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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꾸짖는 - 김종직론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53회] 「조의제문(吊義帝文)」을 지은 사림파의 원조

등록 2021.04.23 16:38수정 2021.04.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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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루의 전경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유자광의 시를 능멸하면서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곳이다. ⓒ 문일식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고려 말의 성리학자 길재의 제자로서 세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에 오른 성리학의 대가였다.

영남학파의 스승으로 김굉필ㆍ정여창ㆍ남효은 등 많은 인재를 길렀다. 「조의제문(吊義帝文)」을 지은 사림파의 원조로서 연산군 4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죽은 지 6년이 지난 그의 무덤이 파헤쳐져 이른바 부관참시를 당하고, 처자는 관노비가 되었다.

「조의제문」은 중국 초나라의 항우가 조카인 초희왕을 죽이고 강물에 던진 고사를 들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꾸짖는 글이다. 「김종직론」에서 발췌한다. 

김종직은 근세에 큰 유사(儒士)라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에 벼슬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세조(世祖)께서 과거에 응시하도록 다그치니 부득이해서 과거에 올랐다. 또 시종(侍從)에 들어서 벼슬이 높아져서는 이에 모친이 늙었으므로 억지로 벼슬한다고 일컬었다. 그러나 모친이 천명을 마쳐도 오히려 벼슬을 그만두지 않았다. 문인(門人, 김굉필)이 그의 건백(建白)하는 일이 없음을 간하니 이에, "벼슬하는 것이 나의 뜻이 아니므로 건백하고 싶지 않다." 하였다. 종직 같은 자는 참으로 이록을 차지하고 명망을 훔치며 능청스럽게 한갓 수레를 붉게 하고 인끈을 붉게 한 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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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생가 조선조 성리학의 거두 김종직이 태어나고 자라고 별세한 '추원재'다. 뒷산엔 그의 묘소가 있다. ⓒ 정근영

 
정난(靖難)하던 날(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죽인 날)에 종직은 박팽년ㆍ성삼문 같은 녹을 먹던 자가 아니었고, 김시습 같이 평소에 은택을 받은 바도 없었다. 특히 시골의 하찮은 한 선비일 뿐이었고, 전 임금을 위해서 죽을 만한 의리도 없었으니, 그 벼슬하기를 즐겨하지 않았음도 진실로 거짓이었다. 비록 거짓이나 이미 뜻을 세웠으면 임금이 아무리 핍박하더라도 죽기를 맹세하고 가지 않았음이 옳았다. 

그런데 화를 두려워하여 억지로 나아간 것 같이 하였다. 이미 과거에 올라서는 붓을 갓 옆에 끼워서 임금의 말을 기록했으며, 사책(史策)을 끼고 고운 털자리에 엎드리기도 하였다. 또 한 고을을 맡아서 모친을 봉양했으니 그 이록을 차지했음도 지극하였다. 또 명호(名號)를 훔치고자 해서는 남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늙은 모친이 있다. 그러나 끝내는 서산(西山)의 뜻(중국 백이숙제의 고사)을 지키겠다."

하였다. 그 후 모친의 상제(喪制)를 벗자, 응교(應敎)에 임명되었고, 10년 동안에 대사구(大司寇, 형조판서)로 뛰어올랐다. 그만 쉼이 마땅할 듯 한데 오히려 벼슬을 탐내어서 떠나지 않았다. 녹만 먹으면서 직분에 당연히 할 바를 하지 않았고, 문인이 말함에 이르러서는 둘러대는 말로써 답하였다. 이 사람이 과연 군자로 될 만한가. 죄는 죽음이 마땅하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지금에도 그 사람을 칭찬함이 변하지 않으니 무슨 이유인가. 내가 그윽히 그 사람됨을 보니 가학(家學)을 주워 모으고 문장공부를 해서 스스로 발신한 자인데, 그 마음이 간사하였다. 제 이름을 높여서 한세상 사람을 용동(聳動)시키고, 임금의 들음을 의혹되게 해서 이록을 훔치는 터전으로 삼았다. 이미 그 꾀를 부리고는 제 재주를 요량 해봐도 백성을 편케 하고 구제하기에는 부족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넉넉하게 할 수 있는 데에도 즐겨하지 않는 체하여 제 못난 것을 감추는 수단으로 했으니, 그 또한 공교로웠다. 

그가 지은 조의제문(吊義帝文)은 더구나 가소롭다. 이미 벼슬했은 즉 이 분이 우리 임금이건만, 이에 그 분을 나무라는 데에 힘을 다 쏟았으니 그 죄는 더욱 크다. 죽은 후에 당한 화가 불행함이 아니다. 하늘이 그 간사하고 교묘함에 성내어서 사람의 손을 빌어서 명백하게 죽인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이 그 사람의 행적은 따지지 않고, 한갓 그 이름만 존중해서 지금까지 큰 선비라고 하는 연고로 특히 나타내어서 기록하였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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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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