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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아닌 도롱뇽의 계시? 대책 없는 위조사건의 전말

[다큐멘터리에 들어서면] 넷플릭스 <모르몬교 살인사건(Murder among the Mormons)>

21.03.17 15:45최종업데이트21.03.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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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모르몬교 살인사건>은 그로테스크한 살인사건을 다룬다. 살해당할 사람이 누가 될지를 신의 섭리(?)에 맡겼었노라 자백하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살인자의 행동 및 동기가 이 다큐에 담겨있다.

이 영화는 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에피소드는 60분을 넘지 않는다(1편은 45분,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괴상한 살인사건의 내막은 미국에서 2004년에 방영된 수사드라마 <로앤오더: 크리미널 인텐트(Law & Order: Criminal Intent)> 시즌3 에피소드16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 영화 포스터 <모르몬교 살인사건> ⓒ 넷플릭스

 
모르몬교가 '종교적 유물(보물)'을 수집하다
 
1985년 10월 15일 오전,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폭탄살인사건 두 건이 발생했다. 폭탄이 설치된 상자를 집어든 두 사람이 각각 그 자리에서 죽었다. 바로 이튿날 한 자동차에서 폭탄이 또 터졌다. 마크 호프만(Mark Hofmann)이라는 사람이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 폭탄의 피해자 3명은 모두 모르몬교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르몬교는 19세기 초반 조셉 스미스(Joseph Smith Jr.)에 의해 창시되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약칭 LDS)'라는 정식명칭을 갖고 있다. 모르몬교는 성경 외에도 모르몬경이라는 경전을 사용하며, 이 종교에 입교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모르몬'으로 호칭한다. 모르몬교의 창시자 스미스는 1829년 어느 날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인도로 황금 판에 새겨진 책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모르몬경이다. 모르몬교도들의 신앙은 모르몬경과 스미스를 둘러싼 신비로운 계시와 신탁의 역사를 신앙하는 것에 기초해있다. 그러므로 모르몬교 안에서는 모르몬교의 신비로운 초기역사를 입증할 만한 당대의 문서(일기, 편지, 계시록 등)가 매우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 모르몬교 초기역사의 거룩한 신비를 보여주는 문서를 발견하면, 전문가들이 진위를 감정하고, 감정결과 진품으로 판명이 나면, 발견자는 그것을 모르몬교 본부에 기증했다. 어쩌다 종교적 보물이 모르몬교도가 아닌 희귀유물 수집가의 수중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부유한 모르몬교도가 나서서 거금을 주고 매입해 종교본부에 위탁하는 절차를 밟기도 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에서 모르몬교가 성장하면서 모르몬교도들 사이에는 종교적 보물이 거래(?)되는 일들이 꽤 빈번했다.
 
모르몬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십대 청년 호프만은 1980년 이후 몇 년 동안 꾸준히 모르몬교 초기 역사문서들을 수집해 모르몬교도들 사이에 거래를 성사시키곤 했다. 그중에 일명 '흰 도롱뇽 편지'라는 것이 있었다. 초기 모르몬교 주요인사였던 마틴 해리스(Martin Harris)가 쓴 편지였는데 여기에는 모르몬교의 근간을 뒤흔들 위험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조셉 스미스가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인도가 아니라 흰 도롱뇽의 인도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편지는 모르몬교의 창시자이자 신탁 예언자 스미스를 '동물 다루는 서커스 곡예사'쯤으로 보이게 할 우려가 없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모르몬교의 이미지는 급격히 실추됐다. 모르몬교 본부는 이 사태를 추스르느라 큰 어려움을 겪었다.  

가까스로 사태가 좀 누그러지는가 싶은 와중에, 호프만이 '매클렐린(McLellin) 컬렉션'을 입수했다는 소문이 수집가들 사이에 돌았다. 게다가 이 컬렉션엔 '흰 도롱뇽 편지' 저리가라 할 만큼 모르몬교를 위태롭게 할 내용이 담겨있다는 정보가 흉흉하게 나돌았다. 모르몬교 본부는 '흰 도롱뇽 편지'의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터인데, 그것을 능가하는 불경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모르몬교 본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본부가 직접 나서서 호프만과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르몬교도였던 크리스텐슨은 매클렐린 컬렉션을 손에 넣고자 적극 노력을 기울였다. 어쩌면 크리스텐슨은 그 컬렉션을 건네받아 모르몬교 본부에 위탁 혹은 기증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가 첫 번째 폭탄사고의 피해자였다.  
 
