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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조선팝 어게인' 왜색 논란, 수신료로 불똥 튄 까닭

[하성태의 사이드뷰] 궁색한 사과... KBS 향한 흉흉한 민심에 부채질한 꼴

21.02.19 14:05최종업데이트21.02.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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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만 놓고 보면, 이제는 한국의 방송이 일본을 뛰어넘었다고 보는 편이다. 방송 내용이나 기술 면에서 모두 말이다. 일례로 SF 장르에 도전하는 한국 드라마들을 보라. 그에 반해 일본 드라마 속 VFX 기술, 이른바 CG 효과는 목불인견 수준이다.

최근 어느 일본인 유튜버가 일본 방송이 여전히 애용하는 소위 '차트'를 지적하는 모습은 꽤나 이색적이었다. 노년층이 주로 보는 지상파나 인기 민영 방송들이 '와이드 쇼' 등에서 여전히 손으로 떼고 붙이는 '아날로그'식 '차트'를 사용하는 것이 한국과 비교해 예스럽다는 불만이었다.

그런 일본 방송에서 지금도 막강한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NHK 대하드라마다. 이 NHK 드라마는 한때 시청률의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과거 KBS의 대하사극이 누린 인기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에도 시대 등을 배경으로 하는 바로 이 NHK 대하드라마의 빈번한 배경이 바로 일본식 성이다. 그 외에도 사무라이 영화나 일본식 액션 사극에 종종 최후의 대결 장소로 등장하는 장소도 층층이 올라간 위용을 자랑하는 일본식 성들이다. 아마도 일본영화나 일본드라마 마니아들에겐 더없이 친숙한 건물일 테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 일본식 성이 우리 공영방송에 등장해 물의를 빚고 있다. KBS가 지난 11일 설 대기획으로 방영한 <조선팝 어게인>이 문제의 프로그램이었다. 하필 해당 장면에 출연한 이들은 지난 한해 '조선의 아이돌'이란 별칭으로 각광을 받은 밴드 이날치였다.

논란이 비난으로 번지자 KBS는 18일 공식 입장을 내고 사과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이날치에 미안함을 전한 KBS에 궁색하다는 표현을 써도 아깝지가 않다. 왜 그럴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KBS '조선팝 어게인' 중 논란이 된 장면. ⓒ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꿈꿨지만

KBS로서는 일견 억울할 만했다. 우선 <조선팝 어게인>의 기획 자체가 그랬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줄" 조선팝 신드롬을 전한다는 취지 하에 '1일 1범' 돌풍을 몰고온 이날치를 앞세웠고, 트로트와 K-팝, 국악과 퓨전 음악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이날치를 필두로 김영임, 송소희, 송가인, 악단광칠, 나태주, 박서진, 포레스텔라, BEA173 등 출연진도 다채롭고 화려했다. 

이른바 언택트 시대에 걸맞게 녹화 비대면 관객들을 실시간으로 초대했고, 관객들의 거주 지역 또한 국내 전 지역을 넘어 뉴욕, 파리, 상파울로, 카이로 등 전 대륙에 걸쳐 있었다. 말 그대로 국가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구성이었다.

지난해 추석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호평과 시청률을 모두 잡은 제작진이 다시 뭉친 것 역시 일종의 셀링 포인트였다. 실제 <조선팝 어게인>의 시청률도 전국 기준 7.5%(닐슨코리아 기준)으로 선방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논란이 발생했다. 바로 이날치 무대의 배경 화면에 쓰인 성의 이미지를 두고 17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왜색 논란이 인 것이다. KBS가 논란이 된 이후 각종 플랫폼에서 삭제한 <조선팝 어게인> 속 해당 장면을 챙겨 봤다.

앞서 '일견 억울할 만'이란 표현을 쓴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전체 1시간 40분여에 이르는 전체 방송 중 논란이 된 성의 이미지가 쓰인 건 이날치의 '여보나리' 무대였다. 이날 이날치의 무대는 신곡 '여보나리'와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단 두 곡 뿐이었다.

