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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잘못 없어요" 이 말이 거북한 이유

[주장] 내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 모든 걸 부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21.03.22 13:15최종업데이트21.03.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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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잘못 없어요'

맞는 말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으며, 그동안도 보고 자라고 키워온 사람이 부모인데 아이와 부모 사이에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부모 때문 아닌가.

결혼 전에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육아정보 프로그램들을 즐겨봤다.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단 시간에 바뀔 수가 있는지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아이가 문제가 큰 만큼, 혹은 안쓰러운 만큼 그간 잘못 키운 것 같은 부모를 나도 모르게 탓하게 되곤 했다. 

원래도 나는 정보 전달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자기 계발서도 좋아하기에 아이를 낳기 전후로 도서관과 서점에 다니며 육아 관련 책들을 읽고 유튜브로 영상을 구독하며 즐겨봤다. 지금도 물론 육아에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본다. 하지만 최근 아이와 가정의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을 돕는 프로그램을 보며 왠지 모를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아이를 키우다가 너무 힘들어 주변에 털어놓으면 "그 육아 프로그램 참고해봐", "아이가 왜 그러는지 잘 살펴봐. 다 이유가 있더라"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해결책을 찾아주려는 마음이 고맙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스스로도 정보를 많이 알아보는 편이고, 나름 정보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육아는 정보대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자격증 시험 같은 게 아니다. 아이는 자주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육아는 쉽게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부모에겐 모든 책임감이 지워진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생명을 세상의 모든 위험한 가능성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야 하고, 영양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건강하게 키워야 하며, 어느 시기부터는 한 사람으로서의 인성도, 미래를 위한 교육도 책임져야 한다.

최근 횡단보도나 주차장에서 어린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댓글에는 항상 엄마를 탓하는 의견을 볼 수 있다.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왜 동행하지 않았느냐고, 왜 한눈을 팔았느냐고.

자기 자식인데 누구보다 열심으로 챙기지 않았을까. 엄마도 사람인데 잠시 실수를 할 수 있지 않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찰나의 사고인 일들에도 엄마에 대한 사회적 잣대는 엄격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식당에서 울거나 떠들어도 당연히 엄마 탓이다. 많이 우는 아이를 둔 엄마로서 아이를 안고 식당 밖으로 튀어나온 적이 몇 번인지. 이 모든 것에 엄마 탓이 아예 없다는 게 아니다.

한 뱃속에서 여러 아이를 낳아도 모두 천차만별이라고들 한다. 비교적 통제하기 쉬운 아이도 있고, 정말 어려운 아이도 있다. 첫째를 낳고 키울 만하다 느껴서 둘째를 낳았는데 배신당한 것 같다는 말도 주변 두 부부에게 들었다.

아이의 성향을 잘 살펴보고 맞춰주라는 조언들을 많이 하지만, 엄마와 아빠 역시도 성향이란 게 있다. 내 배에서 낳았어도 똑같이 사람 대 사람의 일이다. 엄마와 아이가 성격이 정말 안 맞을 수 있다. 서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하거나 자주 부딪히거나, 해결하려 해도 서운함만 쌓일 수 있다. 아이의 에너지를 엄마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으며, 엄마의 기대와 노력에 비해 아이가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잦다.

어른으로서, 양육의 책임을 가진 부모로서 관계 문제에 대해 부모가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감이 당연하지만, '아이의 문제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는 말은 지양하면 좋겠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져버린 부모 같지도 않은 모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부모와 자식 사이는 여느 평범한 인간관계 속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 무조건 부모탓을 하도록 부추기는 분위기는 자제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며 힘이 들 때, 동시에 주변의 눈치까지 보지 않도록, 불운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미 가장 힘든 부모의 마음에 더 큰 짐을 주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를 탓하기 전에 한 아이를 더욱 안전하고 바르게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먼저 구축할 수 있도록, 부모를 향한 비판의 칼날보다 따뜻한 관심을 주는 이웃들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육아 TV 자녀문제 부모 육아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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