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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대박' 꿈꾸며 지른 사람들, 이렇게 당했다

[진화하는 코인 사기 ①] 고전적인 방식부터 신종 수법까지... 투자자 울리는 코인 다단계

등록 2021.04.14 11:49수정 2021.04.1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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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들썩이면서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투자 열풍이 거세지는 만큼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를 노리는 사기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세 차례에 걸처 조명해 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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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코인 사기업체 "먹튀" ⓒ 고정미

 
코인을 사서 전자지갑에 넣어두기만 해도 매일 원금의 1~10%에 해당하는 수익이 나온다고 했다. 100만원을 넣었다고 가정하면 빠르면 10일, 늦어도 100일 내에 원금이 200만원으로 불어나는 구조였다. 너무나 높은 수익률에 사기를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 가지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에게 코인 투자를 권한 사람은 각종 투자에 능한 지인이었다. 지난 2017년은 코인 투자 광풍의 시대이기도 했다. 어딜 가도 암호화폐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지인은 "몇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비트코인의 가치도 한때는 몇십 원이었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그 말은 머지않아 퇴직을 앞두고 있던 그의 헛된 희망에 불을 지폈다. 돈을 계좌에 넣은 후 실제로 수익금이 돌아오자 그의 투자는 점차 과감해졌다.

대박의 꿈이 물거품이 된 건 순식간이었다. 어느 날 회사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며칠동안 코인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로그인이 되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로 연락한 뒤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제야 다단계 금융사기를 당했음을 눈치챘지만 이미 큰돈을 잃고 난 후였다. 신종 다단계 코인 사기로 2억 원여의 피해를 입은 60대 이형걸(가명)씨의 이야기다.

다단계 코인 사기, 어떻게 빠져드나

최근 암호화폐를 앞세운 신종 다단계 코인 사기가 극성이다. 지난 2017년에 이어 비트코인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암호화폐 2차 붐'이 일면서, 감언이설로 투자자들을 속여 그들의 여유 자금이나 퇴직금을 가로채려는 이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투자자를 현혹하기 위해 내세우는 사업 내용도 다양하다. 회사가 발행한 코인만큼 남미에서 금을 채굴해 가상화폐계의 '금본위제'를 실현하겠다거나, 시중의 모든 상품에 큐알(QR)코드를 붙여 자사 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식이다. 회사가 원금과 함께 보장하겠다는 수익률은 '초대박' 수준을 넘어선다. 120일간 돈을 넣어두면 하루에 1%씩 총 120% 불려주겠다거나 600만원을 투자해 1년을 묵히면 3배로 돌려주겠다는 이들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몇 년 간 다단계 코인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6명을 만났다. 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종 다단계 코인 사기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 것일까? 추가로 투자자를 끌여들여야 유지되는 다단계의 특성상 대부분 '지인'의 권유가 사기 피해의 시작이었다. 이형걸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 다른 투자를 하면서 돈을 까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인이 '퓨처넷'을 해보라고, 돈벌이가 괜찮다고 했어요. 자기는 4개월 만에 5000만원을 벌었대요. 암호화폐 투자는 50달러 단위로 할 수 있었는데, 매일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 투자금에 비례한 배당금을 암호화폐로 준다고 하더라고요."

다단계 코인 사기에서 암호화폐로 투자를 받고 수익금을 다시 암호화폐로 돌려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현행법상 금지된 유사수신행위는 '인허가를 받지 않고 원금 보장 및 고수익을 약속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투자금은 법정화폐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를 통한 투자가 유사수신인지 여부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결국 암호화폐로 투자금을 모으고 수익도 암호화폐로 돌려주는 건 처벌을 피해 보려는 일종의 '꼼수'다.

넣어두면 10% 불어난다... 신종 사기 '코인 스테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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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후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전광판에 표기된 비트코인 가격. ⓒ 연합뉴스


사실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사기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최근에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코인 스테이킹' 방식을 모방한 신종 사기 수법도 등장했다.

'스테이킹'이란 정해진 기간에 특정 암호화폐를 일정량 사두는 행위를 말한다. 기간을 정해 돈을 넣어두면 정해진 이율 만큼 수익을 돌려주는 은행의 예적금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스테이킹은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데, 암호화폐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매일 하루치 이율에 해당하는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받는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수익 구조 속에 '다단계'가 섞여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지인을 끌어들였을 때 보상금이 점차 커지는 식이라면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다단계 특성상, 초기에 들어가 피라미드 상단에 위치한 이들은 실제로 수익을 볼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사업을 '진짜'라고 믿으며 지인을 설득해 잘못된 투자의 길로 인도한다. 가족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

"엄마는 지난해 7~8월쯤 친한 아주머니에게 한 암호화폐 거래소를 소개받았다고 했어요. 이 거래소가 발행한 암호화폐에 600만원 단위로 '스테이킹'을 하면 1년 동안 3배로 불려 준다고 했대요. 또 자신이 소개한 지인이 600만원을 투자할 때마다 20%에 해당하는 120만원이 떨어졌고요. 수익금은 암호화폐로 돌려줬어요. 정말로 돈을 버니까, 엄마는 아빠와 제게 같이 투자하자고 했어요. 전 듣자마자 사기 같아 말려도 봤지만 듣질 않으셔서 아직까지 말다툼을 해요." 유정훈(20대, 가명, 피해자의 아들)

뿐만 아니라 업체 쪽은 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해 그야말로 '작정하고' 달려든다. 다른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거나 유명 호텔의 대규모 행사장을 섭외해 사업 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또 각종 언론사에 돈을 주고 기사를 싣고 국내 유명인사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것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막상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면 모든 건 정황뿐이거나 거짓말에 불과했다.

