회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가상 부동산을 구입하려 하는 이유는 '제2의 비트코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다. 누리꾼 노마드*** 는 지난 3월 말 자신의 블로그에서 '비트코인 투자에 동참하지 못해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을 가상 부동산 투자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그는 "지난 2014년에 비트코인을 처음 사고 2만원을 번 뒤 팔았다"며 "당시에 혜안이 있었다면 지금쯤 내 인생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어스2가 폰지사기가 아니냐는 평가도 많지만 지난 2014년 40만원 하던 비트코인을 살 때도 비트코인은 악평을 받고 있었다"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덧붙였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실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 그것은 조롱을 당할 것이다. 둘째, 그것은 맹렬하게 반대될 것이다. 셋째, 그것은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폰지사기를 의심하면서도 투자를 감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3월 누리꾼 ALEX** 역시 "1월에 처음 어스2에 대해 접하고 다단계 사기 느낌을 받았으나 사기라고 해도 초기 진입자로서 손실 볼 확률이 적을 듯했다"며 "1000원을 투자해 서울대 캠퍼스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매입해 투자한 결과 총 1300만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엔 회사 쪽에 출금을 요청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 답변을 받지 못해 결국 개인 간 거래로 수익을 실현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다소 진지하게 가상 부동산 투자에 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재미'로 땅을 사들이는 이용자들도 적지 않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 땅을 '추억용'으로 간직한다거나 몇 개의 그리드를 선택적으로 구입해 땅 위에 'FLEX(부를 과시한다는 뜻의 은어)'라는 글자를 새겨두는 식이다. 구입자의 국기가 토지 위에 뜬다는 점을 이용해, 국가 간 갈등이 첨예한 지역 내에선 이용자들 간의 영토 선점 경쟁도 벌어진다. 독도도 그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가상 부동산 투자는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고 위험이 큰 만큼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메타버스 분야의 권위자인 김상균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는 "해당 플랫폼이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가상 부동산 투자는) 굉장히 리스크가 크다"며 "온라인상에서 연예인 기획사를 세워 연예인 아바타를 사고판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업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메타버스 토지 위에 건물이 세워지는 등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나타나야 현재 투자도 의미가 있지만, 사업자들이 그 약속을 지킬지부터 의문이 든다"며 "사업이 진행된다고 해도 메타버스가 인기가 없다면 투자 가치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각 메타버스 플랫폼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메타버스 #어스2 #브이파크 #가상부동산 #메타버스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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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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