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그 유명한 한옥마을 말고 이런 동네도 있습니다

[전주 노송동 이야기] 노송동 프로젝트: 돌아, 보다(Turn and See)를 시작하며

등록 2021.04.16 10:01수정 2021.04.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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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놓친 것


전주를 찾은 방문객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시청 앞이나 남부시장에서 내려 향하는 곳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사를 품은 객사, 산업화 초기 흔적이 여전히 묻어 있는 구시가지(전주 시내), 근대화의 산물 중 하나이자 오늘날까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영화관들, 그리고 이들의 화룡점정 격인 한옥마을. 사람들은 이 모두가 한데 모여있는 곳으로 향한다.

2010년대 초 SNS 입소문에 승선한 한옥마을은 기존의 전통미에 '트렌디함'을 더한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전국에서 끌어모았다. 기존 한옥 문화재와 벽화마을 주변으로 기발한 먹거리들을 파는 가게들과 다양한 인테리어의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기업도 유입되어 지역문화의 틀 속에서 창조적 기획들이 시도되었다. 건물 외부를 벽돌과 기와로 장식한 스타벅스, 한복을 입은 네오와 프로도가 안내하는 카카오프렌즈샵 등이 그 예이다. 한옥마을과 그 주변 전주 구시가지의 정경이 몇 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사람들 관심이 쏠리고 시끌벅적한 한옥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고 고요한 마을이 하나 있다. 늙은 소나무가 많아 노송(老松)동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북적이는 한옥마을과는 대조적일 정도로, 타지인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현지인에게는 볼 일이 흔치 않은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사가 살고 있다는 무성한 소문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마을에 사는 유명한 천사, 무언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매해 잊지 않고 찾아온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천사마을은 노후하고 단조로우며 재미 요소가 다양하지 않다. 전주를 방문한 사람들의 발길이 상업적으로 활발하고, 표면적으로나마 전통과 근현대의 면면들이 어우러져 있는 한옥마을로 향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주시 노송동 위치 ⓒ 네이버지도

 
그러나 천사마을 이야기는 한옥마을의 유구한 역사가 갖지 못하는 삶의 현장성을 지닌다. 인스타그램 게시 후 잊히고 마는 볼거리들과 순간의 즐거움에 불과한 먹거리들이 결코 지닐 수 없는 깊이를 갖는다. 요약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인격은 일생 동안 거치는 수많은 만남들과 사건들을 자양분 삼아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난 천사를 탄생시킨 마을과 마을주민들 스스로가 천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들의 삶과 이야기는 한옥마을의 볼거리와 먹거리처럼 즉각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없다. 충분한 머무름이, 진정한 환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한옥마을 방문객들은 천사마을의 현장성과 깊이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런 장소가 있음을 알지도 못한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경제성을 띄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 논리에 반(反)하는 상징을 갖는 이 마을은 지속적인 보도와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되기도 하고 지역 활동가와 지역신문의 노력도 꾸준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마을과 마을사람들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들의 생애주기라는 시계는 깰 수 없는 약속이라는 듯 끊임없이 시간의 흐름을 새겨나갔다.
 

노송동의 어느 골목 ⓒ 김용석

 
노송동 프로젝트 돌아turn, 보다see

노송동 주민들 다수가 얘기한다. "내가 이 마을 토백이여." 몇 년을 사셨길래 그러느냐 물어보면 적게 쳐도 30년, 많게는 40년 혹은 45년까지. 누군가에게 일평생이라 할 정도의 시간을 한 장소에서만 지내온 것이다. 아, 참고로 마을의 대다수가 70대의 노년을 사는 중이며, 60대면 젊은 축에 들어 '청년'이라 불린다.

필자로 따지면 나이 서른도 채 되지 않아 '토백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들을 상상할 수 없다. 심지어 수시로 돋는 방랑벽에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를 줄 모르는 성격이라, 계기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30년의 머무름은 내 인생에 일어나기 힘든 일일 것 같다.

활동하는 우리 몸이 공기의 마찰 속에 있듯, 한 사람의 일생은 시간의 마찰 속에 놓여있다. 크고 작은 사건과 길고 짧은 만남들은 거칠고 부드러운 시간의 마찰력이 남겨놓은 흔적이다. 그러한 흔적은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새겨진다.

'마을 토백이'들이 남노송동에서 지낸 30년, 40년, 45년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 어떠한 굴곡과 형태를 남겨놓았을지 궁금했다. 그중 가장 깊은 굴곡이 어디에 있으며 가장 뚜렷한 형태가 어떤 모양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노송동 프로젝트 돌아turn, 보다see. 주민들의 '그때 그 순간'에 대하여 '그땐 그랬지'의 이야기를 나눈다. 공간과 물건에 담긴 노송동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발굴하여 기록한다.

시간 속에서 잊혀가는 것들을 머무르고 남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미래를 향해 직선운동을 하듯 움직이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삶과 사고의 방식을 뒤집어야 한다. 겪고 지나온 과거의 것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turn),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는(see) 활동이다.

노년에 이르러 지난 삶과 젊음을 재해석하거나 그 당시 가졌던 감정, 생각, 시선이 어떠했는지, 혹은 어떠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현재와 과거의 대화, 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노송동의 역사를 쓰는 일이 프로젝트의 이상향, 즉 '이상적인' 목표이다.
#노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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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 해, 다른 이들의 치열함을 흘긋거리는 중입니다. 언젠가 나의 한 줄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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