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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CCTV 없었으면, 동생 의료사고 못 밝혔을 겁니다

[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설치도 안한다, 있어도 영상을 안준다... 법이 없어서

등록 2021.03.02 14:11수정 2021.03.0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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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 해의 끝자락이었습니다. 대희가 사망하고 맞는 3번째 겨울이었죠. 2018년 10월, 사건이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대희 사망사건이 검찰이 송치된 시점이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춥지 않았습니다. 겨우내 '이상 고온'이란 보도까지 이어졌죠. 지구온난화의 영향일 수도 있었겠으나, 저희 가족에겐 삶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포근한 겨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희 앞에 두 갈래 길이 펼쳐졌습니다. 하나는 동생 사건을 잘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희 가족이 지난 2년 동안 싸워온 길이었지요. 그 길을 지금부터 말씀드리려 합니다.

2018년 당시 권대희 사건이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데는 수술실CCTV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병원 사람들이 "법대로 해볼 테면 해보라"고 할 만큼 자신만만했었지만, 그걸 뒤집은 게 CCTV 안에 담긴 증거들이었지요.

물론 CCTV가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께선 2년 동안 경찰 수사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저조차 보기 힘들었던 영상을, 어머니는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지요. 단순히 돌려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도표를 그리고 그래프를 만들고 영상과 의무기록지를 비교 대조해가며 하나의 수사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병원이 법을 어긴 지점을 찾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을 잡아냈지요.
 

권대희 사건 수술실 CCTV 분석 CCTV 영상은 의무기록지와 다른 점이 많았다. ⓒ 권태훈

 
그 모두를 경찰 수사관이 보기 쉽게 만들고, 감정기관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도 모두 어머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매달린 끝에 이끌어낸 '기소의견 송치'였으니 마음이 놓이는 것도 같았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쉬지 않았습니다. 이제 수사기록이 검찰로 넘어갔으니 할 일이 사라진 것인데, 어머니께선 거리로 나가셨어요.  '환자 의사 모두 위해 수술실CCTV 설치' '국회는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위해서 수술실CCTV를 설치하라'는 문구가 들어간 피켓과 함께였습니다.

어머님께선 지난 2년 동안 수술실CCTV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직접 실감하셨던 거지요. 그래서 다른 환자들도 그 CCTV를 구할 수 있게 제도화에 발 벗고 나서셨던 겁니다.

CCTV 있더라도 얻을 수도 없다, 법이 없으니


법은 없었습니다. 그 두꺼운 법전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수술실CCTV의 설치와 운영을 규제하는 근거법령은 없었습니다. 우리도 수술실CCTV를 얻으려 병원 사람들 입맛에 거스르지 않게 연기해야 했고, 지금도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수술실CCTV를 달라고 병원에 애걸복걸하는 겁니다. 

그마저도 수술실CCTV가 있는 병원은 일부입니다. 수술실CCTV 통계조차 작성하지 않았던 보건복지부는 2020년 국정감사 이후 실태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전국 병원 수술실 내부에 CCTV를 단 곳이 14%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사에 응한 것도 일부 병원이라고 하니 실제는 그보다도 수치가 적을 수 있습니다. 

이 조사는 곧 한국 환자들의 인권실태입니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돈을 내고 수술을 받으면서도 모든 걸 병원과 의사의 선의에 기대야 하지요. 만약 부작용이나 문제가 생겨 병원과 다투게 되면 자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수술실CCTV가 없는 곳이 태반이고, 있더라도 법이 없어 내주질 않으니 방법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법을 만들자는 겁니다. 어린이집에도 길거리에도 버스 안에도 CCTV가 달리는데 수술실이라고 달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더욱이 대희처럼 환자가 마취된 뒤 의사가 바뀌는 사례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의료기기 판매사원까지 대리수술을 하는 사건이 확인되고 있는데 왜 CCTV를 달지 않는 겁니까.

이뿐입니까. 일부 의사들이 수술실 내에서 환자를 품평하고 성추행하고 심지어는 그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속출합니다. 통계가 입증하고, 지속적인 보도까지 이뤄지고 있지만 의사들의 선의에 몸을 내맡기라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어머니께서 2018년 겨울부터 거리로 나가신 것과 더불어 여러 노력이 모여 발의까지 이른 수술실CCTV 법안입니다. 몇 년 동안이나 1인 시위를 하고 항의 전화를 하고 발품을 팔아 수술실CCTV 법을 이끌었지요. 그런데 그 법이 엎어질 위기라는 보도가 나오다니 제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 그러나 피해가려는 정치권

지난 20일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페이스북으로 기사 하나를 공유했지요. '국민 대다수 원하는 수술실CCTV, 국회는 반대'(파이낸셜뉴스)란 기사였습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 환자보호3법이 논의됐는데 수술실CCTV법만 통과되지 못했다는 내용이지요. 반대입장을 고수해온 국민의힘뿐 아니라 다수당이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조차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앞서 수많은 논란 끝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20년 12월 다시 여론 조사를 했지요.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였는데 수술실CCTV 찬성 여론이 89%에 달했습니다. 앞서 진행된 경기도 여론조사에선 그보다도 찬성 여론이 높았습니다. 2018년 9월 진행한 첫 조사에선 91%가, 2020년 10월 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선 94%가 수술실CCTV 의무화에 찬성했습니다.

그럼에도 수술실CCTV법의 발목을 잡을 문제가 남았습니까. 이제는 어떤 이유로 반대하고, 또 협의할 게 남았는지요. 수술실CCTV 요구가 끓어오르자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수술실 입구에 CCTV를 다는 방안으로 우회하려 시도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에서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수술실 출입구 CCTV는 확대가 절실하다고 했고, 전봉민 의원은 출입구 같은 곳에 CCTV는 설치하는 게 맞다고 발언했습니다. 둘 다 수술실 내 의료범죄를 방지한다는 입법 취지와는 동떨어진 우회 의견이었죠. 

회의록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도 수술실CCTV법에 명시적으로 찬성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은 적었습니다.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입을 열지 않은 의원들이 다수였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러분, 당신들이 있어 수술실 CCTV 통과 가능할 거란 믿음, 분명히 갖고 있어요. 국민의힘 의원 여러분, 당신 가족이나 이웃도 언젠가 환자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해주십시오. 국민의 뜻을 받들어주세요.

수술실CCTV가 있어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있었던,
의료사고 유족 권태훈 올림
#수술실CCTV분석 #수술실CCTV법 #권대희법 #권대희사건 #21대국회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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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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