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4 07:40최종 업데이트 21.04.1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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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대전청사 자연정원의 용버들. 활착을 기다리며 견고한 감옥에 갇혀 있다. ⓒ 최수경

 
집 주변 대전정부청사 남쪽 광장은 십 수년간 콘크리트 광장이었다. 소통과 민주적 의결의 상징인 광장이 정부청사 앞에 조성된 것은 나름의 뜻이 있겠지만, 불행히도 이 광장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도시 속 콘크리트 사막이었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불게 하고, 따가운 여름에는 도시의 열섬을 조장하는 땅이었다.     

이 관심 받지 못하던 광장이 6년 전 콘크리트를 들어내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환경부의 자연공원 사업으로 무늬만 공원이 아니라 토양과 물 빠짐 등을 개선해 생태 공간에 가까워지게 했다.

정부청사가 생기기 전에 논 습지였기 때문일까. 조성한 물가에 유독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용버들 노거수(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가 있다. 잎을 피워 새 터에 적응하고자 어르신이 안간힘을 내는 듯하다.    
 

정부대전청사 자연마당 소생물서식습지에 다수의 버드나무 노거수가 죽어있다. ⓒ 최수경

 
어르신 용버들은 애당초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날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어느 늪가나 하천에서 영겁의 세월을 살다 왔을 것이다. 보통 습지를 개발할 때 버드나무는 굴착기로 뚝 떠서 요절내기 일쑤인데 다행히도 이 나무는 세월의 무게가 무서웠는지, 내놓으면 제 얼굴값을 할 거라 여겼는지 예까지 붙들려 왔다.

그러나 6년이 지난 현재 다른 버드나무 노거수들과 마찬가지로 잎을 틔우지 못하고 말라 버섯이 잔뜩 붙어 있다.
   

정부대전청사 조성습지의 버드나무 노거수. 언제까지 이 주검을 방치할 것인가. ⓒ 최수경

 
최근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공원뿐만 아니라 새로 짓는 대단위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는 으레 오래된 나무를 옮겨 심는다. 다행히 잘만 활착(옮겨 심거나 접목한 식물이 뿌리를 내려서 삶)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상실한 고향을 떠올리게 해 정겹다. 오래된 나무가 주는 시간의 가르침, 일관된 생명력과 역사성은 공원과 아파트가 채우지 못한 품격을 채워준다.
 

익산시 서동공원의 느티나무 노거수. 가지의 상당부분이 잘린 채 식재되었다. ⓒ 최수경

 
이렇게 어르신 모시기에 열을 올리지만 입주하는 노거수들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먼 길 오느라 팔목, 관절, 손가락이 다 잘렸다. 몸뚱이를 버텨줄 만한 팔다리가 간신히 나무의 체면을 세워준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비참한 몰골로 낯선 곳에 마네킹처럼 서 있다.
 

세종시 첫마을 아파트 인근 노거수. 활착을 못하고 이내 사라졌다. ⓒ 최수경

   
세종시에 처음 지어진 첫마을아파트에도 원주민 격인 노거수가 입주했다. 3m 높이로 흙을 덮어 이식한 노거수다 보니 한 곳의 가지에서만 간신히 새잎이 돋아났다. 과연 잘 살 수 있으려나 염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이식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종시 방축천의 버드나무 노거수 세그루 세종시 옛터를 지키고 있는 고향을 알리는 이정표 ⓒ 최수경

 
반면 세종시 정부청사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방축천의 국가보훈처 건물 인근에는 2백 년 된 버드나무 세 그루가 하천 안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방축천 조성공사 과정에서 LH가 베어버리려 했지만 조경을 전공한 담당자가 오래된 나무 베는 것은 못 할 짓이라며 막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라질 위기에 있던 나무였지만 극진히 수술까지 해서 춤추는 듯한 아름다운 버드나무로 다시 태어났다. 

한 번은 점심 식사를 마친 공무원과 회사원들이 커피 한 잔씩 뽑아 버드나무 그늘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보았다. 시민들이 세종시에도 과거가 숨 쉬고 있음을 알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했듯이 방축천 버드나무가 있는 공간은 지역의 역사를 껴안고 현재까지 연속되는 자생적 생태 공간이자 고향의 단면이다.
  

