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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2층 찾는 사람은 없어요" 알지만 샀습니다

[기사 공모] 고층에 사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등록 2021.04.16 13:38수정 2021.04.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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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2층은 피하라는 말이 나온다. 1층이나 탑층은 선호에 따라 일부러 찾는 사람이 있지만 2층을 일부러 찾는 사람은 없다는 이유였다.


안다. 알지만 2층을 샀다. 2020년 7월 11일. 내가 집을 갈아타려고 찾던 아파트엔 매물이 그거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집을 계약해놓고 입주할 때까지 남편과 밤마다 손을 잡고 계약한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몇 달 후면 내 집이 될 2층 집을 올려다보곤 했다. '한 층만 더 높았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아파트 2층에 살아봤더니

2층 집에 입주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까지 살아보니 좋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후루룩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부터 정원수를 가까이에서 마주 볼 수 있는 2층 특유의 시야까지.

전체 아파트 층수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3~4개 층이 로얄층이라고 하지만 2층이 주는 매력도 분명히 있었다. 겨울철 열매가 남아있는 나무에 배를 채우러 오는 까치까지 관찰할 수 있는 집이었다.


2층 집에서 맞는 첫 봄이 왔다. 겨울을 견디다보면 언제나 봄을 기다리게 되지만 이 봄을 특별히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전 집주인 분은 딱히 집 자랑을 하거나 하는 분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집에 볕이 잘 드나요?"라고 물으면 "예, 뭐, 2층집 치고는…"이라고 대답하고, 집을 보여주면서도 "3년 전에 섀시 고친 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네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그 분이 딱 한 가지 수줍게 한 얘기가 있었다. 봄이 되면 이 아파트 단지에 벚꽃이 예쁘게 피는데 그 중 가장 예쁜 나무가 우리집 베란다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3월이 왔다. 아무 잎이 나지 않아도 가지 끝까지 새로운 초록물이 올라오는 계절. 팝콘 옥수수처럼 터지기 전 꽃송이를 감춘 꽃망울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하루는 베란다 블라인드를 도르르 말아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면서 오늘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어 블라인드 끈을 당긴다.
 

벚꽃터치 창에서 손을 내밀면 벚꽃이 닿았다. ⓒ 최혜선

 
3월 23일이었다. 첫 꽃망울이 터졌다. 버터를 달구고 소금을 뿌려 팝콘을 튀길 때 처음 벌어지는 옥수수알 같았다.

"아래쪽에서 벚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니(꽃)가 안 보이겠지만 나는 봤어. 니가 제일 먼저 핀 걸 말야."

꽃에게 말을 건넨다. 그때부터는 매일매일 토도독토도독 꽃이 피는 소리가 들릴 듯이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피어났다.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닿는 거리에 꽃이 다가와 있었다. 매일매일 베란다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혼밥을 했다. 온몸은 햇살을 받으며, 눈으론 꽃을 즐기며.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
 

꽃보며 혼밥 꽃이 핀 계절엔 베란다에서 밥을 먹는다 ⓒ 최혜선

 
벚꽃이 개화에서 만개까지 일주일이 걸린다는 얘기는 해마다 뉴스로 듣고, 궁금해서 찾아도 봤지만 머리 속에 남지 못하고 깨끗이 휘발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층집에 살면서는 하루하루 꽃이 피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첫 해에 거뜬히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자리 잡았다.
 

만개 일주일만에 만개한 벚꽃 ⓒ 최혜선

 
여태까지는 봄에 꽃이 피면 단지 안의 목련, 벚꽃들을 올려다보는 즐거움만 있었다. 올해는 2층에서 꽃나무의 정수리를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다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꽃나무 꼭대기가 닿아 있는 층의 베란다에선 어떻게 보일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2층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떨까 2층에서 살아보니 저층의 베란다 풍경을 상상하게 되었다 ⓒ 최혜선


'저 나무는 3층 베란다에서 정말 예쁘게 보이겠다~'
'저 2층집에서 보이는 목련 꽃봉오리는 얼마나 예쁠까?'


아파트에서는 계속 7층 이상 높은 층에서만 살았다. 높은 곳에 살면 먼 곳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조망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것이겠지.

2층집에 산다는 것은 로열층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늘 보던 봄꽃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일년에 2~3주 가량 보이는 꽃나무가 남의 집 베란다에서 어떻게 보일지 헤아려 보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훈련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기사공모
#아파트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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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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