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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빠진 구명보트... 서울시장은 누굴 구하겠습니까

[이런 시장을 원한다!] 승리 위한 정책 아닌 '기본소득'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등록 2021.03.05 08:07수정 2021.03.0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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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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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나흘 만에 다시 400명대로 올라선 3일 서울 중구 서울역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하여 코로나로 끝났다. 2020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는 코로나 바이러스였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기존에 상상해보지 못할 방안으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차단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고 마침내 세계가 팬데믹을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은 극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전 세계의 사람이 난데없이 전염병이라는 바다 위에 바람이 빠지고 있는 구명보트에 탄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수많은 실업자와 닫힌 공장, 경기 침체를 극복할 방안이 필요했다.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부족한 임금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식의 지원 체계나 유급휴가 의무 사용에 대한 정책이 진행되었다. 한국도 지난 2020년 5월 제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작으로 가계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의 정책이 시행되었다. 코로나가 국경도, 인종도, 가난도, 장애 여부도 상관없이 모두를 덮쳤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선별복지보다 보편복지가 옹호되던 시기였다.

그때 한 가지의 정책이 사회적으로 부상했다. '기본소득'이었다. 기본소득이 대안인지, 온 국민 고용보험이 대안인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었고,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논쟁이 거세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미래통합당(현재 국민의힘)에서는 아주 파격적이게도 기본소득을 10대 정강 정책 중 '첫 번째'로 꼽기도 했다.

물론 여러 정치 세력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 세계적으로 인정된 몇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는 지켜볼 만하다. 미래통합당이 주장한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거리가 먼 형태를 띠고 있었다.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에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수혜자보다는 늘어나지만, 미래통합당 식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사용한 것일 뿐, 진짜 기본소득이라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코로나라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아주 작은 구명보트만을 던져주며 가장 비참한 대상을 고르려는 시도는 정의롭지 못하다. 이는 '누군가'가 아닌 '모두'를 호명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가짜 '기본소득'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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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전 세계 10개국 26개 도시에서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기본소득을 알리고 기본소득 실현을 요구하는 “국제기본소득행진(Basic Income March)”을 동시에 진행했다. 서울에서도 대학로에서 보신각까지 150여 명의 지지자들이 행진을 벌이며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 최경준

 
코로나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재보궐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기본소득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는 토건사업에 대한 세출 조정과 부동산 이익에 대한 과세를 기본으로 한 '서울형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했다.


그다음으로 나경원 전 의원이 최저생계비조차 보장되지 않은 20만 가구를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지급을 약속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도 만 19세 이상의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을 지급을 약속했다.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면 나경원 전 의원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라 말할 수 없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세대주로 등록된 사람들은 남성이 훨씬 많다. 기본소득이 개인이 아닌 가족에게 지급된다면, 대부분 그 돈은 남성 가장이 받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정 내에서 목소리가 작은 여성과 청소년의 필요에 따른 소비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가구별 지급을 먼저 이야기한 나경원 의원의 기본소득은 정의롭지 않다.

당연하게도, 천만 명 정도의 서울 인구 중 20만 가구에만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은 재산에 대한 심사가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의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조정훈 의원의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도 아쉬운 점은 있다. 연령 제한의 문제는 기본소득론자들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지급되어야 함을 고민해본다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다.

애초에 기본소득은 복지 개념과 다르게 인류 공통의 자산을 다시 모두에게 나누어준다는 개념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토지도, 지식도, 환경도, 데이터도 특정한 사람의 기여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일정 부분은 모두의 몫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모두'라는 사람들 속에는 어린이도, 청소년도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실제 기본소득이 도입될 때 정치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특정한 세대와 연령에 우선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존재하기에(대표적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청년기본소득 정책) 도입형 기본소득이 어떠한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다. 특정 세대나 집단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먼저 시작하고, 그 효과에 따라 다른 세대와 집단으로 확장해나가는 형태의 기본소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주택자만을 대상으로 하여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보다 복잡한 논쟁을 가지고 온다. 이는 필연적으로 심사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연령에 대한 논의가 모두에게라는 보편성을 어겼다면, 무주택자만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은 보편성과 무조건성까지 충족하지 못한 정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코로나-기본소득 지평 확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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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 선거가 단지 승리를 위한 단일화 경쟁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친문과 반문의 구도가 아닌 정책이 중심에 되는 선거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기본소득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화두이다. ⓒ 최경준

 
기본소득을 오랜 시간 동안 지지해온 유권자의 입장으로 기본소득의 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가짜 기본소득만 보아야 하는 상황이 고역이다. 한편으론 우리가  어떠한 기본소득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것은 거대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코로나 시대, 서울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면 그 기본소득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자신을 꾸며줄 액세서리형 정책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로 생각했다면. 그리고 그것을 진지하게 유권자들에게 제안했다면 더더욱 그 토론에 응해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형 모델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금액은 얼마가 적합한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그 금액과 대상을 넓혀나갈 것인지 재보궐 선거 주자들이 토론하길 바란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단일화를 합의한 지금의 국면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기본소득당이 함께 모여 기본소득과 재난지원금에 대한 정책 토론도 가능할 것이다. 단일화가 오로지 지지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일화에 참여하는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인정과 승인을 내포하고 있다면 말이다.

재보궐 선거가 단지 승리를 위한 단일화 경쟁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단일화, 그리고 공천 결과가 코앞에 놓인 이 상황에서 친문과 반문의 구도가 아닌 정책이 중심에 되는 선거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기본소득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 화두이다.

단일화 직후, 기본소득을 주제로 기본소득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아우르는 정책 토론회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우리는 꺼지지 않는 인류의 마지막 구명보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 #기본소득당 #신지혜 #조정훈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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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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