또 '여보나리'가 판소리 '수궁가'를 노래로 만든 만큼, 제작진이 배경 화면으로 용궁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활용한 것도 수긍이 가는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이미지 자체의 왜색이 너무나 확연했다.

프로그램 촬영 전 일본의 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가 봤다면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할 만큼 비교가 무색할 정도였다. 의구심이 드는 대목은 이 일본 성을 닮을 용궁 이미지 외에 또 다른 용궁 이미지도 쓰였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용궁 이미지는 얼핏 우리의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우리 궁의 전통적인 대문들을 닮은 형상이었다. 여타 용궁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나 광고에서 차용해왔던 그 친숙하고 전통적인 이미지들 말이다.

촬영 전까지 그런 차이를 몰랐다면,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제작진이 게을렀거나 무심한 탓일 테니 말이다. 게다가 <조선팝 어게인>은 기획 의도 자체가 '우리 것'을 재창조하고 그런 자부심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 아니었던가.
 

지난 11일 방영된 KBS '조선팝 어게인'의 한 장면. 이날치 밴드가 멋진 공연을 선사했다. ⓒ KBS

 
KBS의 현주소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가 지난 3일 발표한 '여보나리'는 판소리 수궁가에서 못다 한 내용을 풀어낸 곡으로 토끼의 간을 찾아 육지로 가는 별주부가 홀어머니와 아내에게 이별을 고하는 내용을 이날치 밴드만의 재기발랄함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저희 제작진은 '여보나리'라는 곡의 배경으로 '용궁'을 구상하였고, 존재하지 않는 '용궁'이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레퍼런스와 애니메이션 등을 참고하여 시청자 분들이 보시기에 적합한 품질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작된 용궁 이미지는 상상 속의 용궁을 표현한 이미지로, 일본 성을 의도적으로 카피하지는 않았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18일 KBS <조선팝 어게인> 제작진이 내놓은 입장문 중 일부다. 여러 레퍼런스 및 애니메이션을 참고했지만 딱히 일본 성을 의도적으로 베끼지는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납득이 어려운 건 아니다.

이미지를 제작하는 미술이나 영상 팀이 여러 아이디어를 내고 무대화면 비율에 어울리는 규모의 궁궐 이미지를 구상하던 중 세로 높이가 높은 일본 성을 참고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작업 과정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할 수만도 없는 것이,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양식 건축물의 특징 및 유사함을 알아본 시청자들은 특정 왜성을 거론하며 비난을 쏟아내는 중이다. 비전문가가 봐도 이날치의 '여보나리' 무대에 쓰인 성과 대문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비난 의견들 중 일부는 그런 눈밝은 시청자들이 낸 것이었다. 

좀 더 디테일하게는, 제작진이 홍보에 앞장세운 이날치의 무대였다면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맞았다. 실수를 했더라도, 실시간으로 시청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팬들이 이날치의 신곡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란 예상을 했어야 옳다. 단순히 "카피하지 않았다"고 둘러대거나 양해를 구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시점도 공교롭기 짝이 없다. 최근 KBS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설 연휴 전까지 계속돼 왔다. KBS 직원이 한 커뮤니티에 '억대 연봉 부러워? 부러우면 입사하던가!'란 글을 게시해 KBS가 공식 사과까지 했던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논란은 KBS를 향한 흉흉한 '민심'에 부채질하는 꼴이 됐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것 같다. 여기에 하나 더. 이번 왜색 논란은 수신료 인상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 

KBS가 소위 말하는 '고퀼', 그러니까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질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또 선보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KBS는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왜 넷플릭스 구독료 1만원 보다 KBS 수신료 2500원이 더 아까울까'란 의문이 공공연해진 지금, <조선팝 어게인>을 둘러싼 논란이야말로 안타까운 KBS의 현주소를 일정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좀 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선의의 피해자들은 신곡 무대 영상이 온통 삭제돼버린 밴드 이날치일 테고.
KBS 조선팝어게인 이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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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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