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사랑했던, 영원히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게 해준 책

[내가 쓴 '내 인생의 책'] 젊은날의 운동 기록 '늑대별'

등록 2021.03.01 15:07수정 2021.03.01 20:02
0
원고료로 응원
이 책 한 권으로 우리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나의 젊은 날의 기록 '늑대별' 책 표지 ⓒ 웅진출판

 1997년 3월, 나는 왕십리 5호선역 근처 카페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헤어질 때 가지고 있던 책 한 권을 줬습니다. 그녀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 그 책을 읽었고, 곧바로 나와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 책은 바로 내가 쓴 <늑대별>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답니다. 1990년대 초, 속절없이 조락해가는 운동을 애석해하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담담하게 젊은 시절 나의 삶을 되돌아본 기록이었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한 젊은이는 어떻게 운동에 투신하게 됐는가부터 수배와 투옥 그리고 투쟁을 기록하고, 청년으로서 겪어나가는 감정선도 사실적으로 그려나간 책이었습니다. 늑대별이란 밤하늘에 가장 반짝이는 별, 시리우스별의 순수 우리말입니다.

아내가 떠난 이 세상, 그것은 곧 나의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슬픕니다. 그렇게 나와 만나 너무나도 다정한 반려자이며 어느 상황에서든 나를 격려해준 동지이자 항상 내게 지혜를 준 아내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반 년 전에 이 세상을 아프게 아프게 떠나갔습니다. 아내가 없는 세상, 나 혼자 남겨진 세상. 내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였습니다. 아내가 떠난 지 반 년도 더 지났건만 여전히 너무나 아프고 쓰립니다. 내 가슴은 텅비었습니다.

아무리 자그마한 사소한 일도 모든 것을 함께 얘기하고 웃으며 같이 즐거워했었던 우리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함께 나눌 아내가 영원히 없으니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내게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실로 그것은 곧 나의 죽음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각부터 지금까지 죽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삶이었습니다. 나 자신도 내가 이 정도로 아파할 줄, 견디기 힘들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살아있으니 할 수 없이 버틴 것이었습니다. 글쓰기는 나의 마지막 안간힘이었습니다. 슬픔은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나를 기습합니다.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연민으로 도무지 몸과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있어 너무 행복하게 살았는데, 이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슬픈 것인 줄 정말 미처 몰랐습니다. '백년해로'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고도 귀중한 말인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간 너무 삶을 모르고 너무 가볍게 살아왔습니다. 통절하게 반성하고 뉘우칩니다. 죽음이 이렇게 우리 바로 곁에 있는데,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이 너무 무심하고 가벼이 살아왔습니다.

오늘도 그리움의 사부곡(思婦曲)을 나지막히 불러봅니다

그러나 생각해봅니다. 지금 내가 건강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내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내도 병상에서 내가 흔들리지 말고 주위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잘 살아달라고 말했었습니다.

며칠 전, 작지만 소중한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활짝 웃는 아내의 생전 사진을 보고는 제자가 "여성으로서 저렇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사모님은 정말 행복하게 사셨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마음고생을 꽤 하며 살고 있는 제자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적잖게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나와의 결혼 생활에서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살던 동안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이 다다다다음 세상까지 영원히 같이 부부로 살자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었습니다.

아내를 향한 나의 사무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사부곡(思婦曲)을 나지막히 불러봅니다. 아내가 그 짧은 일생 동안 내게 준 그 지극한 정성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아내를 만나기 위한 '운명적인 책'이었습니다

아내는 떠났지만, 나는 아직 차마 아내를 보내지 못합니다. 아내가 내 마음속에 함께 하며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나를 만나러 이 세상에 왔다고 늘 말했었답니다.

내게 오롯이 베풀어주고 간 따뜻하고 진실되며 지극했던 그 사랑을 어찌 한 시라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평생 그리움과 사랑의 사부곡(思婦曲)을 가슴에 부여안고 살리라 다짐합니다.

젊은 시절 내 삶의 기록인 <늑대별>은 본래부터 많이 팔리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다지 큰 주목도 받지 못 했습니다. 물론 절판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 책을 읽자마자 나를 운명의 반려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내게 가장 소중했고, 지금도 여전히 가장 소중한 아내. 그녀를 만나게 해줬고 우리 두 사람을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준 이 책이야말로 '내 인생의 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내게 소중하고 또 소중한 책입니다.

돌이켜보면, 아내를 만나기 위한 '운명적인 책'입니다.
#아내 #운명의 책 #소준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지금은 이 꽃을 봐야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