대전엑스포를 개최하며 식재한 플라타너스가 아름다운 길을 만들었다. 도로확장 공사로 플라타너스는 사라졌다. ⓒ 최수경

   

대전엑스포공원 뒷길. 도로 확장으로 플라타너스 거리가 사라졌다. ⓒ 최수경

   
가로수의 비극도 현재 진행형이다.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 당시 조성된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있었다. 그런데 25년을 살아온 나무의 거리를 홀랑 밀어내고 자동차 길을 넓혔다.
 

대전-금산 옛 국도의 플라타너스 거리. 10km에 이르는 플라타너스 거리는 아름다운 거리로 지정되었다. ⓒ 최수경

   

대전- 금산 간 옛 도로의 플라타너스 거리. 과도하게 성형된 나무의 모습에서 고통이 전이되는 듯하다. ⓒ 최수경


대전에서 금산으로 가던 옛 거리. 지금은 더 빠른 도로가 생겨 차가 드물지만, 플라타너스가 지붕을 만드는 거리다. 아름다운 거리 숲에 선정되었지만 그 아름다운 녹음 터널을 위해 과도하게 성형 당하는 나무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천의 포플러나무. 큰 나무는 하천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 최수경

    

광고판을 가리지도, 낙엽이 쓰레기가 되지도, 전깃줄을 가리지도 않는 곳에 있건만 하천에 유일한 그늘이 될 수 있는 나무마저 가차 없이 가지치기한다. ⓒ 최수경

 

청주교육대학교 정문의 플라타너스 나무. 청주 지역의 플라타너스 길들은 유명한데 이는 지역의 자긍심으로 작용한다. ⓒ 최수경

 
나무들은 이웃 나무의 가지 끝과 맞닿는 곳까지만 뻗는다. 그 이상 자라면 서로 맞닿아 빛을 쬘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무도 인간처럼 살기 위해 경쟁한다고 인간은 착각한다. 그러나 나무는 함께 해야 유리하다는 사실을 안다. 상리공생하는 것이다.

사람만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도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이 있다. 균류 하나가 수 제곱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 다른 나무에 신호를 전달하고, 나무들은 그 덕분에 곤충이나 가뭄, 기타 위험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처음부터 친구인 이들은 상대의 방향으로 굵은 나뭇가지가 지나치게 자라지 않도록 조심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네카어강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람 키 높이에서만 가지치기를 했다. ⓒ 최수경

 
하이델베르크 네카어강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보면, 심미안이 돋보인다. 간판 높이가 아닌 사람 키 높이에서만 가지치기를 했다. 2층, 3층 상가 광고판 가린다고 죽이고, 까치집 짓는다고 자르고, 전선 부딪힌다고 가지 치는 우리의 가로수 정책과 대조된다. 지역 특유의 가로수 풍경은 인간을 공생과 상생의 파트너로 연대하게 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네카어강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가로수는 인간을 공생과 상생의 파트너로 연대하게 한다. ⓒ 최수경

 
과도한 가지치기는 나무가 탄소를 들이마셔 토양 속 깊은 곳에 격리할 기회를 박탈하며 건강하고 친밀하게 협력하고자 하는 나무 사이의 대화를 방해한다.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범지구적 노력에도 역행한다.
 

잎이 한창 돋아나는 시기(2016년 4월 18일)에 상점의 간판을 가린다고 댕강 잘라냈다. 일산 백석역 인근. ⓒ 최수경


  

장수군 계남면 마을숲의 노거수 방풍림이 발달한 장수는 마을숲의 나무를 주민들이 보호 관리하고 있다. ⓒ 최수경


나무의 공생은 호혜에서 비롯한다. 인간도 나무의 삶과 다를 바 없이 이 어려운 기후위기의 시대를 공생해 타개해야 하지 않나. 이 시대 마음이 빈곤한 이유는 우리에게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어르신 나무는 말의 가르침이 아니어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스스로 깨우치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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