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 광장.....두 명의 순교자가 내려다보고 있는 공간

[40대 백수가 얼떨결에 간 쿠바] 쿠바인들에게 체 게바라란?

등록 2021.04.10 13:28수정 2021.04.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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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아바나 콜론 묘지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는 콜론 묘지 ⓒ 박종삼

 
박물관을 나와 혁명 광장에 가기 전 우리가 들른 곳은 아바나 콜론 묘지였다. 1871년에 만들어진 콜론 공동묘지는 규모 면에서는 아메리카에서는 제일 큰, 세계 4대 묘지라고 했다. 정식 명칭은 '크리스토퍼 콜론 묘지'로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땄다고 하는데, 과거 콜럼버스의 유해가 스페인 세빌라의 산타마리아 성당으로 옮기기 전 잠시 머물렀다고 했다.

콜론 묘지가 유명한 것은 규모뿐만 아니라 그곳의 장식품들이 예술작품들 못지않게 훌륭해서라고 하더니, 실제로 콜론 묘지는 그 자체가 거대한 미술관이었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뽐내며 비규칙적으로 들어서 있는 무덤들. 그 혼란스러움과 다양성 자체가 굉장히 쿠바적이었다.


화려한 교회 양식의 건물을 이고 있는 무덤부터 거대하고 정교한 천사의 상을 세워놓은 무덤까지. 가이드는 콜론 묘지에 묻힌 용감한 소방관과 쿠바 음악의 아버지 등등을 설명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나의 눈이 가는 곳은 평범한 대리석이 놓여 있는 단순한 무덤들이었다. 
 

화려한 콜론 묘지 ⓒ 이희동

 
과연 이곳 무덤의 모양을 결정하는 기준이 있을까? 아마도 공인을 제외하고는 결국 후손들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에 따라 무덤의 장식들이 달라질 것이다. 공산주의 쿠바는 만인의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이런 죽어서까지 받는 차별에 대해서는 관습의 이름으로 용인하고 있으리라.

씁쓸했다. 죽음의 공간에서조차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는 현실이라니. 우리는 자본에 따라 그 무덤이 자리 잡고 있는 터가 달라지지만, 쿠바에서는 자본에 따라 무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었다.

혁명 광장의 체 게바라

콜론 묘지를 나와 얼마 지나지 않자 낯익은 모습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 전체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바로 그 혁명 광장이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굳은 날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많은 이들이 체 게바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우리도 당장 버스에서 내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체 게바라를 배경으로 근엄한 표정을 짓는 사람, 장풍을 날리는 사람 등 각자 혹은 함께 만들 수 있는 갖가지 포즈로 그 공간과 순간을 기념했다. 모두들 기대하던 혁명광장이기 때문일까? 그 어느 때보다 다들 열심이었다. 
 

혁명광장 체 게바라와 함께 ⓒ 박종삼

 
체 게바라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건물은 쿠바의 내무성이라고 했다. 그 밑에는 체가 쿠바를 떠나면서 했던 그 유명한 말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가 적혀 있었는데 막상 그 어구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비록 체가 카스트로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 한 말이긴 하지만, 그것을 이용한 것은 카스트로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쿠바 혁명 이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관계가 내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체는 쿠바에서 외교관,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으로 활동했지만, 카스트로와 달리 처음부터 반미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고, 쿠바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공산주의를 통해 전 세계 인민의 해방을 주장했었다. 그는 소련의 제국주의를 비판했었고, 끊임없는 혁명을 부르짖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콩고와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따라서 카스트로를 위협할 만큼 인기가 좋았던 2인자 체가 스스로 쿠바를 떠나면서 했던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생사를 함께 했던 카스트로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고도 싶었을 것이며, 한 편으로는 혁명의 성공에 취해 점차 독재자가 되어가는 카스트로에게 충고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러니는 그런 체 게바라의 글을 취사선택했던 것이 바로 카스트로라는 사실이었다.

쿠바 혁명의 또 다른 주인공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혁명광장의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형상 ⓒ 박종삼

 
이와 같은 아이러니는 내무성 옆의 카밀로 시엔푸에고스가 새겨져 있는 정보통신부 건물에도 역시 드러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Camilo, Voy Bien?"(카밀로,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라는 카스트로의 질문에 카밀로가 대답했다는 "Vas Bien, Fidel."(잘 하고 있어, 피델)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또한 카스트로가 직접 고른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는 쿠바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혁명가라고 했다.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출신 의사로서 국제적인 인기를 도맡고 있다고 하면 시엔푸에고스는 쿠바 출신으로서 쿠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혁명박물관에서도 그는 체 게바라, 카스트로와 함께 박물관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그는 카스트로와 함께 몬카타 병영 습격에도 참가하였으며, 혁명군에서는 처음으로 아바나에 입성한 인물이기도 했다. 혁명 이후에는 충실한 공산주의자로서 농업개혁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1959년 10월 아바나로 돌아오는 비행 도중 플로리다 상공에서 사라지고 만다. 고작 27살 밖에 되지 않는 나이에 그렇게 명을 달리했다.
 

혁명 박물관에서 마주친 혁명 3인방. 왼쪽부터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 이희동

 
일부 호사가들은 그의 실종에 대해 카스트의 계획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토사구팽 사례로서, 2인자였던 체 게바라가 어쩔 수 없이 쿠바를 떠나야 했듯이 시엔푸에고스 역시 카스트로의 인기를 위협했던 만큼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주장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이후 카스트로는 시엔푸에고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의 정권 강화에 이용했고, 혁명 광장에서 볼 수 있는 저 형상물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함께 쿠바 혁명을 이뤘지만, 지금은 순교자처럼 박제되어 카스트로의 권력 강화에 이용되었던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과연 그들이 꿈꿨던 혁명 쿠바의 모습도 카스트로와 같았을까? 쿠바 사람들은 그 둘과 카스트로를 같은 선상에서 기억하고 있을까?

쿠바인들의 영웅

새삼 그 둘이 바라보는 있는 혁명광장이 달라보였다. 지금이야 마냥 자유로운 듯하지만 중국의 천안문 광장이나 러시아의 붉은 광장, 북한의 김일성 광장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느껴졌다. 국가권력이 대중을 동원하고 그 권세를 드러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같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도 한때 여의도 광장에서 이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다음날 만난 올드카 기사 마리오는 쿠바 혁명의 주역에 대한 쿠바인들의 감정을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쿠바 혁명에 대한 세대 간 감정은 확연히 다른 듯 보였다.

"How about Che Guevara?"(체 게바라는 어때?)
"Che Guevara? He's our hero. We love him. He's great!"(체 게바라? 그는 우리의 영웅이야. 우리 모두 그를 사랑하지. 그는 위대해!)
"How about Fidel Castro?"(그럼 피델 카스트로는?)
"Fidel? well....He's so so."(피델? 음. 그냥 그저 그래.)

 

체 게바라는 영웅이라는 쿠바인 마리오 ⓒ 이희동

 
52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권력자에 대해, 심지어 그 동생이 아직까지도 정권을 잡고 있는 현실에서 그저 그렇다고 말 할 수 있는 쿠바 사람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자유가 부러웠다. 과연 북한사람들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해 이만큼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부디 북한이 그런 나라로 변화하기를.

자, 내일은 아바나에서의 자유 시간이다. 오늘밤 술자리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쿠바 #혁명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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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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