'신앙'마저 위조하려 하다
 

▲ 영화 스틸컷 <모르몬교 살인사건> 당시 뉴스 화면. ⓒ 넷플릭스

 
수사팀은 매클렐린 컬렉션을 둘러싼 정보공유와 실물거래가 폭탄살인의 동기라는 것을 알아냈다. 수사팀은 컬렉션→폭탄살인→희귀문서 수집의 삼중관계를 면밀히 추적했고 마침내 범인을 잡아냈다. 범인은 세 번째 폭탄사고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호프만이었다. 체포된 호프만은 순순히 살인을 자백했다.
 
뜻밖에도 호프만의 자백에는 놀라운 내용들이 더 들어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 희귀동전들을 위조해서 한 번도 들키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의 위조실력은 일취월장했고 그는 누구의 필체든 똑같이 써낼 수 있었다.

또 종이와 잉크도 진품 못지않게 화학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의 물리적·화학적 위조기술은 필적전문가와 고문서분석전문가 모두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완벽했다. 만일 폭탄사고가 없었더라면, 호프만에게서 모르몬교 본부로 건너간 수십 건의 문서들에 대한 진위여부는 검토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년간 자잘한 문서들을 위조해 팔아넘기면서 각종 희귀문서 수집가와 모르몬교도들로부터 돈을 받아냈지만 호프만이 폭탄사고를 일으킬 무렵엔, 돈이 몹시 궁한 상태였다고 한다. 씀씀이가 헤퍼 수입이 지출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그는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모르몬경 116쪽 위조작업을 기획했다.

그런데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었다. 크리스텐슨과 현재 진행하고 있는 매클렐린 컬렉션 거래를 무사히 성사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거래는 순조롭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크리스텐슨이 합리적 의심을 품었던 것 같다. 결국 호프만은 누군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호프만은 폭탄을 세 개 만들어 각각 상자에 싸서 하나는 크리스텐슨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텐슨의 과거 동업자 집에 놓았다. 그 상자를 집어드는 사람의 손에서 폭탄이 터지게끔 설계했다. 그런데 사실상 이 폭탄상자들은 사무질 직원, 가족, 지나가는 누군가가 집어들 수 있는 곳에 놓여있었다.

호프만은 그에 대하여 천연덕스럽게 "신의 섭리에 맡겼다"고 응답했다. 누구든 죽을 사람이 죽게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폭탄은 자기의 차에서 터졌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자살하려 했다고 답했다. 어쨌든 현재 호프만은 종신형을 받아 감옥에서 살고 있다. 한 번 자살기도를 했으나 살아났다.
 
<모르몬교 살인사건>이 보여주는 바, 호프만의 위조작업은 가히 '신(神) 놀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모르몬교 역사를 가감삭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사람들이 속아 넘어갈 때 힘과 우월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호프만은 아내, 친구, 동업자, 전문가들을 속였다. 진품에 대한 소유욕을 품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게다가 폭탄살인에 '신의 섭리'를 갖다 붙이며 자기자신을 신앙인으로 위조(위장)하기까지 했다. 모르몬교 모태신앙인이었지만 14살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청년기에 반모르몬교 성향의 출판물들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던 전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깜빡 속아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몬교 살인사건>은 호프만이 위조한 희귀문서들이 버젓이 '진품' 판정을 받고 거래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주요 박물관과 개인수집가들의 금고에 소장돼 있을지  추산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당시 호프만 수사를 맡았던 검사 중 한 사람은 말한다. 희귀한 '어떤 것'을 가운데 두고 인간의 속이려는 욕구와 소유하려는 욕구가 만나면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모르몬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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