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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의원님께 이 전시를 추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관람기

등록 2021.02.21 13:39수정 2021.02.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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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박물관협회(회장 윤열수)와 전국 780개 회원관 일동은 본 개정법률안의 폐기를 요청한다."

지난 18일 한국박물관협회가 "유물의 보존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며 국회에 입법예고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배현진 의원 등 11인 발의)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일 책박물관에서 도서의 대출과 열람을 가능하게 만드는 법을 발의해 논란이 된 가운데(관련 기사 : "배현진 '책박물관 대출' 법안? 논의할 가치 없다"),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일(오후 7시 현재) 국회입법예고시스템 내 해당 법안에 제출된 900여 개의 의견은 대다수가 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국회입법예고시스템의 시민 참여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19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날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위원장 장인경)도 성명을 내고 해당 법안의 폐기를 요청했다. 본부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이 단체는 성명에서 "(해당 법안은) 박물관의 일차적 의무를 상실하게 하는 법안"이라며 "추후 박물관 자료의 보안과 안전상 일어날 수 있는 자연 및 문화유산 훼손 등 여러 사례에서 책임 소재에 대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박물관 협회 또한 "현행법에 박물관 자료의 '사진 촬영과 박물관에서 대출과 열람'은 열려 있다", "복제(영인 등)를 통한 제공, 원문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소장 자료의 열람 요청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이 같은 관련 단체의 반발과 국회입법예고시스템 내 속출하는 반대 의견에도 배 의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송파 '책박물관'을 '융복합 박물관'으로 소개하며 블로그 등에 법안 발의를 알리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태다.

그런 배 의원이 꼭 한번 들러야할 전시가 있다. 지난 4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2021년 새해 첫 기획전으로 마련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배현진 의원이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선 학예사와 전공자들은 물론 협회까지 나서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를 알려줄 수 있는 전시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알려드리고자 한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 원본. ⓒ 국립현대미술관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 재판본 ⓒ 국립현대미술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시집 원본. ⓒ 국립현대미술관


윤동주 시집 원본과 마주하는 감흥

윤동주 시인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에선 그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실물로 접할 수 있다.

장정가 이정의 작품으로, 1948년 정음사에서 발행된 한국 문학사의 '보물'이라 할 만 하다. 근대서지연구소가 이번 전시를 위해 제공했다고 한다. 일본에까지 팬층이 두터운 윤동주 시인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소장하고 싶은 그런 희귀 유산이 맞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어떠한가. 이후로도 줄줄이 있다. 이태준 소설가의 <황진이>, 백석 시인의 <사슴>,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 서정주 시인의 <화사집>, 구본웅 화백이 장정한 임화 시인의 <현해탄>, 김영랑 시인의 <영랑시집>, 이상 시인이 직접 장정한 김기림 시인의 <기상도> 등 당대 독자들을 감동시킨 시집과 소설의 원본이 즐비하다.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 (소설가 이태준)

과장이 아니다. 교과서에서, 인터넷에서만 접한 당대의 시집과 소설을 원본으로 접하는 그 느낌은 관람객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흥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는 목적일 것이고.

덕수궁관의 이번 전시의 주제는 1930~1940년대 경성이란 시공간에서 문학으로, 미술로, 예술로 공감하고 헌신하며 역설적인 시대를 연대하며 살아 내었던 예술가들, 자유로운 영혼들의 낭만과 전위다.

그 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 원본을 '알현'할 수 있는 '지상(紙上)의 미술관' 전시관은 당대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했던 독창적인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이런 책들이야말로 공공의 유산이요, 역사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그 어떤 누구에게 대여해서도 안 되고, 훼손 등의 여지를 주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의 포문을 연 <별건곤> 제8권 7호의 표지. ⓒ 국립현대미술관

 
모던의 욕망

<별건곤>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1926년 창간된 대중잡지다. 대학 졸업 즈음, 1920~1930년대 영화관 풍경을 리포트 주제로 잡았었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 자료로 접한 <별건곤>은 가히 '신세계', '별세계'였다.

'취미잡지'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전문지는 아니었고, 전문지는 아니었으나 꽤나 수준 높은 시선과 통속적인 요소가 공존했다. 당대 '모던걸', '모던보이'들의 '트렌드'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사랑과 전쟁' 류의 '애정사'를 담아냈으며,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듯 은밀한 이야기도 공개돼 있었다.

