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반인' 재재와 문명특급의 한국 문명 기록기

[코로나 시대의 엔터테인먼트 - 우리들의 20년대에게 ④]

등록 2021.02.26 08:11수정 2021.02.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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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에 사랑이 있었다면 우리의 코로나 시대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전염병으로 계속해서 어딘가에 묶여있어야 했던 우리는 시선을 묶어둘 무언가를 찾아 세렝게티 대신 집안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맞이한 2021년 새해에도 이불 밖은 위험하고 당분간, 이 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오늘도 거리두기로 서로의 안전을 절실히 바라는 우리를 위해 2020년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정리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이건 다난하게 시작된 우리들의 20년대에게 보내는 연서다. [편집자말]
2020년은 일명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의 해였다.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명곡이지만 남들에게는 들켜서는 안 될 나의 음악 취향… 스브스뉴스에 소속된 PD들이 '문명특급' 기획으로 보여준 한국 가요계를 읽는 하나의 시선이다.

유튜브에서 시작한 '문명특급'은 2030 세대의 가슴을 뛰게 했던 과거의 소산을 살피기도 하고, 궁금했던 그때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추적하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우리네 문명에 대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냈다. 뉴미디어를 통해 현세대에 가장 빠르게 콘텐츠를 전달하고 피드백 받으면서 문명특급은 하나의 문화해석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문명특급 숨듣명 콘서트 관련 이미지 ⓒ 문명특급

 
SBS소속의 뉴미디어팀에서 시작한 '문명특급'은 2020 추석특집 '숨듣명 콘서트'를 브라운관 저녁 타임에 편성될 정도로 단순한 인기를 넘어서는 파급력을 보여줬다. 프로그램 전반을 기획하는 PD들의 역량은 대단했다. 과거 수능금지곡으로 불릴 만큼 중독성 강한 2000~2010년대 가요들을 2030 세대의 학창 시절 추억과 연결했다. 그들은 노래 하나로 그 시대의 패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단어들까지 엮어냈다.

문명특급은 이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MC 재재를 앞세워 노래와 함께 추억으로 똘똘 뭉친 하나의 공간을 만들었다. 마치 우리가 다시 그 시간에서 숨 쉬는 듯이, 그때 그 공간을 떠다니던 먼지 하나까지 생생한 연상을 가능하게 했다. 숨듣명 콘텐츠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봉테일'을 넘어서는 '명품디테일'. 연반인 재재가 해냈다.
  

재재 인터뷰에는 강요가 없다. ⓒ 문명특급

 
문명특급 PD이자 프로그램 MC로 활동하고 있는 재재는 새빨간 머리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독보적인 자신의 위치를 쟁취해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속속들이 흡수한 듯 몰아치는 그의 진행 속에는 인터뷰이에 대한 불편한 호기심이나 과도한 요청이 없다.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기반으로 꼭 필요한 질문과 홍보만을 뽑아낸다. 이런 재재의 매력에 구독자들은 열광하고 출연한 아이돌, 배우들은 당황한다. '이렇게 쿨한 방송 네가 처음이야!'

'애교하기 싫으면 하지마세요! 저희도 하기 싫어하는 애교는 보기 싫어요!' 스프라이트!! 재재의 배려 넘치는 진행에 게스트와 팬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팬들은 형식적이고 무례한 인터뷰 스케줄 대신, 재재를 섭외해서 홍보를 진행하는 소속사에게 열일('열심히 일하다'의 준말)했다는 칭찬을 쏟아낸다.
  

재재의 타 방송사 프로그램 출연 화면 갈무리 ⓒ MBC, tvN, KBS, JTBC

  
일반인이지만 연예인 스케줄을 뛰고 있는 직장인 재재는 연반인이라는 타이틀로 이미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sbs 사장님 결재받고 왔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타 방송사를 종횡무진하는 재재를 보고 있자면 그가 배우인지 화제의 110만 유튜버인지 신인 아이돌인지 헷갈린다. 아, 맞다. 재재는 그 무엇도 아닌 일반 직장인, PD였지?! 과연 연반인다운 행보다.

우리는 문명특급 제작진에게서 우리를 본다. 재재가 JTBC '돈길만걸어요-정산회담'에서 밝힌바 있듯, 사회 초년생들의 평균 월급 정도를 받으며 연예인 스케줄을 감당해왔다. 근래에는 강연과 타프로그램 출연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본업인 문명특급으로 일궈낸 성과에 대해서 재재는 물론이고 다른 팀원들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주는 만큼만 일하려면 전 지금 퇴근해야 됩니다"같은 자조 섞인 한탄을 하는 그에게 기만은 보이지 않는다.

재재가 연예인들 사이에서 한을 풀 듯 꺼내 놓는 '끼'들은 우리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사회초년생의 열정과 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던지는 유머와 메시지에 공감한다. 우리 모두가 겪어본 바 있는 고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문명특급 콘텐츠 썸네일 ⓒ 문명특급

 
그런 고통 속에서도 문명특급은 묵묵히 문특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아이돌 컴백, 영화 개봉, 드라마 홍보 등 연예계 전반의 다양한 인터뷰를 '문특화'해냈다. 요즘 문명특급을 거치지 않고서는 컴백도, 개봉도, 첫 방송도 제대로 알리기가 어렵다. 기존의 연예정보 프로그램들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문명특급은 치열하게 깃발을 내리 꽂아 고지를 선점했다.


조회수 보장! 문특의 흥행수표인 연예계 콘텐츠도 좋지만 애독자들은 문특만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콘텐츠를 기다리는 맛을 놓치기가 어렵다. 문명특급에는 숨.듣.명 기획에 비해 조회 수가 덜하긴 하지만 영화 포스터 제작자, 수달보호연구소, 다꾸(다이어리꾸미기) 장인, 홈카페 장인 등을 찾아 현시대 전반을 흥미롭게 만드는 문화들을 조명하고 나름 유행의 근원과 이유를 찾아내는 기획도 있다.

서울대학교 기획에서는 '서울대 89학번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의 개강파티 연미복 썰에 대한 진실'을 다루기도 했다. 이처럼 시그니처메뉴와 계절메뉴를 적절히 배치하는 시도는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 진행, 자료조사, 편집, 섭외를 포함한 수많은 업무들 속에서 가장 빛나는 그들의 능력은 창의성이다. 항상 구독자의 니즈에 대해 고민하고 조회수와 씨름하는 문명특급의 모습은 치열하다. 그렇게 그들은 방대한 인터넷 세상의 아주 사소한 '밈(meme)'들도 놓치지 않고 기획으로 만든다.

대중이 가볍게 웃음거리로 삼는 대상을 주제로 삼아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를 발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다. 불편한 조롱에 수저를 얹기보다는 안에 감춰진 알맹이를 찾아내는 작업에 가치를 두는 셈이다.

그들이 새롭게 조명하는 건 '100쪼의 호수', 우리가 흔히 인터넷 밈으로 접하는 연예인의 습관이나 버릇, '쪼'를 주제로 하나의 콘텐츠가 탄생했다. 2010년대를 기억하는 숨듣명 콘텐츠를 이어 '100쪼의 호수'가 2020년대의 문물을 기록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설렌다. 문명특급, 우리의 20년대 기록을 잘 부탁합니다!
덧붙이는 글 고함20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재재 #문명특급 #스브스뉴스 #숨듣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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