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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의 90% 분양? 무주택자들 불같이 분노한 이유

[주장] 이미 180%로 올랐건만... 누굴 위한 정책인가

등록 2021.03.19 07:24수정 2021.03.1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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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회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 한 달여 만에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을 발표하면서 '새 아파트의 분양가를 산정할 때 주변 시세의 90%를 상한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들은 무주택자들은 불같이 분노했다.

회원 대부분이 무주택자인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은 분노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지난 2월 18일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변창흠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시세 90% 분양가'를 "무주택 국민의 한 가닥 희망! 분양이라도 받아보자는 그 희망마저 철저히 짓밟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KB국민은행 리브온 통계에 의하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17년 5월 6억 700만 원에서 2021년 2월 10억 8200만 원으로 올랐다. 문재인 정부 3년 9개월간 무려 78%나 폭등한 것이다.

서울시민의 절반이 넘는 무주택 가구 중 10억 원 넘는 아파트를 구입할 여력이 있는 가구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수 없게 된 무주택 가구는 분양으로 눈을 돌렸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매매가격보다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분양 받을 수 있기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변창흠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분양가를 주변시세의 90%까지 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정했으니, 무주택 가구의 절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것은 당연하다.

흥미로운 것은 언론의 보도다. 상당수 언론이 변창흠 장관의 분양가 상향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근거로 "시장원리"를 들었다. 어느 보수신문은 "분양가상한제가 시장 메커니즘을 교란했다"며, 이로 인해 건설사들의 "수익성 저하로 신규 공급이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그 신문은 국토부의 이번 결정으로 분양가를 시세에 맞게 올릴 수 있게 되었다면서 환영했다.

실수요자 입장 vs 건설회사 입장

분양가는 아파트 가격 중 하나다. 매매가격이 기존의 아파트를 사고파는 가격이라면, 분양가는 새로 건설된 아파트를 처음 거래하는 가격이다. 최초로 형성되는 가격이므로 '어떤 기준'을 근거로 산정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방법은 건설 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다. 건설 원가에 적정이윤을 더해 분양가를 결정하면, 지금처럼 집값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분양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이런 방식을 택함으로써 실수요자에게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공급하려는 취지였다.

공급자인 건설회사도 적정이윤이 보장되므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설회사가 적정이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시장 메커니즘"을 내세워 3년 9개월간 78%나 폭등한 매매가격만큼 분양가를 올림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실수요자와 건설회사 중 어느 쪽의 입장을 선택할지는 정부의 몫이다. 분양가상한제의 본래 취지를 지켜서 낮은 분양가를 유지할지, 아니면 건설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폭등한 매매가격만큼 분양가를 상향할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변 장관은 분양가를 시세의 90%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건설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변 장관의 이런 행태를 맹비난했다.

"집값과 전월세 폭등으로 하루하루 숨쉬기도 힘든 국민은 국토부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변창흠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건설업계, 주택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무주택 가구는 죽을 때까지 무주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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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국토부는 이번 결정이 분양가를 올리는 조치가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그러나 분양가를 낮게 유지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상한선을 주변시세의 75%로 하겠다고 발표하면 된다. 이런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국토부의 의중에 무주택 실수요자보다 건설회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건설업계의 요구를 수용한 "시세의 90% 분양가" 결정이 실수요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위의 기자회견문은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4년 동안 서울아파트 가격을 80% 폭등시켰다. 정권 초기 시세의 180%인 현 시세의 90%까지 고분양을 허용하면, 문재인 정부 이전보다 60% 오른 가격으로 분양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4년 만에 60% 오른 가격으로 분양가가 책정되면, 무주택 가구 중 이 가격에 분양을 받을 여력이 있는 가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민의 절반이 넘는 무주택 가구는 죽을 때까지 무주택으로 살아야 한다.

소위 시장 메커니즘을 지키면서 분양가를 낮출 방법은 있다. 폭등한 집값을 4년 전 가격으로 하락시키면 분양가는 지금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집값을 폭등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분양가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규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정부 규제는 대부분의 경우 부작용을 수반한다. 분양가 규제의 부작용은 건설회사의 신규 공급 지연이다.

그러나 정부가 분양가를 낮게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면, 주택 공급이 본업이자 주 수익원인 건설회사들이 주택 공급을 마냥 지연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분양가상한제의 취지를 지키더라도 건설회사는 "적정이윤"을 보장받는 것 아닌가.

'공급 확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첫 2년간 서울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여 급등한 서울 집값을 원상회복시키겠다는 목적이었다. 올해 2.4대책은 도심에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이 대책의 목적도 폭등한 서울 집값을 정상 수준으로 하향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신규 공급되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폭등한 가격의 90%에서 결정되면, 집값은 폭등한 가격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무주택 가구들이 기대한 것은 단지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정부가 분양가를 낮게 유지하여 집값 하락을 유도할 의지가 있다면, 분양가상한제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특히 감정평가를 통해 택지비를 산정함으로써 폭등한 집값과 그에 따른 토지가격 상승을 분양가에 반영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공급자인 건설회사의 분양 원가는 토지의 감정평가액이 아니라 토지조성 원가 혹은 건설회사의 토지구입가다. 이 토지조성원가를 기준으로 분양 원가를 산정하면, 폭등한 집값과 관계없이 분양가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분양가 상한을 주변시세의 75%로 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도입함으로써 "분양이라도 받아보자"는 무주택 가구의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시세 90% 분양가" 결정은 4년간 폭등한 집값을 분양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무주택 가구의 기대를 저버리고 건설회사의 입장을 위하는 결정이다. 분양가상한제의 도입 취지는 주택의 공공재적 성격을 고려하여, 원가를 토대로 분양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평가를 통해 토지가를 산정함으로써 집값과 토지가의 폭등이 분양가에 반영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의 집값 안정의 의지가 강하다면 분양가를 낮게 산정하여 무주택 가구의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분양가 상향 #분양가상한제 #무주택자 #주택공급 #3기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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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균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집없는 사람과 청년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기는 집값 폭등을 해결하기 위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에서 무주택 국민과 함께 집값하락 정책의 시행을 위한 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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