맞다. 2000년대 중반 관심을 끌었던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와 같이 '경성 시대'의 '미시사'가 탐구할 만한 소재의 총합이 바로 <별건곤>이었다. 그 <별건곤>이 가리키는 것은 식민지 지배 당시 수도 서울을 어김없이 지배했던 근대와 자본의 속성이요, 그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대중의 욕망이었다.

"제목은 '모던 금강만이천봉'! 수많은 봉우리 마다 다채로운 상점들이 쌓이고 또 쌓여 높은 산을 이루었는데, 그 중에는 '매소루(매소루)' 즉 '웃음을 파는 집'에서부터 파라마운트 영화관, 약국, 냉면집, 맥주집, 바(bar), 그리고 특히 카페, 다방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절벽 한 곳에 '자살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이 자살장에는 이미 한 인물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모든 아수라장의 맨 꼭대기에는 이 예배당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 위로는 '천당이 가깝다'라고 쓰인 깃발이 애드벌룬 옆으로 펄럭인다. 1930년대 한국사회는 지금의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병리학적 특성을 이미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도안은 증명하고 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설명 중)


전시의 포문을 연 것이 바로 1933년에 발간된 <별건곤> 제8권 7호의 표지다. 황정수 작가가 그렸다던 표지의 제목은 바로 <모던 금강 만이천봉!>. 작품을 뜯어보면 대번에 느낄 수 있다. 당대 서울 사람들도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즐겼겠구나.

그 시대를, 예술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런 깨달음을 준다. 당시 식민지 시대가 암울과 억압, 폭력과 절망으로 점철된 것만 아니었겠구나. 그 시대에서 욕망을 가진 사람이 살았구나. 예술가들이 그런 대중과 호흡하며 당대의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겠구나. <별건곤>의 표지는 그런 상징일 터다.

그래서 전시는 '전위와 융합'이란 이름으로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를 오간 시인 이상과 야수파 구본웅의 교감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필두로, 이상, 박태원, 김기림 등 문인들과 구본웅, 황술조, 김병기 등의 작품을 통해 문학과 미술, 음악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문화를 '혼종'한 당대 예술가들의 앞서 간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미술품만이 아니라 당대 원본 서적들을, <문학예술> 잡지 원본을, <별건곤>과 같은 잡지를, 당대 신문에 실린 만문만화나 그림 작업들을, 예술가들이 교류한 서간과 엽서, 그림 등을 폭넓게 전시한 까닭도 다르지 않을 테다. 이 역시 개인에게 대여하거나 개별 박물관이 그 대여를 결정하게 허락할 수 없는,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예술이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 원본을 전시해 놓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실 풍경. ⓒ 하성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때> 전시 중 이중섭 작가의 <시인 구상의 가족>(1955).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때> 전시 중 구본웅 작가의 <친구의 초상>(1935). ⓒ 국립현대미술관

 
BTS RM이 덕수궁관을 찾은 이유

최근 BTS의 멤버 RM이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를 다녀간 것이 화제를 모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덕수궁관 관람객 중 20대의 비중이 24.1%로 가장 높았고, 30대, 40대, 50대는 각각 13.1%, 14.9%, 12.7%였다고 한다.

배 의원님께 당부한다. 박물관 협회과 앞장 서 반대하는 법안을 발의할 시간에, BTS RM도 다녀간 이 전시에서 원본 책을, 잡지들의 향취를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 4개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된 미술 작품 140여 점과 서지 자료 200여 점을 마주하다 보면, 본인이 발의한 법안이 왜 문제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실 거라고 생각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배 의원 외에 10명의 의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공동 발의했는지 궁금증이 인다. 이들 모두 어떤 발상의 전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적 가치를 자랑하는 서적을 일반인이 대출하게 만드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어떤 문제인지를 깨닫는 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덕수궁관의 코로나19 방역 수준은 염려하지 마시길. 설 연휴이던 지난 13일 다녀온 결과, 철저한 예약제와 QR 코드 입력은 기본이었고, 관람 인원 제한과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안심할만했다.

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송파구 내 책박물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상식적인 국민들이, 업계 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래와 같이 국회입법예고시스템에 직접 반대 의견을 제출한 국민들의 의견도 들어 주시고. 

"가장 큰 자유민주주의 경제인 미국에 물어 보니, 도서관에서도 희귀도서는 대출이 절대로 안 되고, 일반서적이라 해도, 보유량이 극히 적은 경우에는 도서관 내에서만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통례라 한다. 따라서, 박물관에 들어갈 정도이면, 희귀도서인데, 그것을 대출한다고? 그럴 것이면, 박물관을 왜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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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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