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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책 내고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상상 못한 중년의 선물, 책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출간후기

등록 2021.04.14 08:11수정 2021.04.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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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모르는 사람의 생명을 구한 적이 있다. 유치원생 딸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 복도였다. 장난치며 뛰어오던 예닐곱 살 남자아이가 넘어지더니 숨을 못 쉬었다. 나는 얼른 아이를 안고 하임리히법으로 당겨주었다. 알사탕이 '톡' 하고 튀어나왔다.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하임리히법은 목에 무언가 걸렸을 때, 뒤에서 양팔을 갈비뼈 밑에 두르고 배꼽 위 부위를 양손으로 세게 당겨서 목에 걸린 것을 토해내게 하는 응급처치다.

어린 아이는 목에 이물질이 잘 걸릴 수 있고, 당시 유명 성우가 예능 방송 중에 떡이 목에 걸려 사망한 사건도 있어서 처치법을 알고 있는 남편에게 배워두었다. 동네를 오다가다 구해준 아이를 만나면 반가웠지만, 아이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듯했다. 옆에 있는 그 아이의 엄마는 물론이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사는 영화 속 슈퍼 히어로(superhero, 초인적 영웅)가 된 기분이었다.


내 마음의 심폐소생술, 글쓰기

인생에도 명확한 대처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이 훌쩍 지나, 오십 세가 다가올수록 나는 '중년의 위기'를 실감했다. 몸은 하나둘씩 노화의 경고를 보내왔고, 마음은 지나간 날의 후회와 미래의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가족이 주는 안락함과 행복 속에 오롯이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감의 혼란이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싶다가도, '나만 왜 이래?' 하며 불끈 화가 솟기도 했다. 중년의 위기란 긴급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았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는 마음의 심폐소생술이었다.

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20대에 방송작가로 일했기 때문에 글쓰기가 낯설지 않았지만, 한 편의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었다. 방송 글은 움직이는 화면에 글을 입히거나, 스튜디오 대본을 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후 이어진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의 진솔한 글은 나를 사유하게 하고 치유해 주었다. 상처받은 가족관계, 성적(性的) 수치심에 지우고 묻어두었던 기억, 홧김에 낸 사표와 어이없는 해고 통보, 성급한 욕심으로 망쳐버린 일상다반사…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히 쓰는 사람 사이에서, 나도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


타인의 내밀한 사정에 감응하며, 시야는 사회와 세상으로 확장됐다. 조심스럽게 <오마이뉴스>에 문을 두드렸다. 기고한 글이 많이 본 뉴스에 오르고, 응원하는 댓글이 달리면서 주눅 든 중년의 자존감도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회복해갔다. 그렇게 글이 조금씩 모이던 차에 평소 이용하는 마포 구립 서강도서관에서 ''각양각책' 독립출판 만들기' 프로그램 포스터를 보았다.

'지금까지 쓴 원고를 문집처럼 책으로 묶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신청했다. 막상 책을 만들면서 사소한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 만큼 의미가 있을까? 하찮은 나의 글에 사람들이 감응할까? 난 너무 평범하잖아? 자괴감이 폭포같이 쏟아졌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일단 책 한 권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향해 달렸다. 책의 꼴을 갖추고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출판사에 제안서를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책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가 나왔다.

단단하지만 고집스럽지 않은 중년으로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 단단하고 행복해지는 중년, 삶의 새로운 속도와 리듬, 전윤정(지은이) ⓒ 세이지

 
젊을 때 상상한 중년의 삶은 '빈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의 외롭고 허탈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 시기에 이르러 자녀도 성인이 되니 '둥지가 넓어져서 좋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빈 둥지는 다시 새로운 관계로 채워간다. 남편과는 평생 한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 대학생 딸들과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는 친구가 되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안전하게 속내는 털어놓을 수 있는 글 모임 친구들, 반려견을 산책시키다 만난 견주 친구, 일본어를 배우며 일본인 친구도 생겼다.

나이 들면 친구를 사귀지 못할 줄 알았고,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곳곳에 숨겨놓았기에, 함께 숨겨진 삶의 선물 즐겁게 찾아보자고 권유하는 내용을 담았다. 단단하지만 고집스럽지 않은 중년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당신과 함께 모색하고 싶다.

게다가 책 덕분에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50세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서울시 <50 플러스>의 공유사무실 입주자 신규모집 소식을 들었다. 주부로서 나만의 글을 쓰는 공간이 늘 아쉬웠기 때문에, 나는 당시 준비 중인 책으로 활동 계획서를 만들었다.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해 개인 석을 받았고, 3월부터 사무실로 매일 출근한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개방 형태지만 그렇게 원하던 내 책상을 가지게 되었다. 50세 이후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며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는 사무실 안 사람들을 보며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이 또한 상상못한 중년의 선물이다. 

중년, 지금의 행복이 영원하지 않고, 지금의 불행도 끝이 있다고 여유를 부릴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도 "사람의 일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고 했다. 밀물이 오면 곧 썰물이 되어 물러날 것을 이제 경험으로 안다. 그런 삶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기록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다시 뛰어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우리 모두를 위해!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 단단하고 행복해지는 중년, 삶의 새로운 속도와 리듬

전윤정 (지은이),
세이지(世利知), 2021


#중년 #중년의위기 #빈둥지증후군 #50플러스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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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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