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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 줄이고 녹봉 후하게 - 후록론(厚祿論)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43회] "충신한 사람에게 녹을 후하게 함은 선비를 권장하는 때문이다."

등록 2021.04.13 18:01수정 2021.04.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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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충신한 사람에게 녹을 후하게 함은 선비를 권장하는 때문이다."

하였다. 그 말에는 깊은 뜻이 있다. 남의 윗사람으로 된 자가 아랫사람에게 녹을 후하게 주지 않으면, 선비로 된 자가 무엇에 권장되어서 염치를 길러서 이욕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가는 일이 없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옛날 군자(君子)로서 나라에 벼슬한 자는 녹이 그 욕구를 이바지하기에 족하며, 봉급이 처자를 비호(庇護)하기에 족했다. 그리하여 백성과 더불어 이(利)를 다투지 않고, 뇌물을 부리지 않아도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거느리기에 또한 유족하였다.

한가롭고 편하게 있으면서 그 포부를 필 수가 있어, 공 없이 녹을 먹는다는 나무람을 면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염치가 확립되어서 풍교(風敎)가 도타워졌는데, 옛날 훌륭했던 세대(世代)는 대개 이 법을 썼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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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초당마을숲' 허난설헌·허균 생가터 ⓒ 신한슬

 
역대로 다스리고 개혁한 것이 같지는 않았으나 녹을 후하게 해서 선비를 권장한 것은 같았다. 

지금 우리나라는, 녹을 절감하면서 청렴하기만 요구하는데 천하에 이런 이치는 없다. 신라 때에 1품이 받던 녹은 1년에 400석이었고, 왕씨(王氏) 때는 그 반으로 했는데, 대개 동경(東京)에 벼슬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우리나라에 와서 벼슬이 세 곱절로 불어나서는 녹을 깎지 않을 수가 없었다. 3분의 2를 깎으니 녹봉이 모자라서 선비마다 섬기고 기르기에 곤란하다. 청렴할 겨를이 없음도 당연하다.

난리 후에 달마다 주던 요(料)를 다시 녹으로 만들게 되어서는 또 예전보다 반을 줄였고, 말(斗) 수도 깎으니 받는 자가 능히 열흘도 지탱하지 못한다. 그 제사를 받드는 규모와, 산 사람을 봉양하며 죽은 이를 송장(送葬)하는 제구는 평시보다 줄인 것이 없고, 의복은 빛나게, 말(馬) 꾸밈은 훌륭하게, 음식은 사치하게 해서 존절하지 않음은 조종(祖宗) 때보다 열 곱절이나 심하다. 


그리하여 할 수가 없으니 소민(小民)과 이(利)를 다투고, 또 부득이해서는 뇌물을 받는다. 이러므로 4유(維)가 펼쳐지지 못하고, 풍교가 날로 더러워진다. 그렇지만 사부(士夫)는 태평하게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백성은 윗사람들 두려워하지 않는다.

뇌물을 주고서 벼슬을 얻기도 하고, 죄를 너그럽게 한 자가 발굽을 거루는데, 이것은 모두 선비를 권장하는 방법을 시행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 또한 슬픈 일이다. 그런즉 어찌하면 구제할 수 있을까. 긴치 않은 관직에 허비되는 것을 줄이고 윗사람이 공검(恭儉)함으로써 인도하면 이에 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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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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