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금기 건드린 '집사부일체', 사이다와 고구마 사이

[리뷰] SBS 예능 <집사부일체>

21.05.31 17:33최종업데이트21.05.31 17:38
원고료로 응원
SBS 예능 <집사부일체>가 '코로나19'를 소재로 외국인 게스트들을 초대하여 토론을 벌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굳이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주제를 예능을 통하여 풀어내려했던 시도는, 출연자와 시청자들 모두에게 불편한 후폭풍도 동시에 남겼다.

30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에서는 '지구촌일체'를 표방하여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출연하여 세계적인 이슈에 관하여 토론을 나누는 지구 청년회가 열렸다. 과거 JTBC에서 방송되어 큰 인기를 모았던 외국인 토론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온 것. 실제 이날 등장한 게스트 중 알베르토(이탈리아), 타일러(미국), 로빈(프랑스), 럭키(인도), 블레어(호주, 화상출연) 등 다수가 모두 <비정상회담>의 고정패널 출신들이기도 했다.

그동안 '인생의 사부가 될만한 인물을 모셔다가 그의 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배운다'는 기획을 표방해왔던 <집사부일체>에서 뜬금없이 타 방송사 프로그램의 컨셉과 출연자를 그대로 가져다와서 재탕한 것도 고개를 갸웃할만했지만, 더 민감한 부분은 토론주제가 하필 코로나19였다는 점이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 SBS

 
민감한 주제, 민감한 멤버들

지구청년회 멤버들은 '코로나는 올해안에 종식될 수 있을까'를 두고 각국의 코로나 현황을 소개하며 열띤 토론을 나눴다. 코로나가 현재 전세계 공통적으로 중요한 이슈임에는 맞지만, 문제는 각국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서 비전문가인 패널들이 언급하기에 민감한 대목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날 토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중국 책임론'이었다. 중국인 패널로 참여한 마국진은 "중국 코로나 신규 감염은 0"이라고 주장하며 중국이 초기에 상상 이상으로 록다운을 했기 때문에 코로나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베르토와 로빈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사례를 거론하며 중국의 통계 발표의 공신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타일러는 코로나19 발병원인을 둘러싼 음모론에 대하여 "코로나19에 관한 정보 공유에 있어서 충분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음모론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줘야 했다"고 지적했다. 마국진은 "문열고 조사는 받았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전문가들도 참여했다"고 반박했다. 로빈이 "중국이 그동안 코로나19에 관하여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했다고 생각하나?"라고 질문하자, 마국진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초창기부터 투명하게 오픈했다. 다만 받아들이는 시각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타일러는 중국  측이 유독 민감할만한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WHO는 국제기구이고, 어떤 나라에 들어가서 (강제력으로) 정보를 수집한 권리가 없다. 그 나라의 협조가 필요한데, '통제가 많은 공산국가체제'인 중국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중국이) 협조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럭키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이후 4~5개월간 WHO가 중국의 눈치를 많이 봤다"고 주장하며 "인도 언론에서는 WHO가 코로나 초기부터 일찍 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면 확산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 WHO에서는 아무말도 안했을까"라며 WHO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마국진이 "초기에는 정말 괜찮았으니까"라고 주장하자 럭키는 정색하며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토론이 다소 과열될 조짐을 보이자 주변에서 결국 중재에 나섰다. 이승기는 "여기서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도 이상한 것"이라며 분위기를 무마시켰다. 양세형은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신이다. 바이러스는 주사를 맞아야하지만 불신은 주사없이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패널들의 공감을 받았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 SBS

 
엇갈린 반응

방송이 나간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날 토론의 후반부는 코로나 문제를 놓고 사실상 마국진 대 전세계 패널들의 구도로 진행됐다. 마국진의 주장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동안 중국 정부 측의 공식 입장과 한치도 다를 게 없었다. 중국이 코로나19의 전세계적인 확산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은 등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제기되고 있는 화두다. 역시 코로나19로 많은 고통을 받고있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도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한편으로 마국진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중국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다. 정부의 방침에 위배되거나 거슬리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노골적인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개 개인이 방송에 나와 자국에 가장 민감한 이슈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기하게는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사드 문제와 한한령 논란 이후 한국 연예계에서도 중국과 관련된 언급은 일종의 금기가 된 지 오래다. 일부 중국 언론과 누리꾼들은 BTS의 '6·25 언급'이나 이효리가 예능에서 농담으로 언급한 '먀오'발언 등을 문제삼는 등 타국 연예인의 표현의 자유까지도 간섭하려드는 실정이다. <집사부일체>가 외국인들을 섭외하면서 중국 이슈를 빼놓고 언급할 수 없는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것은, 그동안 암묵적인 금기로 여겨졌던 부분까지 건드린 셈이었다.

기왕 민감한 주제를 꺼내든 이상,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은 감수했어야 했다. 아쉬운 부분은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관점이나 독자적인 분석을 대변할만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인 패널들이 열띤 토론을 이어갈 동안 <집사부일체> 한국인 고정멤버들은 적극 개입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거나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에만 머물렀다.

그나마 타일러의 논리적인 문제제기와 럭키의 돌직구 일침마저 없었다면 이날의 토론은 차라리 안하니만 못한 고구마같은 모양새로 끝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다음주 <집사부일체>는 '미얀마 사태'를 주제로 토론할 것을 예고했다. 공교롭게도 미얀마 사태 역시 중국이 직간접적으로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영향을 미쳤다는 배후설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토론에서 이 부분이 언급될지는 미지수다. 갑작스럽게 논란의 중심에 선 <집사부일체>의 갑작스러운 '시사토론 실험'은 과연 신선한 도전일까 아니면 섣부른 과욕일까.
집사부일체 코로나19 비정상회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