일부 업체는 암호화폐가 주로 해외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을 감안해 이름 모를 외국인을 투자 설명회에 초청해 연설을 맡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회사 대표가 외국인일 경우 텔레그램 내 공식 채팅방을 열고, 투자자들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며 소통했다.

"지난해 5월에 '투자 세미나'를 열었을 때 정세균 국무총리가 보내온 꽃이 전시돼 있었거든요. 나중에 총리실에 확인해보니 안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이준환(50대, 가명)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의 '국내판'을 만들어보겠다며 탄생한 K모 업체의 K 코인을 지난해 몇백 만원어치 사들였어요. 일단 목적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설명회에 참석했을 때, 공기청정기 사업을 하고 있다던 중소기업 경영진 부부 내외가 나와 'K모 업체는 진짜'라고 호언장담을 했고요. 그래서 믿었는데..." 이미연(40대, 가명)


먹튀의 전조

하지만 다단계 코인 사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피라미드 구조 아래로 유입되는 회원 수가 점차 줄어들면 업체는 '먹튀'를 준비한다.  

"피라미드 상위에 있는, 이른 바 A그룹은 실제로 돈을 버니까 B그룹에게 투자를 권유해요. B그룹은 그 말을 믿고 A그룹보다 돈을 더 많이 넣어요. 그런 식으로 C그룹, D그룹, E그룹까지 늘어나요. 그렇게 6개월에서 1~2년이 지속될까요. 점점 들어오는 사람이 줄어들어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라 마름모꼴로 변해요. 그 꺾이는 순간에 개발자들은 소위 '젓갈을 담글'(도망치다라는 뜻의 다단계식 은어) 궁리를 해요." 이형걸(60대, 가명)

다단계 사기 업체의 '먹튀'에는 전조 증상이 있다. 앱이나 자체 홈페이지 시스템을 업데이트한다면서 며칠 인출을 제한하거나 전자지갑에 갖고 있던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출금 신청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식이다. 업체가 벌이는 '파격 이벤트' 역시 좋은 징조가 아니다. 거치금의 10~20%에 달하는 하루 수익을 내걸어 마지막 투자자를 모집하려는 속셈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앱이나 홈페이지 로그인이 제한된다. 보유한 코인이 표시되던 전자지갑 속 숫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제가 투자한 ㅅ코인은 막판에 사이트를 업데이트를 한다고 10일이나 20일 가량 잠가뒀어요. 처음에 투자를 하면, 투자자들끼리 그룹 카카오톡방을 만들거든요. 그 방 안에 상위 모집책들도 있어요. 그들이 문제라고 봐요. 사이트가 잠겨도 '지금까지 잘해오지 않았냐'면서 기다려보자고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설마' 하는 마음에 기다려요. 그동안 회사는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요." 김연수(40대, 가명)

"시간이 지나도 회사 사업에 진전이 없어서 몇백 명 있는 카카오톡방에서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놨어요. 그러니까 방에서 강퇴를 당했어요. 지금은 카카오톡방 자체가 폐쇄된 상태고요. 게다가 원래는 하이코인 앱 내 전자지갑에 제가 가진 코인에 해당하는 금액이 숫자로 적혀 있었는데 지금은 숫자 자체가 사라졌어요. 사기당한 걸 알고 피해자 모임도 꾸렸는데 1억원 넘게 투자했다고, 자살할 거라고 하소연하는 분도 있었어요." 이준환(50대, 가명)


남는 건 피해자들끼리의 다툼

다단계 업체의 '머리'가 잠적하고 나면 법정 공방에 시달리는 건 정작 지인에게 처음 투자를 권했던 상위 그룹 투자자, 이른 바 모집책들이다. 투자 과정에서 돈을 벌었다 해도 정작 자신이 투자를 권유했던 피해자들에게 돈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경우도 많다.

"2억여원의 사기 피해를 보고, 저를 이 업체에 투자하게 한 모집책에게 책임지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나도 피해자'라고 해요. 정작 저는 지인들로부터 고소당할 위기였고요. 제가 공무원이라 고소를 당하면 곤란한 처지거든요. 지인들이 '투자금 절반만 주면 고소는 안 하겠다'고 해서 물어주고 작은 평수로 집을 옮겨 겨우 빚을 갚았어요. 스트레스로 병을 달고 살았어요." 이형걸(60대, 가명) 

안세훈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최근 다단계 코인 사기로 피해를 호소하며 연락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라며 "피해자의 아들·딸이거나 중간 모집책으로 몰려 고소를 당한 경우"라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머리'는 이미 잠적해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수백 명 대 피해자들은 신변을 확보할 수 있는 모집책들에 소송을 건다"고 설명했다.

안 변호사는 "사기 업체라 하더라도 번듯하게 법인을 내고 모든 조직을 구축해 덤벼들기 때문에 사기 사건이 한 번 벌어지면 수백 명대 피해자들이 생겨난다"며 "코인에 투자하기만 하면 자금이 몇십 배로 늘어난다는 말에 혹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곳에 투자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다단계 #코인사기 #코인 #스테이킹 #다단계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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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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