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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대로 기록한다'의 참상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47회] 국가의 안위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등록 2021.04.17 18:42수정 2021.04.1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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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호를 따 만든 ‘교산교’. 교산은 여기 야산이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김종신

 
국가의 안위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살았던 허균은 백성들의 고통을 일선에서 지켜봤다. 피난 중에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겪기도 하였다. 나라를 지켜야 할 임금은 북쪽으로 달아나고, 수령을 비롯 지방관리들은 각자도생일 뿐,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 없었다.

전란의 참상을 고발한 시 「본대로 기록한다」와 민족사의 고난을 상징하는 「당나라 수나라 장수 머물던 곳」이다. 

               기견(記見)

 해 이울은 황촌에 늙은 아낙 통곡 소리
 쑥대머리 서리 짙고 두 눈은 어두웠네.
 지아비는 빚 못 갚아 북호에 갇혀 있고 
 아들은 도위 따라 서원으로 떠나갔네

 가옥은 병화 겪어 새간도 다 타버리고
 산 속에 몸 숨기다 베 잠방이 잃었다오
 살아갈 길 막막하여 의욕조차 끊겼는데
 관리는 무슨 일로 문에서 또 부르나.

 늙은이들 서로 보며 슬픈 기색 하나 없이
 모두 말이 올해에는 어진 원님 새로 와서 
 적마를 죄다 몰아 관아에서 기르고
 군량 납입 재촉하여 바닷속에 저장했다네.

 타다 남은 초막이라 백성은 살 곳이 없고
 참호 도랑 파 만들어 호는 반쯤 없어졌네
 관군은 상원으로 이동한단 말 전하니
 어느 뉘 성 지키던 장수양(張睢陽)을 허할 건가. (주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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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연세대학교

 
                 당나라ㆍ수나라 장수 머물던 곳에서


 갈라진 산기슭이 용처럼 돌아들어
 꼬불꼬불 우뚝 솟아 평지를 내려보네
 어느 해 만승천자 원정에 지쳤던고
 이따금 행인들이 유촉을 줍는다네
 공 세우기 좋아하는 수제(隋帝) 말할 나위 없고
 진황과 한무 다같이 교만한 임금일세
 작다고 얕볼 건가 봉채도 있는데
 날리는 화살이 현의군에 범접했네
 안시성 꼭대기선 북소리 두둥둥둥
 모래 먼지 자욱하다 이적의 검은 깃발
 백 필의 비단 선사 충성 권장 부질없소
 연개소문 놀라 쓸개가 터질까 봐
 화살이 눈을 맞혀 상처 입고 갔다지만
 이것도 전설이라 황당한 데 지나잖네
 이 걸음에 한 명장 설인귀는 얻었지만
 모두 무미낭을 비웃는 노래에 어찌하랴
 태자궁 앞에는 동마에 목메었고
 방주성 안에는 해 붉어 핏빛 같았네
 저승에 간 양제(煬帝) 역시 할 말 있으려나
 당 나라의 보존 터럭 차나 아슬아슬. (주석 8)

주석
7> 이문규, 앞의 책, 269쪽.
8> 앞의 책, 309~31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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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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