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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액션 없지만, '무협장인' 서극 감독의 매력적 작품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현대극 요리영화 <금옥만당>

21.04.18 11:56최종업데이트21.04.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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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만우절에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고 장국영은 아시아 최고의 가수 겸 배우였다. 한국 팬들, 특히 30대 중반 이상의 남성들에게는 총에 맞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공중전화에서 부인과 통화하며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던 <영웅본색2>의 송자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반대로 여성 팬들이라면 인간과 귀신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천녀유혼>의 꽃미남 영채신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장국영이 그저 잘생긴 얼굴만 앞세운 배우는 아니었다. 장국영은 '홍콩 영화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금장상 시상식에서 8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하지만 1991년 <아비정전>으로 한 번 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화려한 외모 때문에 연기가 묻힌 대표적인 배우라 할 수 있다. 장국영이 아이돌 가수 출신임을 고려하면 그가 배우로서 이룬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사실 많은 관객들이 장국영하면 <영웅본색>1,2편이나 <아비정전>, <해피 투게더> 같은 진지한 영화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장국영도 가벼운 코미디 영화에 꽤 많이 출연했다. 주윤발과 도둑 콤비로 나온 <종횡사해>, 홍콩의 희극지왕 주성치와 형제로 나오는 <가유희사>, 유쾌한 로맨틱코미디 <금지옥엽>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장국영의 필모그라피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서극 감독의 흔치 않은 현대극 <금옥만당>이다.
 

<금옥만당>은 무협액션 전문감독 서극이 만든 흔치 않은 현대물이자 가벼운 코미디 장르의 영화다. ⓒ 유니픽쳐

 
'사극장인' 서극 감독의 흔치 않은 현대물

오우삼 감독과 함께 홍콩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던 서극 감독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감독으로도 굉장히 유명하지만 제작자로서도 <천녀유혼>과 <영웅본색> 시리즈, <첩혈쌍웅> 등을 제작했을 정도로 역량이 뛰어나난 인물이다. 8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여러 장르의 영화를 찍던 오우삼 감독에게 누아르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해 준 인물도 바로 서극 감독이다.

1989년 <영웅본색3>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지만 서극 감독이 연출자로서 아시아 전역에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는 역시 1991년에 개봉한 <황비홍>이 그 시작이었다. 서극 감독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던 액션 배우 이연걸을 일약 성룡에 버금가는 아시아 최고의 액션스타로 키워냈다. 이후 <황비홍>시리즈와 <청사> 등을 연출하며 무협 액션 감독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런 서극 감독에게 1995년 장국영과 원영의를 캐스팅해 연출한 <금옥만당>은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오래된 식당을 건 요리 대결을 소재로 다룬 <금옥만당>은 서극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벼운 코미디 장르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극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현란한 액션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진지한 영화만 만들던 서극 감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서극 감독은 오우삼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저물어 가던 90년대 후반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하지만 오우삼 감독이 <브로큰 애로우>를 시작으로 <페이스오프>, <미션임파서블2>, <윈드 토커> 등을 만들며 할리우드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데 비해 서극 감독은 <더블팀>과 <넉오프>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자 다시 홍콩으로 컴백했다(두 편 모두 동양무술에 능통한 장 끌로드 반담이 주연이었다).

서극 감독은 홍콩 복귀 후 <촉산전>, <칠검>,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 등 자신의 전공분야인 무협액션을 주로 연출했다. 2011년 <용문비갑>에서는 1993년 <황비홍3-사왕쟁패> 이후 18년 만에 감독과 주연으로 이연걸과 재회하기도 했다(1997년 <황비홍-서역웅사>는 총연출로만 참여). 서극 감독은 지난 2014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타이거 마운틴>을 통해 중국 금계백화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식당을 지키기 위한 장국영과 원영의의 고군분투
 

<금옥만당>에서는 고 장국영(왼쪽)과 원영의의 '리즈시절' 외모를 실컷 감상할 수 있다. ⓒ 유니피쳐

 
고리대금업을 하며 망나니처럼 살던 조항생(장국영 분)은 범죄세계에서 손을 씻고 요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험을 보지만 번번이 낙방한다. 시험장에서 우연히 만난 용곤보(조문탁 분)에게 소개받은 식당 '만한루'에 취직한 조항생은 자신을 못 마땅히 여기는 사장 구조풍(나가영 분)과 그의 천방지축 딸 구자혜(원영의 분) 때문에 고생문이 열렸다(원영의는 <금지옥엽>에 이어 <금옥만당>에서도 가수지망생 역을 맡았다).

자신이 속했던 조직이 연루된 폭력사건 때문에 식당은 엉망이 되고 조항생은 사장에게 한 번 더 신임을 크게 잃는다. 그러던 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 만한루를 노리는 황영(웅흔흔 분) 일당은 만한루를 걸고 사장 구조풍에게 요리대결을 신청한다. 하지만 요리대결이 결정된 후 황영에게 매수된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구조풍을 배신하고 구조풍은 이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문제만 일으키던 딸 구자혜는 쓰러진 아버지 대신 만한루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조항생과 함께 요리대결을 대신할 전설의 요리사 요걸(종진도 분)을 찾아간다. 구자혜와 조항생은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 요걸 부부를 재결합시키지만 5년 동안 요리에서 손을 놓은 채 술에 의존하며 살았던 요걸은 요리에 대한 감을 잃어버렸다. 결국 용곤보와 조항생, 구자혜는 요걸의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주기 위한 특수 재활치료에 돌입한다.

부인이 해준 요리를 먹고 감각을 되찾은 요걸은 황영과 최후의 승부를 벌인다(이 장면에서 무협영화를 능가하는 긴장감이 흐른다). 곰발바닥 요리에서 승리한 요걸은 두 번째 대결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며 위기에 놓이지만 두부로 만든 원숭이골 요리를 통해 승리를 거두며 만한루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캐나다로 떠난 조항생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구자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만한루로 돌아온다.

<금옥만당>은 출연자들이 만한루에서 파티를 하다가 주인공 조항생 역의 장국영이 "대사가 뭐였더라"라며 NG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 <질투>의 마지막 장면처럼 마이크 장비와 스태프의 얼굴이 잡히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요리란 서로 싸우고 경쟁하는 수단이 아니라 모두 함께 즐기고 행복하게 먹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더한다는 <금옥만당>의 주제가 담긴 훈훈한 엔딩 장면이다.

유일하게 액션을 선보이는 '2대 황비홍' 조문탁
 

서극감독은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컷으로 '2대 황비홍' 조문탁의 액션 장면을 영화에 포함시켰다. ⓒ 유니픽쳐

 
<금옥만당>은 주인공 조항생이나 원영의가 아닌 모두에게 인정 받던 광저우 최고의 요리사 요걸이 아내와 아이를 잃고 주정뱅이가 되는 계기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요걸과 요리대회 결승에서 대결을 펼치는 인물이 바로 이연걸에 이어<황비홍4-왕자지풍>부터 '제2대 황비홍'이 되는 조문탁이 연기한 홍콩의 요리고수 용곤보다. 두 사람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지만 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달려가는 요걸의 기권으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사실 용곤보는 <금옥만당>에서 조연급 인물이기 때문에 자세한 개인사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건달이었던 조항생을 만한루에 직접 추천했고 만한루 사장 구조풍이 쓰러진 후에는 만한루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로 미루어 볼때 아마도 용곤보는 과거 만한루에서 일하다가 독립을 한 인물로 짐작할 수 있다. 초반에는 상당한 요리 실력을 뽐내지만 중반부 이후엔 요리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만 황영 패거리들이 만한루에 찾아와 행패를 부릴 때는 현란한 무술 실력으로 황영 일당들을 가볍게 제압한다. 중간에 황영의 암기에 찔려 손을 다치기도 하지만 금방 전세를 역전시킨다. 요리 영화인 <금옥만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액션 장면이기도 하다. 아마 중간에 경찰이 난입하지 않았더라면 황영 패거리들은 매우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무술 좀 할 줄 안다고 감히 황비홍에게 덤빈 대가다). 

<방세옥>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알렸던 액션 배우 조문탁은 1993년 이연걸에 이어 '제2대 황비홍'으로 낙점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선배 이연걸처럼 <황비홍> 시리즈와 <서극의 칼>, <소걸아 : 취권의 창시자>, <태극권 : 무림7대고수전> 등 주로 무협 액션물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창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무협 장르만 고집했던 조문탁은 액션배우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는 뚜렷한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금옥만당 서극 감독 장국영 원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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